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어쩌구 저쩌구

김선달이 '봉이'가 된 사연

칠봉인 2020. 5. 5. 10:14

김선달이 '봉이'가 된 사연

김 선달은 서울 장안을 자주 드나들었다.
한 번은 사람들로 붐비는 장터로 구경을 나섰다.
그런데 장터 한쪽에 닭장(鷄市場)이 서서 온갖 닭들이 우글댔다.
김 선달이 닭장 속을 이리저리 살펴보니 유난히 살이 포동포동하고

털에 윤기가 흐르는 닭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김 선달은 시치미를 뚝 떼고 닭 장수에게 물었다.
"주인장, 이게 무슨 날짐승이오?

거참 통통한 게 보기 좋구먼"

그 말을 듣자 주인은 눈을 크게 뜨며 속으로 생각했다.
"세상에 얼치기가 많다고 하더니만 이런 놈을 두고 하는 말인가 보구나.

닭도 못 알아보는 걸 보니 꽤나 어리석은 놈인가 보다"

주인은 김 선달이 얼치기인줄 알고 골려먹을 셈으로 이렇게 말했다.
『이건 봉(鳳)이요』
난데없이 닭을 봉황새라고 속인 것이었다.
『뭐, 봉이라고? 오호, 말로만 듣던 봉황새를 여기서

제대로 보게 되었군. 그래, 그 새도 파는 것이오?』
『물론이오. 팔지 않을 거면 뭐 하러 장터까지 가지고 나왔겠소?』
주인은 이제 제대로 걸려 들었구나 하고 생각했다.
『값은 얼마나 받을 생각이오?』
『열 냥만 내시오』
닭은 한 냥씩 받고 팔고 있지만, 봉은 닭보다 훨씬 값어치가

나가기 때문에 열 곱은 더 내야 한다는 게 주인의 주장이었다.
김 선달은 값을 깎을 생각도 않고 주인이 달라는 대로

열 냥을 고스란히 건네주고 닭을 샀다.

그리고는 곧바로 관가로 달려갔다.
김 선달은 관가를 지키고 있는 문지기에게

품에 안고 온 닭을 보여 주며 말했다.
『내가 방금 귀하디 귀한 봉황을 구했는데,

이것을 사또에게 바치려고 하오. 그러니 사또께 말씀을 전해 주시오』
그리하여 김 선달은 닭을 가지고 사또 앞에 나가게 되었다.
하지만 천지개벽을 한들 닭이 봉이 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결국 김 선달은 사또를 희롱한 죄로 곤장 열 대를 맞았다.

『사또, 억울합니다. 맹세코 저는 죄가 없습니다』
꼼짝없이 곤장을 다 맞은 김 선달이 눈물을 질금거리며

사또를 향해 하소연을 했다.
"이 놈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구나. 닭을 봉이라고

속인 죄가 얼마나 중죄인데 죄가 없다는 것이냐?"
"저는 그저 닭장수가 봉이라고 하기에

닭 값의 열 배를 치르고 샀을 뿐입니다"

그 말을 듣자 사또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뭐라고? 분명 닭장수가 봉이라고 했단 말이냐?』
예, 그렇지 않고서야 제가 왜 닭 값의 열 배나 치렀겠습니까?
『음, 그래.........』
사또는 제법 영민한 사람이어서 상황을 금방 눈치 채고는

닭장수를 불러들이게 했다.
『네가 닭을 봉이라고 속여 열 냥을 받고 판 게 사실이냐?』
볼기를 맞아 얼굴에 잔뜩 독이 오른 김 선달이 노려보고 있는 터라

거짓말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어서 닭장수는 사실대로 고하고 말았다.
『그렇다면 이제 어찌하면 좋겠느냐?』
사또가 김 선달을 보며 말했다.

『저 자가 저를 속여 공매를 열 대씩이나 맞았으니

저도 그 대가는 받아야겠습니다. 제가 닭 값의 열 배를 주고

가짜 봉을 샀듯이 저자에게 제가 맞은 곤장의 열 배인 백 대를 쳐주십시오.

아니면 제가 저 자에게 준 열 냥의 열 배인

백냥을 지불하라고 판결해 주십시오.

그렇게 하면 모든 것이 공정할 듯 싶습니다』

사또가 듣고 보니 그럴 듯한 이야기였다.
결국 닭장수는 거의 살아서 돌아갈 수 없을 것이

분명한 곤장 백 대를 포기하고, 김 선달에게

백 냥을 주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 하였다.

뒷날 이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전국 각지에 퍼져

사람들은 김 선달의 이름 앞에 '봉이'라는 별칭을 붙여서 부르게 되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어리숙하여 무엇이나 빼앗아 먹기 좋은 사람을

농으로 일컬을 때 '봉 잡았다'는 표현을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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