기타/어쩌구 저쩌구

나는 나이에 맞게 살고 있나

칠봉인 2013. 3. 20. 22:01

 

나이는 숫자 놀음이 아니다 1

 

나이는 숫자로 나타난다.
그래서 나이 먹음을 애써 위로하기 위해서

나이는 숫자 놀음뿐이다.’라고 말하지 않는가.
그러나 그 숫자 속에 한자어의 뜻이 담겨 있는 나이가 있다.

그래서 나이를 뜻하는 한자어를 통해 나는 과연 그 한자어의 뜻대로

나이를 먹으며 살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지금부터 소개하는 10세부터 108세까지의 나이에 대한

한자어의 유래는 몇 가지가 된다 할 수 있다.

공자께서 70여 평생을 회고하면서 자서적(自敍的)으로 풀이한 나이의 뜻.

그리고 예로부터 전래되어 오는 나이의 뜻,

우리 조상들이 글자를 파자(破字)하여 해학적으로 풀이한 나이의 뜻,

시인(詩人)이 풀이한 나이의 뜻, 스님이 풀이한 나이의 뜻

이처럼 나이를 뜻하는 한자어의 유래는 여러 가지라 할 수 있다.

10세 전후를 충년(沖年)이라고 한다.
충(沖)은 ‘어리다.’는 뜻이다.
사극을 보면 ‘세자께서 아직 유충(幼沖)하시니’하는 대사를 듣게 되는데

이때 ‘유충’은 대개 유치원에서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의 나이를 말한다.

▲ 15세를 지학(志學)이라고 한다.
공자께서는 지나온 생을 회고 하시면서 ‘吾十有五而志于學’(오십유오이지우학)

즉 ‘내 나이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다.’라고 술회하셨다.
여기에서 15세를 ‘지우학’(志于學) 또는 ‘지학’(志學)이라하게 된 것이다.

• 2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공자는 남의 집 천직(賤職)의 일을 하며 홀어머니를 모시고 빈천하게 살았다.
그리함 속에서도 15세 때부터 굳센 의지를 가지고 거의 독학으로 예(禮)에 대한 공부를 하였다.
공자 같은 성인도 생이지지(生而知之)나면서부터 알게 된 것이 아니라 이처럼 어려서부터

학문에 뜻을 두고 부지런히 갈고 닦은 까닭에 학문과 수양의 경지를 이루었음을 알 수 있다.

• 요즈음에 있어서의 15세 나이는 중학교 2학년에 해당된다 할 수 있다.
학교공부의 기초는 바로 중학교 2학년 때라 할 수 있는데

이때 학업에 대한 의지나 기초를 잃으면 그 이후의

고등학교, 대학교 과정은 힘들다 할 수 있다.
또한 이때는 일생에서 기억력이 제일 왕성한 때이라

이때 암기한 내용은 나이가 먹어도 기억에 남는다.
그러므로 이러한 나이의 자녀를 둔 학부모는 이때의 자녀들이

학업에 대한 의지나 기초를 잃지 않도록 각별히 유념해야 할 것이다.
이처럼 일생에서의 15세 나이는 인생 출발의 중요한 의미의 나이라 할 수 있다.

▲여자나이 16세를 ‘파과’(破瓜)라고 한다.

파과지년(破瓜之年)이라고도 한다.
파(破)는 ‘깨뜨리거나 쪼갠다.’는 뜻이다.
‘과’(瓜)는 ‘오이’를 말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파과’(破瓜)는 ‘오이를 쪼갠다.’는 뜻이 아니다.
오이과(瓜)자를 비스듬히 쪼개면 ‘여덟 팔’(八)자를 두 개 잇대어 쓴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8 + 8 = 16 이라고 해학적으로 풀이 하였다.
흔히 이팔청춘(二八靑春)이라하는 것도 ‘2 × 8 = 16’인 16세를 말한다.
예전에는 여성의 결혼 적령기를 열여섯 살로 생각했다.
요즈음도 어른들이 집에 과년한 딸이 있다고 말하는 것을 가끔 듣게 되는데

이것은 시집갈 나이가 된 딸이 있다는 뜻이다.

• 또한 8 × 8 = 64 이렇게 해서 남자는 ‘64’세를 ‘과년’이라고도 한다.
• 그리고 ‘벼슬임기가 다 한해’를 ‘과년’이라고도 하였다.

▲ 남자 20세전 후를 약관(弱冠)이라고도 한다.

옛날에는 남자가 20세가 되면 성인(成人)의식으로서 관례(冠禮)를 치른다.
이때 상투를 틀어 갓인 관(冠)을 씌워준다고 해서 ‘약관’이라고 하는데

이는 성인이 되었으나 아직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어리숙하고 미약하다는 뜻에서

미약하다는 뜻의 약(弱)자를 관(冠)자 앞에 붙여 ‘약관’(弱冠)이라고 하게 된 것이다.

• 옛날에는 성인이 되어 관례를 치르고 나서야 비로소 아이에서 어른대접을 받게 되는데

  이때부터는 아명(兒名)을 버리고 자(字)나 호(號)를 받아 사용하게 된다.
  양반집 자식으로 태어나면 아이 적에는 아명(兒名)을 지어 불렀고

  관례를 올려 성인이 된 뒤에는 자(字)나 호(號)를 불렀다.
  또 나라를 위해 큰 공을 세우거나 대 학자에게는 죽은 뒤에

   그 업적을 기려 임금이 내려주는 시호(諡號)가 있었다.
  충무공(忠武公)은 이순신장군이 세상을 뜬 뒤 나라에서 지어준 시호이다.
  또한 낮춤말인 '~ 해라'체에서 '~ 하게'체로 인격적인 대우를 받게 됐고

  지금까지 어른에게 절을 하면 어른은 앉아서 절을 받았지만 관례를 치르고

  성인이 되면 어른으로부터 답례를 받게 된다. 
  옛날에는 성인되기 전에는 모두가 ’아이‘였고, 성년이 되어야 그 때부터 어른이 되는 것이다.

  당시에는 청소년이라는 용어가 없었기 때문에 '아이'와 '어른'으로만 구분되었다.

여자나이 15세 전후의 나이를 계례(笄禮)라고 한다.

 

남자는 20세에 성인의식으로서 관례(冠禮)를 치르지만

여자는 15세가 되면 성인의식으로서 머리에 쪽을 찌고

비녀를 꽂는 성인의식으로서 계례(笄禮)를 치른다.
이때부터 결혼이 가능한 것이다.

▲ 여자나이 20세 안팎의 나이를 '방년'(芳年)이라고 한다.

방(芳)은 '꽃 답다.'는 뜻이니 말 그대로 '꽃 다운나이'라는 뜻이다.
'방년 19세'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 30세의 나이를 이립(而立)이라고 한다.

공자께서는 지나온 생을 회고하면서 ‘오삼십이립’(吾三十而立)

즉 ‘나는 30에 자립하였다.’라고 술회한데서

30세를 ‘이립’(而立)이라고 하게 된 것이다.

공자는 15세에 큰 학문의 뜻을 세우고(志學) 권세가 집안의 창고관리인, 목장관리인 등의

천직(賤職)으로 생계를 유지해 나가면서 한편으로는 독학으로 학문에 정진하여 드디어

30세가 되어서는 학문이 경지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하였고 제자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참고로 공자와 예수의 ‘이립’(而立)의 나이가 같음을 알 수 있다.
아버지인 요셉이 타계한 후에 경제적인 책임을 지고 홀어머니와

동생을 보살폈던 예수가 하느님의 뜻을 좇아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한 것은 서른 살이 되어서였다.
또한 공자도 15년간 학문을 갈고 닦아 학문의 경지를 이루고

세상에 대한 뜻을 세우고 제자들을 양성하기 시작한 것이

30세부터 이니 공자와 예수의 ‘이립’(而立)의 나이는 거의 같음을 알 수 있다.

요즈음 30의 나이는 15년간의 모든 학교공부를 마치고

어느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 취업을 하거나 사업 등

자기의 뜻을 펼치는 나이라 할 수 있다.
‘이립’(而立)학교에서 학문이나 전문분야를 익혀서

스스로 주관을 확고히 세워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스스로 자기의 길을 간다는 뜻이다.

▲ 32세는 ‘이모’(二毛) 또는 이모지년(二毛之年)이라고 하였다.

 

이모(二毛)란 머리털의 빛깔이 두 가지란 뜻이다.
흰머리 카락과 검은 머리카락이 반반인 것을 말한다.
중국 진(晋) 나라 때 반악(潘岳)이란 시인이 서른두 살 때

자기 머리가 반백(半白)이 된 것을 두고 쓴 시에서 유래 되었다.

▲ 40세의 나이를 ‘불혹’(不惑)이라고 한다.

 

불혹(不惑)은 ‘미혹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공자께서는 인생을 되돌아보고 오사십이불혹(吾四十而不惑)

‘내 나이 사십에 미혹되지 않았다.’라고 하신 말씀에서

40세를 불혹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사십대 나이인 『공자』가 처한 노나라의 정치상황은

왕이 권신에 의해서 불행한 죽음을 맞이하는 등 권세가가 판을 치고

하극상(下剋上)으로 정세가 불안정한 상황이었다.
이러한 정치 상황에서도 공자는 덧없는 정치적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주체성을 확립하여 학문과 교육에 전념하였다.

인생에서 40대는 가장 유혹에 흔들리기 쉬운 때라 할 수 있다.
즉 40대는 돈과 명예, 권력 그리고 이성에 대한 집착이 강한 때이고

그래서 이러한 것들의 유혹에 흔들리기 쉬운 나이이다.

또한 그 어느 때보다 욕심이 넘치는 때라 할 수 있다.
따라서 40대에는 어느 때보다 자기 자신을 절제하고

조심하여 부적절한 돈, 명예, 권력, 이성에 대한 유혹을 경계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순간의 유혹에 빠져 일생을 망치는 일이 없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매사에 욕심이 앞서지 않았나를 살피고 또 살펴야 실수나 과오가 없을 것이다.
매사에 욕심이나 이상이 앞서다 보면 실속을 차리지 못하고

허세를 부리기 쉽고 그로인하여 남에게 신뢰를 잃을 수 있게 된다.

허장성세(虛張聲勢)라는 말이 있다.
실속은 없으면서 허세로 떠벌린다는 뜻이다.
어쩌면 욕망과 과욕이 앞서는 40대가 교훈으로 삼아야 할 말이 아닌가 한다.

▲ 48세의 나이를 ‘상년’(桑年)이라고 한다.

이 말은 뽕나무 상(桑)자를 파자(破字)하면

십(十)자 세 개 밑에 나무목(木)자 형태의 속자를 쓴다.
이 글자를 하나하나 분해하면 열십(十)자 네 개와 여덟팔(八)자 하나가 된다.
그래서 (10 X 4) + 8 = 48이 된다.
그러므로 상년(桑年)을 48세라고 해학적으로 폴이 해 본 것이다.

▲ 50세의 나이를 지명(知名) 또는 지천명(知天命)이라고 한다.

 

즉 ‘50세에 하늘의 명(命)을 알았다.’는 뜻이다.
공자께서는 ‘오오십이지천명’(吾五十而知天命)

즉 ‘내 나이 50에 하늘의 命을 알았다.’라고 하신 말씀에서

 50세를 ‘지명’ 또는 ‘지천명’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공자는 51세부터 55세까지 4년간 출사(出士)하여 중도(中都)지방의

도지사격인 재(宰)를 시작으로 지금의 국토해양부 장관과

법무부장관에 해당하는 사공(司空)과 대사구(大司寇)의 벼슬로서 정치에 참여 하였다.
그러나 공자가 지향하려는 정치 이상이 현실정치와는
너무나

차이가 있었으므로 별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물러나야 했다.

그래서 후세사람들은 공자를 ‘실패한 정치인’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결국 공자는 인덕(仁德)과 덕치(德治)를 펼칠 수 있는 군자(정치 지도자)를

배양하는 것이야 말로 하늘이 나에게 준 명(命) 즉 ‘천명’(天命)임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보통사람에 있어서 의욕과 열정만으로 세상사를 자신했던 40대와는 달리

 50대가 되어서는 세상사가 인간의 의지와 노력만으로 되지 않고

그 어떤 하늘의 섭리 즉 ‘천명’(天命) 다시 말해 운명에 의한 것임을 알게 된다.
그래서 안 될 일에 억지를 부리지 않고 쓸데없는 욕심에서 조금은 벗어나게 된다.

그러므로 지금하고 있는 일이 비록 만족스럽지는 않더라도

그것이 나의 분수이고 하늘의 명 즉 운명임을 알아야 한다.

 

60세의 나이를 이순(耳順)이라고 한다.

즉 ‘60세가 되니 귀가 순해졌다.’는 뜻이다.
공자께서는 ‘오육십이이순’(吾六十而耳順)

‘내 나이 60이 되니 남의 말을 듣기만 하여도

이치를 깨달아 이해하게 되었다.’라고 하신 말씀에서

60세를 이순(耳順)이라고 한 것이다.

공자의 이 시기는 고국인 노나라에서

인덕(仁德)정치의 뜻이 좌절 되자 공자는 55세부터 68세까지 약 14년 간

몇 몇 제자들과 함께 노나라를 떠나 각국을 유랑하면서 각국의 왕들에게

인덕정치를 펼치도록 권했으나 각 나라마다 처한 정치현실이 너무나

각박한지라 공자를 존경하면서도 그 뜻을 받아들이지 못하였다.

심지어 공자의 도(道)에 대해 비방하는 자들도 많이 나왔다.
그 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를 유랑하는 동안 식량이 떨어져
굶기도 하고

또한 생명의 위협을 당하는 등 고난이 절정에 달한 시기였다.
그러나 공자는 이러한 좌절과 고난 속에서도 오히려 세상사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또한 다른 사람의 비방도 거슬리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는 달관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보통사람의 나이도 60이 되면 산전수전의 세상사를 경험한지라

세상사에 대한 어느 정도 달관의 경지에 이르게 되어

세상사에 대한 여유와 너그러움의 폭이 넓어진다.
그러므로 상대방으로부터 섭섭하고 불쾌한 말을 들어도

젊었을 때처럼 화를 내거나 서운해 하지 않고 어느 정도

여유를 갖고 너그럽게 이해하여 받아들이게 된다.

그런데 반대로 도리어 나이가 먹을수록 귀가 어두워져 더욱

완고해지기만하고 자기 고집만 내세우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쓸데없는 말이나 잔소리를 많이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급적
말수를 줄이고 대신 남의 말을 경청하며

또한 남에게 서운하거나 불쾌한 말을 들었을 때는

역지사지(易地思之)하여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이해하고 너그럽게 받아들일 줄 알아야 호감을 받는 어른으로 대접 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이 먹어서 버려야 할 것이 ‘노욕’, ‘노여움’, ‘노파심’의 3노이다.

61세를 환갑(還甲) 또는 회갑(回甲)이라고 한다.

 

또 미화하는 글자로서 화갑(華甲)이라고 쓰기도 한다.
사람이 태어나서 60년 만에 맞는 생일날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나이를 치는 법으로 하면 예순한 살에 맞는 생일이다.
천간(天干)과 지지(地支)의 해가 다시 돌아 왔다는 뜻으로

돌아 올 회(回)자나 환(還)자를 써서 회갑(回甲) 또는 환갑(還甲)이라고 한 것이다.
오늘날에는 평균수명이 늘어 예전에는 환갑을 넘기면 노인으로 보았으나

 2011년도 조사에 의하면 노인이라 여겨지는 나이는 66.7세로 나타났다.

▲ 62세를 진갑(進甲)이라고 한다.

 

환갑에서 한해 더 나아간 해의 생일이라고 해서

나아갈 진(進)자를 써서 진갑(進甲)이라고 한다.
참고로 북한에서는 남한의 ‘고희’의 나이인 70세 때의

생일을 ‘진갑’으로 삼고 있다.

▲ 우스갯소리로 65세를 지공이라고 한다.

 

 65세가 되면 지하철을 공짜로 타기 때문에

『지공』(地空)이라는 우스개 신조어가 떠돌아다닌다.

▲ 70세 나이를 ‘고희’(古稀) 또는 ‘종심’(從心)이라고 한다.

 

‘고희’란 말은 당나라 시인인 ‘두보’(杜甫)가 ‘사람이 70세를 산다는 것은

예로부터 드물구나.’라는 뜻의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에서

고래희(古來稀)를 줄여 70세를 고희(古稀)라고 한 것이다.
그래서 칠순잔치를 고희연(古稀宴)이라고 하는 것이다.
70세를 또 다른 말로 종심(從心)이라고 하는데 이 말은

공자께서 말년에 ‘내 나이 70이 되니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하여도 법도를 넘어서거나 어긋나지 않았다.’라는 뜻의

오칠십이종십소욕불유구’(吾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라는 말에서

70세를 종심(從心)이라고 한 것이다.

이시기의 공자는 14년간 각국을 다니면서 인덕정치의 뜻을 펼쳐보려 했으나

모두 뜻을 이루지 못하고 69세에 고국인 노나라에 돌아와서 모든 정치의 뜻을

단념하고 마지막으로 시, 서, 예, 악(詩, 書, 禮, 樂)등 고전 학문연구에 몰두하였다.
이때 공자는 몸과 마음이 성현의 도(道)와 일치 하였다.
다시 말해 하학이상달(下學而上達)

즉 ‘자신의 학문과 도가 하늘의 이치와 통했다.’라고 한 것이다.
그야말로 자신의 학문과 도가 달관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공자는 임종 수일 전에 손에 지팡이를 들고

문전을 걸으면서 하늘을 보고 한탄하며 노래했다.

태산이 무너지고 대들보가 허물어지며 슬기로운 철인(哲人)이 시드노라.’하며

자기의 죽음을 예견하고 73세(기원전479)에 서거하였다.

우리 인생에 있어서 70부터는 모든 욕심과 욕망을 버리고

마음을 비워 서서히 인생의 갈무리를 준비해야할 시기라 할 수 있다.
사람은 죽기 전에 다시 말해 이승의 세계에서 저승의 세계로 가기 전에

반드시 살아오면서 짓게 된 죄업과 때를 말끔히 씻고 가야하는 것이다.
이것이 인생의 갈무리인 것이다.

그러므로 70부터는 현실에 대한 욕망과 집착을 버리고 빈 마음으로

오로지 자기를 갈고 닦고 참회하여 깨끗하고 아름다운 인생의

마침표를 찍도록 해야 할 것이다.

 

▲ 70세부터 80세까지 노인을 모질(耄耋)이라고 일컬었다.

‘모’(耄)는 70세 노인을 ‘질’(耋)은 80세 노인을 뜻한다.
‘우리 할머니는 한평생을 참으로 모질게 살아 오셨다.’라 했을 때

‘모질게’는 바로 이 모질(耄耋)에서 왔다 할 수 있다.

▲ 77세의 나이를 ‘희수’(喜壽)라고 한다.

이 말은 기쁠 희(喜)자를 초서로 흘려 쓰면 七十七(칠십칠)이라고

쓴 뜻이 보인다고 해서 이런 이름을 붙였다.

▲ 80세의 나이는 산수(傘壽)라고 한다.

우산 산(傘)자를 약자로 쓰면 여덟 팔(八)자 아래에 열십자(十)를 쓴다.

그래서 ‘八十’이 되니까 80세나이를 ‘산수’(傘壽)라고 한 것이다.

▲ 81세 나이를 ‘망구’(望九)라고 한다.

81세가 되면 90세를 바라보게 된 다고해서

 ‘구십을 바라보는 나이’라는 뜻인 ‘망구’(望九)라고 한 것이다.
음은 같지만 글자와 뜻이 다른 말로 ‘나이 값도 못하는

망녕된 할미’라는 뜻의 ‘망구’(妄嫗)가 있다.
늙은 여자를 조롱하거나 얕잡아 볼 때 쓰는 ‘할망구’와 같은 말이다.

▲ 90세 나이를 졸수(卒壽)라고 한다.

졸(卒)자의 변체를 아홉구(九)자 아래 열십(十)자를 쓴다.
그래서 구십(九十)이 되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다.

▲ 91세 나이를 망백(望百)이라고 한다.

91세가 되면 100세를 바라보게 된다고 해서

‘100세를 바라보는 나이’라는 뜻인 ‘망백’(望百)이라고 한 것이다.

▲ 99세를 백수(白壽)라고 한다.

백수의 유래가 참으로 위트에 넘친다.
일백 백(百)자에서 윗부분의 한 일(一)자를 없애면 흰백(白)자가 된다.
이것을 숫자로 표현하면 100-1=99와 같다.
그래서 99세를 나타내는 한자어를 백수(白壽)라고 한 것이다.
얼마나 위트에 넘치는 표현인가.

▲ 100세 기수(期壽) 또는 상수(上壽)라고 한다.

그래서 100세에 하는 생일잔치를 상수연(上壽宴)이라고 한다.

▲ 108세 나이를 차수(茶壽) 또는 ‘다수’(茶壽)라고도 한다.

이 말은 사전에 게재된 말은 아니다.
절에서 어느 스님이 차를 끊이다가 생각해낸 말로서

그저 우스갯말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茶’차라는 뜻의 ‘차’또는 ‘다’로 읽는 이 글자를 분해하면

十, 十, 八十, 八(10, 10, 80, 8)이 되어 모두 더하면 108이 된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까지 10세에서 108세까지 나이에 대한 한자어 의미를 풀어보았다.
신이 인간을 이 세상에 내려 보낼 때는 원래 120세의 수명을 부여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인간이 욕망으로 인하여 하늘의 이치와 자연의 섭리를 저버리고

살기 때문에 부여 받은 수명을 다 못살고 죽는 것이라 하였다.

그래서 누군가 ‘우리 인간은 스스로를 죽인다.’해서

자살(自殺)하고 있다고 하고 표현하고 있다.’

앞으로 의술의 발달과 삶의 질 향상으로 이제

곧 100세시대가 도래된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신이 부여해준

120세의 수명을 사는 것도 멀지 않으리라 기대해 본다.

2000년도 현재 전 세계 100세 이상의 노인은 13만 5천명이고

앞으로 2050년에 가면 220만 명이 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2000년 현재 100세 이상의 노인은 2221명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우리나의 최고령자는 117세를 사신

 ‘최남이’할머니와 115세를 사신 ‘손영만’할아버지이시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로는 ‘무두셀라’가 969세, ‘노아가 600세,

’모세‘가 120세,’아브라 함‘이 170세를 살았다고 되어 있다.
실제로 이 세상에서 120세를 넘겨 산 사람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하는 궁금증에서 인터넷 자료를 통해 알아보고자 한다.

기록에 의하면 세계에서 120세 이상을 산 사람은 134세, 138세, 140세,

141세, 146세, 148, 153세(2명), 157세, 160세(2명), 166세, 169세가 있다.
지금까지의 기록으로 볼 때 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 산 사람은 중국의

‘리청유엔(이충윤)’이라는 사람으로서 무려 253년(1680년 ~ 1933년)을 살았다고 한다.
이 노인이 살았던 시기는 중국 역사로 보면

청왕조 때부터 중화민국 ‘장개석’ 정부 때까지고

우리나라 역사로 보면 조선 숙종 때부터 일제시대까지이다.

이 노인은 어려서부터 부모와 함께 깊은 산중에 살며

약초를 캐고 장수비결을 수련하였다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깊은 산중에서 약초를 찾던 중

신선을 만나 신선으로부터 기공을 통해서 숨을 쉬는 방법과

운동법과 섭생법을 배워서 장수하였다고 한다.
이 노인이 251세 때인 1927년 시안의 장군이 그 노인을 초청해서

융숭한 대접을 하고 그 노인의 사진을 남겼는데

그 사진이 바로 현재 남겨진 유일한 사진이라고 한다.

중국 쳉두대학교의 ‘우중치에’교수는

1827년 중국 청나라 황실이 이 노인의 150살 생일을 축하한

공식문서를 발견하여 그가 실제로 250세가 넘었음을 규명했다.
이 노인은 일생동안 23명의 부인들과 사별하였고 200명의 자손을 두었다 한다.
또한 이 노인은 키가 7척이 넘었고 무척 긴 손톱을 가지고 있었으며

살아생전 200살이 넘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한다.
그 노인이 죽기 전인 1933년 5월 15일한 인터뷰 기사에서

그 노인은 자신의 장수비법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인생은 ‘얼마나 살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살았느냐’에 의미가 있다.
그래서 ‘나이는 숫자 놀음이 아니다.’라 한 것이다.
그리고 ‘인생을 어떻게 마감할 것이냐.’에

인생의 가치를 두고 살아야 할 것이다.

행백리자 반구십리’(行百里者 半九十里)라 하였다.
시경(詩經)에서 인용된 말로

100 리를 가는 사람은 90 리를 절반으로 삼으라.

다시 말해 ‘100리 길을 가야하는 사람이 90 리를 오고서도

아직도 한 절반쯤 더 가야하는 구나.’하는 마음가짐으로

나머지 10리 길도 최선을 다해 가라는 뜻이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죽는 순간까지 한 순간이라도 흐트러짐 없이 자기 인생을 살아야

그 인생의 연륜에 아름다운 마침표를 찍을 수가 있는 것이다.

당나라의 시성(詩聖) ‘두보’는 그의 시(詩)에서 ‘개관사정’(蓋棺事定)이라 하였다.
즉 ‘사람은 죽고 난 뒤에야 올바르고 정당한 평가를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인생은 태어남의 의미보다 죽음의 의미가 더 큼이 아니겠는가.

명심보감 성심편에 보면

미귀삼척도(未歸三尺土)하여는 난보백년신(難保百年身)이요.’

‘이귀삼척토(已歸三尺土)하여는 난보백년분(難保百年墳)이니라.하였다.
즉 ‘사람은 살아있는 동안 무탈하게 명예를 지키며 살기가 어렵고

또 죽어서도 영원히 그 명예를 보존하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그렇다, 명예로운 삶을 잘 지키며 살다가 어느 한 순간의 실수나 탐욕 등의

과오로 그 명예로운 삶을 불명예의 삶으로 추락시킨 경우를 많이 보아왔다.
또한 평생 동안 공적을 쌓고 명예롭게 살다가 노년의 탐욕으로 안타깝게도

평생 쌓은 공든 탑을 무너뜨리고 불명예스런 인생으로 끝을 맺는 경우도 많이 보아왔다.
그래서 살아있는 동안뿐만 아니라 죽어서도

그 명예를 보전하기가 어렵다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인생은 얼마나 살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살았느냐.’라 했다.

그러면 인생을 어떻게 사느냐에 의미를 두고 사는 방법은

무엇일까 바로 자기관리가 그 답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죽는 순간까지 자기관리를 하며 살아라.’ 하는 것이다.
필자가 늘 주창하는 자기관리란 ‘건강관리’ ‘지식관리

시간관리인간관리’ ‘영혼관리’이다.
자기관리의 영순위인 건강관리는 적당한 영양섭취와 운동이다.
이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그러므로 하루 일과 중에서 영순위로 정하여 실천해야 한다.

다음에는 지식관리다.
즉 평생 동안 자기 계발을 위하여 끊임없이 배우고 익히는 것이다.
자기 계발에 있어서 각각의 분야가 있겠지만 누구에게나

필수적인 것이 바로 역사, 철학, 문학 등 인문학을 통해서

교양을 쌓고 인격도야를 하는 일이다. 

시간 관리다.
인생은 시간으로 이루어졌다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시간을 잘 관리하며 산다면 그 인생은 성공한 인생이 될 수 있다.
절대 시간을 무의미하고 헛되게 보내지 말아야 할 것이다.
특히 톱니바퀴처럼 꽉 짜인 바쁜 일상생활 속에서도 틈새 시간을 찾아

운동이나 독서, 취미생활 등 자기 계발을 한다면 정말 알찬 삶이 될 것이다.

인간 관리이다.
즉 어떻게 남과의 관계를 잘 맺으며 살아가느냐 하는 것이다.
사회생활에 있어서 인간관리 즉 남과의 관계는 성공의 전제조건이라 할 수 있다.
인간관리 즉 남과의 관계에 있어서 지녀야 할 필수 덕목은

 ‘신의’와 ‘겸손’과 ‘역지사지’(易地思之)라 할 수 있다.
증자께서는 하루를 반성하는 세 가지 중에

 ‘그날 만난 사람에게 신의(信義)를 다 하였는가.’라 하였고

공자께서는 남과의 관계에 있어서 ‘안지’(安之) 즉

‘편안함을 주고’. ‘신지’(信之) 즉 ‘믿음을 주고’, ‘회지’(懷之)

즉 ‘동경의 대상’이 되도록 하라 하셨다. 

영혼관리이다.
어느 작가가 말하기를

‘어머니 뱃속에서는 태어날 세상을 위하여 기도를 하고

이 세상에서는 죽어서 갈 저 세상을 위하여 기도하라.’했다.
죽어서 가는 저 세상이 영혼의 세계라 할 때 살아 있을 때

혼백(魂魄)관리를 잘하여 죽은 후에 나의 영혼이

맑고 깨끗하고 영롱하게 빛나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세에서 죄업을 짓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고

특히 남에게 척을 짓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티끌세상을 살아가는 속인들로서는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그러하니 항상 자신을 수양하고 또 기도와 신앙을 통해 죄와 허물을 용서 빌어야 할 것이다.

하늘은 인간을 이 세상에 내려 보낼 때

저마다 이 세상을 살아갈 복을 다 내려 주셨는데

어떤 사람은 노력하지 않아 평생 내려준 복도 누리지 못하고 죽고,

어떤 사람은 하늘이 내려준 복 보다 많이 누리려고 탐욕 하다가 인생을 파멸시킨다.
그러므로 열심히 노력하지만 탐욕하지 않고 하늘이 내려준 복만큼 살다가 간 사람이

제일 인생을 잘 살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근위무가지보’(勤爲無價之寶)

즉 ‘근면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보배라.’했다.

그러므로 하늘이 내려 준 복은 근면으로서 누려야 할 것이다.
신시호신지부’(愼是護身之符)

즉 ‘삼가하고 조심함은 몸을 보호하는 부적’이라 했다.
그러므로 하늘이 내려준 생명을 삼가고 조심함으로서 잘 보전 하여야 할 것이다.
맑은 하루의 끝은 노을로 아름답고,

자기관리를 잘하며 살다간 인생의 끝은 향기로움이다.’ 

              끝

 

필자 김충남 교수는 서예가이며 한학자인 일당(一棠)선생과

'정향'선생으로 부터 한문과 경서를 수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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