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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옷 조선사람의 마음을 담고

칠봉인 2014. 2. 15. 20:05

조선의 옷 조선사람의 마음을 담고

천문학자였던 로웰은 먼 나라 조선을 방문한 뒤,

자신의 책 한 켠에 이렇게 기록했다.

조선 사람들에 대한 세밀한 관찰과 그들의 차림새에 관한

호기심을 푸는 과정에서 그는 조선옷이 영혼과 마음,

그리고 인성人性까지 담는 그릇으로 여겨진다는 점을 찾아낸 것이다.

그의 이런 평가는 대단히 정확하고 유효한 것이었다.


 

실제로 조선 사람들은 의관정제(衣冠整齊)를 모든 일의 근본으로 보았고

그것이 곧 한 사람의 인품을 드러내는 바탕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바른 마음가짐과 매무새를 당부하며 “갓이 비록 낡았더라도

그것을 바르게 정제하려 해야 하고 옷이 비록 거칠더라도

그것을 모두 갖추려 해야 한다”고 말했던 규장각奎章閣 검서관檢書官

이덕무李德懋의 말은 바로 이런 조선 사람들의 생각과 태도를

그대로 드러낸 것이나 다름없었다. 적어도 조선 사람들에게

‘옷’이란 그런 것이었다. 정갈한 마음을 담고 몸을 감싸 단정히 하는.

계절의 변화와 몸의 움직임을 뒷받침하는 조선의 옷

로웰은 조선 옷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멋진 계절 감각에 대한 찬사를 잊지 않았다.

그의 말처럼 사계절 내내 무명과 비단, 베 등 다양한 소재를 자유롭게 활용하는

조선 사람들의 지혜는 영국의 판화가 엘리자베스 키스Elizabeth Keith도

흥미롭게 보았던 부분이었다.


“조선 옷은 감탄스러울 만큼 기능과 목적에 적합하게 만들어졌다.

겨울에는 두터우면서도 넉넉하고 여름에는 넉넉하면서도 얇아

춥고 더운 기후에 따라 알맞은 형태로 되어 있다.

옷이 왜 어느 계절에는 특히 따스해야 하고

또 어떤 계절에는 바람이 잘 통해야 하는지가 분명히 설명 된다.”


 -퍼시벌 로웰, 《Choson, The land of the morning calm》 중에서-


선교사였던 알렌Horace N. Allen은 “처음 조선에 도착한 겨울에

한 조선인 친구를 알게 되었는데 그때 그 친구는 덩치가 크고 풍채가 좋아 보였다.

그 후 다시 그 친구를 만나게 된 건 삼복 때였다.

그 친구는 투명하게 비치는 옷을 입고 있었는데 불빛을 등 뒤로 하고 서자

그의 아래 몸체가 생생하게 비쳤다. 나는 그렇게 깡마른 친구가 겨울에

풍채 좋던 그라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날씨가 무더워져 그가 겨울에 입었던 두꺼운 솜옷을 벗었기 때문에

그처럼 달라졌다는 사실을 깨닫기 전까지는 말이다”라고 놀라움을 표현했다.

얇고 가벼운 여름옷과 따스하고 두터운 겨울옷으로 날씨를 극복하면서도

홑옷에는 섬세한 박음선을 드러내고 솜은 누벼 미감美感까지 뽐냈던

조선 사람들의 지혜에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었을까.

좌식생활에 적합한 바지와 치마의 넉넉함 또한 이방인들의 눈길을 끌었다.

조급함 없이 느리게 걷는 조선 사람들에게 그보다 더

어울리는 것은 없으리라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다.


그들은 그것을 동양의 사고방식에서 비롯된 특징이라 여겼다.

물론 그들이 칭찬했던 조선 옷의 기능성은 계절감에서도

나타나는 것이었지만 이리저리 사선으로 이어 붙인 바지의

‘사폭’과 치마 사이사이에 숨어 있는 ‘주름’에서 비롯되는 것이기도 했다.

주름으로 확보한 공간, 그리고 옷감이 잘 늘어나는 방향인 사선으로

재단한 겨드랑이와 옆구리의 무, 바지의 사폭은 평면적인 우리 옷이

안정적으로, 그리고 편안하게 입체적인 몸을 감쌀 수 있도록 만드는

최적의 장치였던 셈이다.


다양한 모양과 종류로 세계인을 사로잡은 조선의 모자

 

가끔 우리 옷 가운데서 굳이 고치지 않고 내놓아도

인기를 끌 만한 아이템이 무엇일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그럴 때마다 어김없이 떠오르는 것은 육영공원 교사이자

《Korea from its capital》의 저자인 길모어George William Gilmore의 글이다.

그는 “조선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모자의 나라이다.


아마존 밀림에서 머리 위에 걸쳐 있는 가지로부터 떨어지는

뱀을 막아주는 우산처럼 생긴 것을 제외하고는 조선이야말로

모자의 첨단을 걷는 나라이다”라고 했다.

조선을 다녀간 이방인들은 조선의 옷을 이야기하면서

모자에 대한 내용을 결코 빼놓지 않았다.

심지어 엘리자베스 키스는 갈모를 두고

“모자에 우산을 달겠다는 기발한 생각은 아마 한국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리라. 비 오는 날이면 우산 모자를 쓰고

두 손이 자유로우니 걱정 없이 앉아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할 수도 있고

다음에 무엇을 먹을까 생각도 할 수 있고

자연을 음미할 수도 있을 것이다”라고 크게 감탄했다.


처음에 그들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셀 수 없이 다양한 조선 모자의 종류였다.

그러나 그것은 곧 상황과 지위, 연령과 역할에 따라 적절히 활용하는

조선 사람들의 능력에 대한 찬탄으로 이어졌다.

《Deux voyages en Coree》를 함께 쓴 샤를 바라Charles Varat와

샤이에 롱Chaille Long이 “지방 관리의 금빛 판지로 된 관에서부터

평범한 농민의 보잘 것 없는 머리싸개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온갖 방법으로 만들어지고 다양한 모양의 모자들이 사용되는

나라는 이전에는 본 적이 없을 정도다”라고 쓴 데서도 드러나듯 말이다.

조선의 모자를 묘사하기 위해 기꺼이 소논문을 작성한 로웰마저도

“모자의 나라라고 할 수 있는 조선에 보내는 찬사가

이 정도로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썼다는 점을 떠올리면

그것이 얼마나 훌륭하고도 다채로운 퍼레이드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지 않은가!

다시 세계인에게 선보일 지금, 우리의 옷

우리는 가끔 우리 것을 바꿔서, 서양의 기준에 맞도록

고쳐서 세계에 내놓아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곤 한다.

우리 것을 그대로 가지고 가서는 그들의 취향도 감각도

사로잡지 못할 것이라는 선입견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 로웰의 글을 보라. 우리가 큰 가치를 두지 않았던 것,

아주 사소하게 여겼던 바로 그 부분에 ‘경탄’해 마지않는 모습을 말이다.


“조선인의 옷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기 전에 예술적인 면에서

경탄을 금치 못할 이들의 공통적인 의복 기술 하나를 소개하고 싶다.

바로 옷을 여미는 방법이다. 조선인은 옷을 여미는 데 단추나

단춧구멍을 사용하지 않는다. 저고리와 조화를 이루는 색깔로

옷고름을 달아 멋지게 묶어 여미기 때문이다.”
-퍼시벌 로웰, 《Choson, The land of the morning calm》 중에서-


로웰은 단추를 대신한 옷고름의 존재에 ‘예술적’이며

‘기술적’이라는 표현을 아끼지 않았다.

그의 말은 우리가 그동안 주목하지 않았던 조선 옷의 멋과

기능적 특성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수많은 이방인들이 찾아냈던 조선 옷,

즉 우리 옷이 가진 아름다움과 기능적 특성을 우리는 과연 기억이나 하고 있었던가.


유럽인들조차 부러워했던 멋지고 다양한 모자, 슬픔과 비애가 아니라

쾌활함의 상징으로 평가된 흰옷, 좌식생활과 느린 걸음에 어울리는

여유로운 품새, 고운 빛깔 옷감을 모아 꿰매 서양의 모자이크 못지않은

아름다움을 지닌 색동, 계절에 따라 바람 잘 통하는 삼베와 결 고운 모시,

따뜻한 무명과 윤나는 명주를 두루 사용할 줄 알았던 그 감각을 이제 새롭게

되살려 볼 때가 된 듯하다. 우리 옷의 전통을 잇는 방법은 물론 오늘날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더 많은 세계인들을 감탄하게 할 변화의 단서,

더 큰 세계로 우리 옷을 선보일 수 있는 상상의 원천이 바로 그 안에 있을 테니 말이다.


   글·사진·조희진 의복칼럼니스트


 사진·국립민속박물관,『영국화가엘리자베스키스의코리아1920~19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