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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수회(花樹會) 어원(語原)

칠봉인 2015. 5. 3. 18:56

화수회(花樹會) 어원(語原)를 찾아 봅니다.

  (花 꽃화,  樹 나무수,  會 모일회)

 

화수회(花樹會)란 종친회(宗親會)와 그 명칭만 달리할 뿐

모두 동성동본의 일족이 모여 조직한 친목조직이며 친목단체이다.

정확한 구분은 본문 아래에 올려 놓은 종친회와 화수회를 구별하는

내용을 참고하시면 되는데 요즘은 동일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같은 성씨의 문중에 종친회나 화수회가 존재하고 있다면

종친회는 전체를 아우르는 대종회 개념의 단체이고

화수회는 일정지역의 동성동본 파조(派祖) 개념의 친목단체 모임이다.

집안에 따라 대종회의 명칭대신 화수회를 사용하는 집안도 있다.

 

사전적인 의미로는 같은 성(姓)을 가진 사람들이

친목을 위하여 이룬 모임이나 잔치를 말한다.

 

화수(花樹)'란 꽃나무를 뜻하며

하나의 뿌리에서 많은 가지가 나와 달린 열매란 뜻이고,

종친회의 “종(宗)”자는 같은 할아버지의 후손이란 뜻으로

한 집안 한 가문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들 명칭 외에도 각 성씨에 따라서 대종회(大宗會), 종문회(宗門會),

동종회(同宗會), 종회(宗會), 대동종약원(大同宗約院) 등의 명칭도 사용하고 있다.

 

 

이들 명칭은 다르지만 조직의 기본성격은 같으며

자손이 크게 번성하여 파계(派系)가 많은 집안은 중시조(中始祖)

또는 파조(派祖)로 구분하고 입향조(入鄕祖)를 중심으로 하는

종회(宗會)도 조직하고 있다.

 

파별(派別) 또는 지방별(地方別)로 조직되어 있는 경우도 많으며,

이때 대종회나 중앙종회는 이들의 중앙본부 내지 연합체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화수회란 명칭은 지금으로부터

약 1200년전부터 그 유래를 찾아 볼 수 있다.

 

당나라 때의 위씨(韋氏)들이 섬서성 장안현(陝西省長安縣)에 있는

위곡(韋谷)에서 집안 친목회를 결성하고 대대로 살았는데

그 후손인 당나라 시대의 위장(韋莊. 836~910)이 섬서성(陝西省)

장안현(長安縣)에 있는 위곡(韋谷)의 명승지 '화수(花樹)'에

친족을 모아 놓고 술을 마신 종회법(宗會法)에서 그 유래를 찾고 있다.

종족의 모임에 화수(花樹)라는 공식적인 명칭의 사용은

당나라 잠삼(岑參. 715~770)의 “위원외화수가(韋員外花樹歌)” 라는

시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당나라 때 위씨(韋氏)들의 화수회(花樹會)를 보고 잠삼(岑參. 715~770)이

 ‘위원외화수가(韋員外花樹歌)’의 시를 지은 것이 그 유래인 것이다.

 

잠삼(岑參)의〈위원외화수가(韋員外花樹歌)〉시

 

君家兄弟不可當 (군가형제불가당) 그대의 집 형제를 당할 수 없나니

列卿御使尙書郞 (열경어사상서랑) 열경과 어사와 상서랑이 즐비하구나.

朝回花底恒會客 (조회화저항회객)  조정에서 돌아와서는 늘 꽃나무 아래 모이나니

花撲玉缸春酒香 (화박옥항춘주향)  꽃이 옥 항아리에 떨어져 봄 술이 향기로워라.

 

위씨(韋氏)들이 친족을 모아 놓고 술을 마신 고사에 의해서

화수회(花樹會)라는 말이 생겼지만 처음 화수라는 명칭의 사용은

잠삼(岑參. 715 ~770)의 "위원외화수가(韋員外花樹歌)" 의

 시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중국 북송(北宋) 시대의 문인 소순(蘇洵, 1009년~1066년)의

‘화수회 효시’ 설은 馬琦聲(마기성)씨 작 書藝槁選(서예고선)에

“蘇洵(소순)이 돈목지정(敦睦之情)이 남달라 봄에 화초와

수목이 우거진 동산에서 일족을 모아놓고 친목회를 개최한 것이

花樹會(화수회)의 嚆矢(효시)라고 하지만 잠삼(岑參, 715~770)과

위장(韋莊, 836~910)보다 후대의 인물에 해당된다.

 

우리나라 기록을 보면 고전번역원의 번역서 중

「성호전집 제2권」의 시(詩) ‘꽃을 구경하며.

옛 시에 차운하다. 3수’ 가 있는 마지막 3수에

[新歡花樹未全空 / 새 기쁨이라 화수는 전혀 헛되지 않아라]에서

시의 ‘화수(花樹)’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주D-008] 화수(花樹) : 친족의 모임을 뜻한다.

 

종친회[宗親會]  이칭별칭 : 화수회

 

예전에는 종친회와 화수회의 개념은 다음과 같이 정확하게 

구별하였지만 지금은 같은 개념의 용어로 쓰인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모임의 명칭제정시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

 

정의

집단적인 정체성(正體性)을 가지는 부계 친족집단(父系親族集團)의 조직.

 

내용

종회(宗會)라고도 한다. 신분제도를 바탕으로 하던 전통사회에서는

죽은 조선(祖先)과 산사람의 업적 및 명예 같은 친족집단이 가지고 있는

상징적 자산에 따라 신분이 결정되었다.

따라서 친족집단은 그 상징적 자산을 유지, 확대하기 위해서 통합을 추구하고

협력적인 조직을 형성하려고 하였다. 친족집단의 그러한 조직을 종친회라고 한다.

전통사회에서는 전체 부계 친족집단 즉, 동성동본집단이 하나의

통합적인 조직의 기능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가 곤란하였다.

 

첫째, 세대가 지남에 따라 규모가 커지면서 지역적으로 널리 퍼져 거주하게 되었으며

        그러한 전체 집단이 하나의 통합된 조직을 이루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둘째, 동성동본집단 내지 일정한 공동조건을 중심으로 하는 하위의 친족집단이 상징적

        자산을 달리함으로써 다른 사회적 지위를 부여받고 본래의 친족집단과

         다른 집단적 정체성을 발전시키게 되기 때문이다.

 

즉, 명신·거장·석학 등을 공동의 조선으로 하여 종전의 전체 친족집단과는 다른

정체성을 가지는 집단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우에 성을 같이하면서 본을 달리하는 수도 있었으나 성과 본을 같이하면서

파만 달리하는 수가 많았다. 그리고 이 파가 흔히 독자적인 하위의 친족조직을 구성하였는데

그러한 조직을 파종회(派宗會)라고 한다.

그에 대해서 동성동본집단 전체의 조직을 대종회라고 한다.

 

동성동본집단이 구성하는 대종회는 주기적으로 족보를 편찬하고(그것을 대동보라고 한다)

조선숭배를 위한 제사와 사업을 행하고, 동성불혼제를 실시하는 정도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현재까지 연구된 바에 따르면, 기록된 대종회로서

가장 오래된 것은 1580년(선조 3)의 안동 김씨 종약소이다.

그러나 우리 나라 족보의 편찬역사가 이미 15세기에

시작되고 있으므로 대종회의 역사는 더 오래일 것 같다.

 

족보의 편찬이 그러한 조직을 필요로 하고 또 그것을 가능하게 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파종회는 대종회보다 더 실질적인 협력체계를 유지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것은 그러한 협력적 체계를 물질적으로 뒷받침하고 많은 파종회에서

공동재산을 오래 전부터 설립, 운영하고 있는 데서 알 수 있다.

 

공동재산은 대종회의 경우에도 있었지만 그것은 눈으로 볼 수 있는 자산으로서

집단의 세력과 지위를 나타내는 지표가 되기 때문에 세력과 지위를 비교적

같이하는 파종회의 경우에 더 발전하고 있는 것 같다.

 

또 파종회는 집단운영의 기초로 삼고, 집단의 상징적 자산을 유지, 과시하며

독자적인 집단적 정체성을 확인, 강조하기 위해서 독자적인 족보(그것을 파보라고 한다)를

 편찬하고, 서원·재각(齋閣) 등을 다투어 세우기도 하였다.

 

그러나 보다 친밀하고 일상적인 협력체계를 유지한 것은 혈연적으로 보다 가깝고,

따라서 신분 지위가 보다 유사하며, 또 생활기반을 같이하는 자연촌락 중심의 친족조직이었다.

그러한 조직을 일반적으로 종친회 혹은 문회(門會)라고 한다.

 

종친회가 이념으로 하는 중요한 기능은 다음과 같다.

 

첫째, 족보를 편찬하는 것이다. 친족의 집단적 정체성은 공동의 남자

        조선에 대한 관계에 의해서 형성되며, 족보는 그 관계를 확인하기

        위해서 필요하기 때문이다.

 

둘째, 조선숭배를 위한 제사와 사업을 행하는 것이다.

         그것은 대내적으로는 친족집단의 유대를 확인하고, 대외적으로는

         조선의 업적과 명예를 드러냄으로써 신분을 유지, 과시하기 위하여

         필요하기 때문이다.

 

셋째, 집단성원간의 혼인을 금하는 동성불혼제를 지키는 것이다.

         그것은 혼인에 따른 집단성원간의 갈등을 막기 위해서 필요하기 때문이다.

 

넷째, 법률적·도덕적 질서에 바탕을 두면서 집단성원에 대해서 사회 통제를

        시행하는 것이다. 그것은 친족집단의 명예와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섯째, 친족집단 공동의 복리를 추구하는 것이다. 빈한한 성원을 돕는 것과

          청소년의 교육을 뒷받침하는 것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그것은 성원 공동의 상징적 자산을 유지, 확대하는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종친회는 이러한 기능을 협력하여 수행하기 위해서

         친족집단 공동의 재산을 장만하여 운영하기도 한다.

 

이와 같이 종친회는 대체로 친족집단의 상징적 자산의 유지와 발전을 꾀하고

공동재산을 장만, 운영하면서 보다 실질적인 협력체계를 발전시키고 있다.

 

즉, 그들은 공동의 재산으로 조선숭배를 위한 제사와 사업을 행하는 것은 물론이고

종손(宗孫)을 보호, 유지하며 빈한한 성원을 돕고 청소년의 교육을 지원함으로써

집단의 공동복리를 추구하며, 또 법률적·도덕적 규범에 위반하는 성원에 대해서는

경고·매질·추방 또는 친족관계의 단절을 의미하는 할보(割譜) 등의 형태로 직접 제재를

가함으로써 사회 통제의 기능까지 하였다.

 

그리하여 이러한 종친회는 하나의 독자적인 협력체계를 형성하면서 동시에 상위조직인

파종회 또는 대종회의 활동에서 중요한 기본 단위의 구실을 하였다.

 

즉, 상위조직 단위의 제사 기타 공동활동에서 대표를 선출하는 단위가 되기도 하며

족보를 편찬할 때에 명단을 수집하는 수단사업(修單事業)의 단위가 되기도 하며,

또 공동재산을 설립할 때에 그 몫을 분담하는 문배(門配)의 단위가 되기도 하였다.

 

전통사회에서 대종회-파종회-종회 등의 친족조직은 조상의 제사를 목적으로 하는

문중과 함께 전통적인 친족제도를 유지하고 중요한 틀을 이루었으며,

그러한 조직은 하위 단위로 내려갈수록 형식적으로 더 정비되고

또 실질적으로도 강한 협력인 체계를 유지하였다.

 

신분제도가 폐지되고 사회적·지리적 이동이 커지는 산업사회에서는 친족제도가

일반적으로 쇠퇴하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는 친족제도의

틀을 이루는 친족조직이 새로운 양상으로 발전하고 있다.

 

즉, 지역사회의 인구가 도시로 떠남에 따라서 자연촌 중심의 하위친족 단위의 조직이

쇠퇴하는 반면에 파종회 또는 대종회 등의 상위친족 단위의 조직과 기능이 이전보다

더 정비, 강화되는 경향을 나타내고 있다.

 

근래에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파보(派譜) 또는 대동보의 편찬도

그러한 상위 단위의 종친회 조직에 대한 지향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리고 상위 단위의 종친회 조직에 대한 지향성은 동성동본 단위의

종친회를 조직하는 데 끝나지 않고, 조상이 같다고 전해지는 동성이본(同姓異本)

또는 이성동본(異姓同本)·이성이본(異姓異本) 집단도 하나의 통합된 종친회를

조직하는 경향으로 나타나고 있다.

 

예컨대 김해 김씨·김녕 김씨·양근 김씨가 공동으로 조직한

익화 김씨 종친회(益和金氏宗親會), 김해 김씨·인천 이씨·김해 허씨가

공동으로 조직한 가락 중앙 종친회(駕洛中央宗親會) 같은 것에서

그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상위친족 단위의 종친회는 조직을 정비, 통합하고 있을 뿐 아니라

기능도 강화하고 있다. 즉, 족보의 편찬은 물론 조선숭배를 위해서 묘역(墓域)·

재실(齋室)·제각(祭閣)을 보수, 강화하기도 하고 성씨의 역사서·인물지 등을 발간하기도 한다.

 

또, 친족집단 정체성을 확인하고 공동의 복리를 추구하기 위해서 회관건립과

장학사업 실시, 종보(宗報) 발간, 친족집단 공동의 공원묘지 조성, 신년하례,

종원의 구휼사업, 친목회 같은 것을 열기도 한다.

 

이는 자연촌락을 중심으로 집단거주하던 친족집단이 산업화에 따라서

도시를 중심으로 지리적으로 다시 배치되고 사회경제적으로 계층이

다시 편성되며 교통·정보수단이 발달함에 따라서 전통적인 친족제도가

쇠퇴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적응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종친회와 유사한 친족집단 조직으로 화수회(花樹會)와 종약소가 있다.

화수회란 일정한 친족집단이 주로 친목을 위하여 일정지역을 중심으로 구성한 조직이다.

 

따라서, 대체로 두 가지 점에서 종친회와는 성격이 다르다.

 

첫째는 목적이 일차적으로 성원의 친목과 협력에 있으며,

          종친회나 종약소와 같이 조선과 종중 등 친족집단

          자체를 위한 체계적인 사업을 행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둘째는 그러한 목적과 관련해서 조직에 일정한 친족집단 자체가

         성원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일정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친족집단원이

         성원이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화수회는 종친회와 별도의

         조직일 수도 있으며 때로는 종친회가 없는 경우에 그에 준하는

         조직으로 구성되기도 한다.

 

과거에는 농촌지역을 중심으로 그러한 조직이 있었으나,

오늘날은 도시에 그러한 조직이 특히 발전되고 있다.

그리고 도시의 화수회의 경우에는 농촌지역에서보다 상위

친족집단의 조직으로 발전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가령, 조선이 같은 전의 이씨와 예안 이씨가 공동으로 조직한

전의 예안 이씨 화수회(全義禮安李氏花樹會) 같은 것이

그러한 경향을 나타낸다.

 

참고문헌

韓國家族制度硏究(金斗憲, 서울大學校 出版部, 1969)

朝鮮の聚落 後篇(朝鮮總督府, 1935)

同族集團의 組織과 機能(崔在錫, 民族文化硏究 2, 1966)

韓國의 傳統的親族制度의 組織과 그 機能에 관한 一考察(崔弘基, 曉岡崔文煥博士追念論文集, 1977)

都市·親族組織의 硏究(李光奎, 學術院論文集 人文社會科學篇 19,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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