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광복절만 되면 70주년이니 뭐니 하면서 이런 저런 기획물과 기념행사로
요란스럽게 떠든다.
방송기획물들도 나라 잃은 슬픔 克服記 아니면 抗日鬪爭談
같은 것을 만들어 방송해 된다
말하자면, 아무개가 왜놈을 향해 폭탄을 던지고, 독립군이 어느 전투에서 싸워 이겼다느니
하는 類의 나라 잃은 후의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들보다 천배만배 중요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즉 나라가 망한후의 이야기인 독립투쟁사나 우리가 일본놈으로 부터 당한 억울한 이야기 이런것들만 집중 조명할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라를 망하게한 원인이 된
무능과 치욕과 비리로 얼룩진 구한말의 참담하고 부끄러운 우리의 역사를 직시하고 이를 규명하는 행사와 방송에 포커스를 맞추어야 한다
당시 조정의 임금과 대신들이 그리고 백성들이 어떻게 하였기에
나라를 망쳤는가? 하는 점을 조명하여 무지몽매(無知蒙昧)함이 빚은 재앙을 상기시키는
일이 나라가 망한 후의 이야기인 독립 투쟁사 일본의 박해 이런것을 조명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즉 <한일합방>을 초래한 저 구한말 ‘조선의 無能’을 깨닫게 할 수 있는 행사나 방송이 더 중요하다
우리의 미래 세대들이 전철(前轍)을 밟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친일파보다 당시에 나라를 망하게 한 고관대작들 처벌이 우선이고 다음이 친일파다
이들이 나라를 깨끗하게 운영 했다면 친일파도, 위안부도 눈오는날 추운날 만주벌판에서 고생고생하면서 독립군이라는 이름으로 일본군과 싸워야만 하는 고통스러운 백성도 아예 생기지 않았다
위안부, 친일파, 만주 벌판에서 동상 걸려가며 독립군이라는 이름으로 고통속에서 일본군과 싸워야만 하는 고생하는 백성을 누가 만들었는가?
무능과 치욕과 비리로 얼룩진 구한말의 임금과 대신들이다
이들을 친일파보다 먼저 척결하는 것이 진정 나라를 바로 세우는 일이다
이들이 원천적인 원인 제공자들이다
친일파와 위안부를 양산한 이들을 반드시 반드시 단죄해야한다
왜 친일파 명단처럼 나라를 망하게한 이들의 명단은 만들지 않는가
지금과 후세의 고관대작과 임금이 구한말의 작태를
또 따라해서 나라 잃으면 우짤라꼬 이카나
<구한말의 작태>
‘매천야록’은 구한말 <황현(黃玹)>이 고종 1년(1864년)부터 순종 4년(1910년)까지
47년 간의 역사를 지식인의 눈으로 기록한 책이다.
그는 1910년 合邦領이 반포(8월 29일: 국치일)되자 絶命詩를 남기고 자결했다.
원문은 한문으로 돼 있어 번역본(옮긴이: 연세대교수 허경진)을 읽고 참조한 것임을 밝힌다.
한 번쯤 생각할 시간을 가져보시기 바란다.
[第1話]:
“國必自伐而後人伐之” (나라는 반드시 스스로 친 뒤에 남이 치느니라)
고종 31년 갑오년(1894)에 전라도 고부에서 민란(동학란)이 일어났다.
동학교도들이 全州를 함락하자 기세에 눌린 조정은 <청>나라에 원병을 청했다.
1894년 5월 5일에 청군이 아산만으로 상륙했고,
청일 양국 간에 맺은 ‘천진조약’에 의거 일본군도 하루 뒤인 5월 6일에 인천항으로 출병했다.
이때, 왜국 함대를 이끈 왜국 공사는 <오토리 게이스케(大鳥圭介)>였다.
그는 휴가 차 본국으로 갔다가 함대를 이끌고 돌아온 것이다.
서울에 도착한 그는 우리 정부에 <5강16조>의 개혁안을 내밀며 개혁을 요구했다.
분명한 내정 간섭이었지만, 그 내용을 보면,
우리 정세에 따라 처방해준 약이라고 할 만한 것들이었다.
모두 스스로 할 수 있는 쉬운 것들을 他에 의해서 하게 됨을 보고 <황현>이 탄식했다.
<우리가 힘써 행했다면 어찌 오늘과 같은 화가 있었겠는가?
옛말에도 이런 것이 있으니, 아 실졍.
“나라는 반드시 스스로 친 뒤에 남이 치느니라(國必自伐而後人伐之).”>
※≪孟子: (離婁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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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2話]:
청나라 공사가 임금의 매관매직을 비웃다.
고종 37년 경자년(1900) 12월에, 청나라 공사 <서수붕(徐壽朋)>이 본국으로 보고했다.
그가 처음 임금을 뵈었을 때, 조선의 기수(氣數=運數)가 왕성하고
풍속이 아름답다고 칭찬했다.
임금이 의아하게 여기고 그 연유를 물으니 그가 대답했다.
“저의 본국은 벼슬을 팔아 먹은 지가 십 년도 되지 않았는데 천하가 크게 어지러워져
종묘사직이 거의 위태로울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귀국은 벼슬을 팔아 먹은 지 삼십 년이나 되었는데도 제위(帝位)가 편안하니,
기수가 왕성하거나 풍속이 아름답지 않고서야 어찌 지금까지 이를 수 있었겠습니까?”
임금이 크게 웃으며 부끄러운 줄 모르자 서수붕이 나가면서 말했다.
“슬프구나, 대한의 백성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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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3話]:
<이지용>과 그의 아내 <홍씨>의 방자함이 하늘을 찌르다.
고종 43년 병오년(1906), <이지용>이 특파대사로 일본에 갔다.
이때 그의 아내 <홍씨>가 <이홍경>이라 이름을 짓고 함께 갔다.
이홍경은 처음에 왜국관리 <하기와라 슈이치(萩原守一)>와 정을 통했고,
<이완용>이 며느리와 간통하자 아들이 자살하다.
일본 박람회에서 한국인을 구경거리로 전시하다.
왜놈에게 유인당해 동경으로 갔다.
<안중근>이 <이등박문>을 죽이자 우리 정부의 대응은 이랬다.
[제2화]는
[제3화] 및 [제4화]는 권
권력이 얼마나 인간을 황폐하게 만들고
‘無知함의 悲哀’를 느끼게 합니다.
속의 면면을 보면, 영혼도 국가관도 없는 관료와 國害의원들을 생각하게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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