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어쩌구 저쩌구

설날 뭐하노?

칠봉인 2012. 1. 20. 08:31

테레비나, 인터넷만 보시지 말고 함 놀아보자 이번 설엔

뭐라꼬! 마누라 일 많다고 입이 됫빡 나왔는데 놀자고 맘이 편해야 놀지

아이다 우리 형수님은 일년에 명절포함 제사를 열 볓번인가 하시는데도 항상 웃고 밝으신데 하도 신기하여 형수님 안 피곤 하세요 하니

형수님 왈 이거 당연히 내가 해야 할 일이다 생각하면 덜 피곤하죠 안해도 될일 굳이 내가 안해도 될 일인데 이런 생각을 가지면 무지 피곤하고 슬슬 짜증나기 시작 하죠 새벽에 매일같이 일찍 일어나 콩나물 시루 같은 지하철 타고 회사가서 하루종일 시달리는 사람도 있는데요 뭘

이정도면 살아 있는 신사임당^^ 존경합니다, 형수님 고맙습니다, 시동생들은 몽땅 형보다 형수말을 더 받든 답니다

우리 집안은 형과 형수가 싸우면 부모님 포함 시동생들 몽땅 형수님 편, 집나갈 일 있으면 아마도 형이 쫓겨 날 판 ㅎㅎㅎㅎ

그래애~서 인덕으로 집안 모든 사람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여 형수님 천하를 만들어 버렸죠  고도의 용병술 ㅋㅋㅋㅋㅋ

어쨌거나 저쨌거나 설날놀이는 소개 합니다

 

1.윷놀이

 

(1) 유래

 

우리 나라에서 윷놀이가 언제부터 놀아졌는지에 대해서, 이익의《 성호사설》 [사희조]에는 고려 때부터의 일이라고 한다. 그러나《수서》 등의 기록으로 보아 삼국시대에 이미 있었을 것이라고 보는게 일반적이다.

 

이러한 윷놀이의 기원에 대해서는, 윷놀이가 중국의 '격양'이나 '저포'와 비슷하고 몽고의 '살한'이라는 놀이와도 많이 유사하다는 연구가 있었지만 어느 것이 윷놀이의 원형이라고 단정하지는 못한 상태이다. 따라서 아직 윷이나 윷판의 유래는 명쾌하게 밝혀져 있지 않다.

 

(2) 놀이 도구와 놀이 방법

 

1) 놀이 방법

 

일반적으로 윷놀이는 개인끼리 또는 여럿이 편을 갈라 윷가락이나 윷쪽을 윷판에 던져 윷이 나온 결과에 따라 말을 쓰면서 어느 편이 먼저 정해진 말수를 모두 내는가를 겨루는 놀이이다.

 

'쟁두'라 하여 시작에 앞서 누가 먼저 놀 것인가를 정하는데, 윷가락을 던져 더 많이 난 쪽이 선을 잡게 된다. 윷가락이나 윷쪽이 엎어지거나 젖혀지는데 따라 '도'·'개'·'걸'·'윷'·'모'라 하여 명칭과 점수에 차이가 나는데, 대개 '도'는 돼지를, '개'는 개를, '걸'은 양을, '윷'은 소를, 그리고 '모'는 말을 가리킨다고 한다.

 

이들 가축의 이름이 이용되면서, 몸의 크기와 걸음의 속도가 윷놀이에 반영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러한 윷놀이는 윷을 잘 던지기만 해서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말판을 쓰는 것도 매우 중요한 승리의 관건이다. 남의 말에 잡히지 않으면서 가장 가까운 길로 가되, 자기말끼리 덧놓아 '두동산이(두동문이)'나 '석동산이(석동문이)' 많게는 '넉동산이'를 만들어 한번에 움직일 수 있게 되면 매우 빨리 날 수 있는 것이다.

 

2) 놀이 도구

 

놀이를 위해서는 윷, 깔개, 윷판과 말 등의 도구가 필요하다.

 

① 윷

 

윷은 가락윷(채윷)·밤윷(좀윷)·콩윷(또는 팥윷)으로 크게 나눌 수 있고, 그밖에 상수리나 도토리·살구씨·은행 등으로도 논다. 가락윷[析柶]은 박달나무·밤나무·통싸리 나무 또는 참나무 등을 대개 한 뼘 남짓한 길이(15∼20cm)의 곧고 둥근 모양으로 2개를 만든 후 반쪽을 내어 배가 약간 불룩한 네 가락이 되게 한다.

 

이는 다시 작은 윷·중윷(서울윷)·장작윷(장자윷)으로 나눠지는데, 서울을 비롯한 중부지방에 널리 분포되어 있다.

 

밤윷은 모양은 가락윷과 같으나 크기가 새끼 손가락 정도로, 나무를 길이 2∼3cm의 밤알만 하게 만들었다 하여 이름붙여진 것이다. 이 윷은 조그만 간장종지 등의 그릇에 담아 손바닥으로 덮어 쥐고 흔들어 바닥에 밤윷만 내던지는 방식으로 논다. 주로 경상도 등지의 남부지방에서 많이 놀며, 서울의 경우 대부분 도박용으로 쓰이며 일반인들의 놀이용으로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콩윷이나 팥윷은 콩이나 팥알의 한쪽에 작은 구멍을 파 앞뒤를 가려보게 만들거나 절반을 쪼개 만든 윷으로, 농민들이 작업하다 잠시 쉬는 사이에 놀았는데, 주로 북부 지방에서 많이 논다.

 

② 깔개

 

윷놀이를 실외에서 할 때는 멍석이나 짚으로 만든 깔개를 깔고, 실내의 경우 돗자리나 요를 깔개로 이용한다. 이 때 깔개는 너무 폭신해서 윷이 구르지 않거나, 너무 딱딱해서 밖으로 튀지 않는 것이 적합하다.

 

③ 윷판과 말

 

윷판은 '말밭' '말판' '윷밭'이라고도 한다. 8절지 또는 4절지 크기의 종이나 판자 또는 흙바닥에 선과 29개의 검은 점을 찍어 그리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점대신 다른 모양이나 내용을 적어 놓기도 한다. 이러한 윷판의 기원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는데,

 

첫째, 윷판이 중국의 고사인 "한포공서입정관중 … 楚覇王南出潰圍中"이라는 글귀에서 나왔다는 주장이다.

 

둘째, 《 조선상고사》 에서 신채호가 주장한 상대(上代) 오가(五加)의 출진도(出陣圖)에서 나왔다는 설이다.

 

셋째, 도·개·걸·윷·모 등이 부여의 관직명인 마가(馬加)·우가(牛加)·저가( 加)·구가(狗加) 등의 가(加)와 유사함을 들어, 당시 부여의 관제(官制)를 본뜬 것이 윷판이라는 이병도의 주장이다.

 

넷째, 16세기 선조 때 사람 김문표(1568∼1608)가 이규경의《오주연문장전산고》 의 '사희변증설'과 《중경지》 에 보이는 바와 같이, 천지·하늘의 추성(북극성)·28수 등을 본떠 만든 것이 윷판이고, 말의 이동은 해가 움직여 동지·춘분·추분·하지를 이루는 것과 같은 이치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위의 견해 가운데 아직 명확히 윷판의 유래를 밝혀내 정설화된 것은 없는 실정이다. 윷판에 올릴 말은 대개 한 편에서 네 개를 가지고 한다. 나무조각이나 돌, 기타 특별히 만든 것을 상대편과 구별되도록 이용하였는데, 윷이 나는데 따라 말을 옮겨 놓는 것을 '말을 쓴다'고 한다. 한편 지방에 따라서는 윷판이나 말 없이 노는 윷놀이도 있다.

 

평안·함경도 지방에 분포되어 있는 '산윷' 또는 '보습윷'이라고도 하는 윷놀이는 윷판과 말이 없이 노는데, 산가지나 콩·팥 등을 늘어놓았다 윷을 던져 나온 수대로 그것을 거둬 들여 많이 차지하는 편이 이기는 '산가지 따기' '콩따기' 또는 먼저 다섯 손가락을 다 꼽는 사람이 이기는 '손가락 꼽기'와 같은 방식으로 노는 것이다.

 

또 영남지방 농민들 사이에서 '벌윷'이라 하여 윷판 없이 그냥 윷가락을 가지고 노는 경우가 있고, 이와는 다르지만 경북 안동지방에는 '건궁윷말'이라 하여 말판을 사용하지 않고 말판을 머리 속에 그려 놓고 그 말판 명칭을 이용하여 윷말을 운영하는 방식 즉 말판없이 서로 말로 윷말을 쓰는 놀이가 있다.

 

2.제기치기

 

(1)유래

 

제기차기의 유래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고대 중국에서 무술을 연마하기 위하여 고안된 축국(蹴鞠) 놀이에서 연유한다고 하며, 그 시기를 중국의 전설적인 왕 황제(黃帝) 때로 보는 견해가 있다. 제기는 구멍이 뚫린 엽전을 얇은 미농지 따위로 싸고 종이의 두 끝을 한 구멍의 같은 방향으로 꿰어서 그 끝을 갈래갈래 찢어서 만든다. 헝겊에 흙이나 마른 말똥 등을 싸서 잡아매고 꿩의 꽁지깃을 꽂아 만들기도 한다. 오늘날은 비닐로 된 상품을 많이 쓴다.

 

(2)방법

 

제기 차는 방법에는 발 들고차기 ·양발차기 ·외발차기 ·뒷발차기 등이 있다. 발 들고차기는 한쪽 발을 땅에 대지 않고 공중에서만 계속 발 안쪽 측면만으로 차기 때문에 헐렁차기라고도 한다. 양발차기는 제기를 양쪽 발로 번갈아 차는 방법이다. 뒷발차기는 가장 어려운 방법으로 제기를 뒤로 차 올리는 것이다. 그러나 보통 발등의 바깥쪽을 이용하는 것으로 통용된다. 제기차기는 두 사람 이상 여럿이 개인별 내기도 할 수 있고, 편을 갈라 할 수도 있는데 제기를 정해진 방법으로 많이 차는 쪽이 이긴다. 제기차기 놀이방법 「① 개칙구―한 발을 땅바닥에 고정시키고 다른 발 안쪽 옆면으로 제기를 차 올린다. 이 때 제기차는 발은 공중에서만 올렸다 내렸다 하며 땅에 닿지 않게 한다. ② 맨제기―차는 방법은 ①과 같으나, 차는 발은 땅에 댔다 올리며 차올리는 것이 다르다. ③ 쌍발제기―두 발을 번갈아 가며 제기를 차 올린다. 차는 발 부분이 달라 발등을 씀. ④ 차는 법은 ②와 같으나 역시 차는 발 부분이 달라 발등을 씀. ⑤ 차는 법은 ③과 같으나 발등을 씀. ⑥ 한 발은 발 안쪽 옆면으로 차고 다른 발은 발 뒤쪽 옆면 또는 발등으로 번갈아 두 발을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찬다.」 차는 순서는 정해진 규칙은 없으나 대개 개칙구(한발 떠서 차기), 맨제기(두발 번갈아 차기), 쌍발제기(두 발 딛고차기)의 순이다.

 

3.자치기

 

자치기는 긴 막대기와 짧은 막대기 두 개로 치고 받으면서 노는 놀이이다. 지방에 따라 '오둑떼기', '메뚜기치기', '토끼방구'라고도 하며 전라도의 '땟공치기'와도 같은 종류의 놀이이다. 우선 땅바닥에 동그랗게 구멍을 파고 주변에 원을 그린다.

 

그 구멍 위에 짧은 막대기를 걸친 다음, 긴 막대기로 이를 튕겨서 다시 되받아 쳐 멀리 날리는 것이다. 놀이방법은 우선 두 명 혹은 여럿이서 두 편으로 나누어 각각 공격과 수비 진영을 맡는다. 공격하는 쪽이 막대기를 쳐서 날리는데, 상대편이 이것을 잡으면 공격과 수비가 바뀌거나(두 명일 경우) 친 사람이 실격된다. 못 잡을 경우에는 상대편이 짧은 막대기를 주워 구멍으로 던지면 공격자가 다시 이것을 되받아 치고, 짧은 막대기가 떨어진 자리에서 구멍까지의 길이를 긴 막대기로 재서 자수내기를 한다. 이때 긴 막대기 하나가 한 자가 된다.

 

'자치기'라는 이름은 이처럼 긴 막대기를 자(尺)로 하여 승부를 내기 때문에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일정한 자수를 정해서 승부를 내거나, 여럿이서 하는 경우는 한 편이 모두 실격할 때까지의 자수를 재어 어느 편이 더 많은가를 가지고 겨룰 수 있다.

 

자치기는 놀이 도구와 방법이 단순하기 때문에 집 앞이나 동네의 넓은 마당에서 수시로 놀았던 것인데, 겨울철에 많이 놀았으므로 추운 계절에 아이들의 체력단련에 도움이 되었으며, 자로 재어 승부를 가리기 때문에 숫자에 대한 인식을 키울 수 있는 놀이다.

 

4.널뛰기

 

(1)유래

 

널뛰기의 유래에 대한 기록은 없으나 그 성격으로 미루어보아 폐쇄적인 여성관이 자리잡기 전인 고려 이전부터 전승되어 온 것으로 추측된다.

 

조선시대의 여성 윤리는 가능한 한 여성들의 자연스러운 몸놀림을 억제하였는데, 이러한 시대에서의 널뛰기는 비인간적 제약 아래 있던 여성들에게 하나의 탈출구가 되었을 것이다.유득공이 쓴《경도잡기(京都雜記)》 에는 널뛰기가 초판희(超板戱)로 표현되어 있다. "정월 초하루 마을 부녀자들이 흰 널판을 짚단 위에 걸쳐놓고, 양쪽 끝에 나눠서서, 세게 굴러 뛰면 대여섯 자까지 올라간다.

 

그때 패물이 쟁쟁 울리거나 지쳐서 나가떨어지는 것을 즐기니 이것을 널뛰기라고 한다."라는 내용을 통해 보면 지금의 놀이 모습과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2) 놀이 방법

 

보통 집 마당에서 놀기도 하지만, 정초나 정월 대보름 등 온 동네 부녀자들이 모여 놀기 위해서는 수확이 끝난 논이나 밭에 널을 여러 개 설치하고 왁자지껄 떠들고 웃으면서 논다. 널뛰기는 아이들에서부터 중년까지 모든 연령층의 여성들이 서로 어울려가며 할 수 있는 놀이이지만, 널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는 몸집이 비슷한 사람들이 마주 뛰는 것이 좋다.

 

놀이감을 만들기 위해서 먼저 가마니나 짚단을 뭉쳐서 널밥을 만들고 그 위에 널판을 얹는다. 널판의 넓이와 길이는 다양하지만 널밥의 두께와 비례가 맞아야 한다. 널밥의 부피가 크면 널판도 넓고 길어야 한다.

 

그때에는 널판의 두께도 어느 정도 두꺼워야 판이 깨지지 않는다. 5,6척 정도 되는 길이의 널판 양끝에 한 사람씩 서서 균형을 맞추어 번갈아 뛰어오른다.

 

널뛰기는 보통 겨루기의 형식으로 진행된다. 널판 위에서 뛰어 올랐다가 발을 세게 구르면 상대방도 역시 충격을 감소시키기 위해 몸을 구부렸다가 높이 뛰어오르게 되고, 만약 균형을 잃어 널판 위에 내려서지 못하면 지게 된다. 널뛰기의 풍경과 놀이적 성격을 보여주는 민요가 있다.

 

 

허누자 척실루 네머리 흔-들 내다리 삽작

허누자 척실루 네댕기 팔-랑 내치마 낭-넉

허누자 척실루 네눈이 휘-휘 내발이 알-알

 

 

발이 얼얼해질 정도로 널판을 세게 굴러 뛰어오르면 머리가 흔들거리고 댕기는 팔랑거리며 치마 자락도 바람에 날리게 되는 것이다. 또 공중으로 높이 솟구치면 눈이 휘둥그래지고 머리가 어질어질 해지는 것이다.

 

온 힘을 다해 널판을 구르고 솟구치며 균형을 잡노라면 그 동안 억눌려 있던 우리 몸이 활력을 찾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널뛰기 놀이의 세시 풍속적 의미는 새해에 복을 빌고 건강할 것을 기원하는 축원적 내용을 담고 있다.

 

5.팽이치기

 

(1)유래

 

팽이는 축(軸)을 중심으로 둥근 동체가 회전운동을 하는 완구이다. 팽이치기의 시초는 도토리 따위를 돌려서 장난한 놀이 같은데, 이것을 연구하여 발달한 것으로 추측된다.

 

중국에서는 당(唐)나라 때 성행한 것으로 여겨지며, 이것이 고려를 거쳐 일본으로 전해져, 일본에서는 팽이를 고마[高麗]라고 한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볼 수 있으며, 종류도 나무 ·대나무 ·금속 ·유리 등이 있고 모양도 다양하다.

 

(2)방법

 

옛날 시골에서는 아이들이 나무로 팽이를 직접 깎아 만들어 추운 겨울 강가 ·연못 ·논바닥 등의 얼음 위에서 팽이치기를 하였다.

 

팽이를 치는 채는 40∼50cm의 싸리나무 같은 막대기 한 끝에 40∼50cm의 끈을 달아 팽이가 도는 방향으로 때리면 빠른 속도로 오래 돈다. 팽이치기에는 5∼10m의 목표 지점을 설정해 놓고 팽이채로 정확하게 팽이의 허리를 치면서 빨리 돌아오기를 겨루는 놀이, 돌고 있는 팽이를 맞부딪쳐 상대편 팽이를 쓰러뜨리는 팽이싸움놀이, 아래위로 총알을 박은 팽이를 팽이줄로 감아 머리 위로, 또는 팔을 옆으로 비켜서 마치 야구의 투수가 던지는 식으로 팽이를 던져 돌려 서로 맞부딪치게 하는 팽이찍기 등의 놀이 방법이 있다.

 

6.연날리기

 

(1)유래

 

연날리기는 대표적인 남자 어린이 놀이로 분류된다. 한자로 연을 鳶이라고 하는데, 이는 '소리개'를 뜻한다. 연은 전세계적으로 널리 분포되어 있고, 중국이나 그리스 등 고대문명을 자랑하는 지역에서는 기원 전부터 연에 대한 기록이 등장하여 그 긴 역사를 말해준다.

 

우리 문헌에서는《삼국사기》 에 최초로 연을 날린 기록이 나온다. 신라 진덕여왕 때, 하늘에서 큰 별 하나가 왕이 사는 월성에 떨어지자, 당시 '별이 떨어지는 곳에는 반드시 유혈이 있다'고 하여 왕을 폐하려던 이들은 환호하고, 왕을 지키는 군사들의 사기는 침체되었다. 이때 김유신이 허수아비를 연에 달아 여기에 불을 붙여 하늘에 날려 '어제 저녁에 떨어졌던 별이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고 하여 군사들의 사기를 북돋아 적을 무찔렀다고 한다.

 

이를 통해 연 날리기가 적어도 삼국시대 이전부터 등장했음을 알 수 있다. 이외에도 고려말 최영이 제주도 난을 평정할 때에도 유용하게 이용하였으며, 임진왜란 때는 통신수단으로도 사용되어 단지 놀이도구로서 뿐만 아니라 군사용으로도 폭넓게 활용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지닌 연은 '액막이'로도 쓰였다.

 

(2)방법

 

음력 정월 대보름에 아이들이 연 뒤에다가 '집안식구 모년 모월 생 몸의 액을 없애버린다(家口某生身厄消滅)'고 쓰고, 해질 무렵까지 띄우다가 연줄을 끊어 버림으로써 액을 막는다.

 

이때 연을 날리다가 연이 추락된 집은 그 해에 재앙이 있다는 속신이 옛날부터 전해 내려와, 연은 재앙을 점치는 것으로도 사용되었다. 연으로 하는 놀이로는 높이 띄우기, 재주 부리기, 연싸움이 있다. 높이 띄우기는 연줄이 끊어지지 않고 얼마나 높이 띄우는가를 겨루는 놀이이며, 재주 부리기는 부리는 사람의 의도대로 상하좌우, 급전, 급강하, 급상승 등의 공중곡예를 부리는 것이다. 또, 연싸움은 연줄을 서로 대어 끊는 놀이로, 연줄의 세기와 함께 연의 조종술이 승패를 좌우한다.

 

이때 연줄을 튼튼하게 하려고 돌가루나 구리가루 혹은 아교나 사기가루를 섞어 바르기도 한다. 조선 후기에는 연싸움을 잘 하여 이름을 떨치는 사람은 부유하고 권세 있는 집에 가끔 불려가 연 날리는 시범을 보였으며, 매년 정월 13일과 14일에는 수표교 근처 개울[청계천]을 따라 연싸움 구경꾼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 한다. 보름날이 지나면 다시는 연을 날리지 않았으며, 이후로 연을 날리면, '고리백정'이라 하여 욕을 하였다고 한다.

 

우리 나라의 연은 대부분이 직사각형 모양의 '방패연'과 마름모꼴의 '가오리연'으로 나뉜다. 만드는 방법은 대를 가늘게 쪼개 뼈대를 만들고, 종이를 모양새에 맞게 오린 다음 그곳에 대를 교차하여 붙인다. 그 위에 자신이 원하는 무늬를 그리거나 색칠하여 연을 꾸미고, 귀퉁이와 가운데 댓가지에 줄을 달아 가운데에서 균형을 맞추어 매듭을 짓는다.

 

연줄은 예전에는 주로 명주실이나 무명실을 사용했지만, 최근에는 나일론실을 많이 쓴다. 연을 조정하는 얼레는 실을 감는 기둥의 수에 따라서 납작 얼레(2모 얼레), 4모 얼레, 6모 얼레, 8모 얼레, 둥근 얼레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