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옜날의 교육기관

칠봉인 2015. 8. 15. 20:59

成均館 (성균관)



 成(성) = 人材之未就(인제지미취) 이루지 못한 인제를 이루게 하고

 均(균) = 風俗之不齊(풍속지불제) 가지런하지 못한 풍속을 균등하게

 館(관) = 집관


 


 成均館 (성균관)

 


高麗 충건왕이 國學을 成均館으로 개칭함이 시초로 恭愍王 때는


國子監으로 개칭하였다


다시 成均館으로 환원 太祖大王이 朝鮮을 개국하면서


高麗 제도를 계승 7년에 明倫洞에 成均館을 지어 明倫堂(儒生들에게


儒學을 가르치는 講堂)과 文廟(孔夫子와 聖賢의 神主를 모신 廟)와


齋(儒生들의 기숙사)를 두고 學田과 奴婢를 붙이고 文廟親享과


王世子에게 명하여 입학케 하였음.


전국에서 生員과 進士의 자격자로 200명을 선발하였는데 만약 자격자가


정원에 미달하면 私學의 儒生 중에서 선발하여 교육시키다 朝鮮 말기에 이르러


100명으로 축소되었다 다시 일제 때에는 經學院으로 개칭되고


그 부속 건물에 명륜전문학교를 개설, 이가 해방되면서 성균관대학교로 개명되었음.


 


 鄕校(향교)


 

高麗의 學制로서 都城에는 國子監, 東西學堂을 두고 지방에는 都城의 제도를 모방하여


규모를 작게 鄕校를 두었다 朝鮮太祖朝에 이르러 府, 牧, 郡, 縣에 1개소씩 설치하여


운영 점점 전국으로 확대되었음.


儒生의 정원은 府와 牧; 90인, 都護府; 70인, 郡; 50인, 縣;30인이었으며


鄕校마다 學田을 지급하였음.




 書院(서원)


 

私學기관의 하나로 書院이란 唐 玄宗 때 麗正殿書院 集賢殿書院 등을 두었었는데


이에서 유래 됨 직하며 원래는 名賢들에게 祭祀하고 젊을 청소년을 입학시켜 인재를


양성하던 사설기관이었으며 高麗에서는 寺院이란 제도가 있었으며 조선에 이르러


개국 초부터 이를 대신 書堂, 書齋, 精舍, 鄕賢祠, 先賢祠 등을 장려하였으며


중종37~38년 豊基 愼齋(文敏公 周世鵬.)선생이 白雲洞書院을 세움이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이며 이에 명종5년 紹修書院이란 額과 田結, 노비, 책 등을 下賜


이가 賜額書院의 시초가 되었음.


이후 나라의 보조를 받는 서원이 각처에 설치되기 시작 불과 29개소에 불과하였던


書院이 선조 조에 이르러 124개소, 숙종 조에 이르러는 1개도에 8~90개소에 이르게


되었음. 이후 서원의 폐해가 발생 인조 22년에 이르러는 나라에서 허가를 하게 되었고


그 후 계속 정비 정조 조에 이르러는 전국에 650여개소가 남게 되었음.


 고종1년 대원군(섭정)이 폐해를 덜기 위하여 서원이 누리던 모든 특권을 폐지


서원의 누설을 엄금 이 같은 강경책으로 전국에 우수한 서원 47개소만 남아 있게 되었음.




  書堂(서당)


 

 일종의 私設 교육기관으로 訓長, 接長, 生徒로 조식 千字文에서 시작하여


 교육시키는 글방으로 高麗 때부터 발생 조선에 이르러 대단히 발달하였으며


 儒生들은 대부분 書堂을 거쳐 鄕校로 진학 이어서 成均館으로 진학 학문을


 넓혔음.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