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명신 사령관
채명신 사령관이 마지막으로 택하신 길은
우리나라 모두의 심금을
울리는 표상으로 길이 남을 것이다.
그는 8평짜리 장군 묘를 버리고,
1평짜리 병사들과 함께 누워있다
.
이역만리 상하의 뜨거운 전쟁환경에서 그와 함께
세기에 빛나는
한국군 전쟁사를 창조했던 전우들 곁으로 간 것이다.
그리로 가면서 “나
여기 묻히노라” 따위의 생색을
내지 않았다.
평소 그가 보여준 언행들을 가장
잘 반영하기 위해
나는 그의
표지석에 그가 병사들에게 바치고 싶은
말씀을 정리했다,
여러 날 여러 개의 글을 쓰고 버렸다.
마지막으로 남은 글이 바로 “그대들 여기
있기에 조국이
있다”는 짧은
글이다.
평소에 자기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마지막까지 옛 전우들에 봉사하고 가신 분이 가장 함축성 있게
남기고 싶은 말씀이 바로 이 말씀이었을 것이다.
장례 행사에서 설교와 기도를 맡았던 특전사령부 군목인 모 중령은
이 한 마디의 말씀이 양서
수백권을 대표하는 말씀이라고 극찬을 했다..
없는 업적도 있는
것처럼 조작하고, 조그만 명분도 크게 부풀려 생색을
내는 것이 세상 사람들의 행태인데, 이 말씀에는 “내가 없다”는 것이다.
영문 번역은 영문 전문가이자 채명신 장군을 마지막까지 자발적으로
보좌한 정재성(stallon) 전우가
했다.
"Because you
soldiers rest here, our country
stands tall with pride.".
그리고 이 표지석을 마련하기 위해 정재성 전우가 많은 고생을 하였다.
기술자를 찾는 데에도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고, 많은 고생을 거쳐서야
비로소 만족할만한 작품을 완성해
오늘과 같은 명품을 설치하게 되었다.
.
한 개라도 더 챙기고자 하는 세상에서 채명신 사령관이 보여준
무욕의
길과 부하사랑의 길은
분명히 아름답고 감동적인 것이다.
하지만 국가를 마구 파 먹어야 하는
대상으로만 아는 개 돼지들이
우글거리는 이 사회에는 아무런 메아리가 없다.
멋과 아름다움과 신선함에 감동하지 않는 이리떼 사회,
소돔과
고모라성도 이처럼 더럽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와 함께 이역만리 생지옥 같은 전쟁터에서
온갖
고생을 다 하다가 꽃다운 나이에 전사한 장병들의 삶과
그들이 남겨준 유산에 대해 잠시나마 생각해 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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