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공자가 성인으로 추앙받기는 하지만, 공자는 완벽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였다. "여자와 소인은 어쩔수 없다"고 한 발언은 그의 성차별 의식을 드러내고, 그가 완벽하지 않다고 해서, 그의 가르침이 쓸모없는 것은 아니다. 춘추시대라는 어지러운 세상에서,어떻게해야 사람들을 구하고, 망가진 공동체를 복원 할 수 있는지, 그는 끊임없이 고민했다. 그 고민과 노력,,, 그것이야말로 공자가 우리에게 주는 진정한 가치가 아닐까 한다. 공자는 '공동체' 중심으로 한 관점을 가졌었다. "'공동체'를 어떻게 안정화 시킬 것인가?" 에 대한 문제... 그는 이 문제에 대한 해답으로, 내면적으로는 '인(仁)'을, 형식적으로는 '예(禮)'를 제시했다. 인(仁)' 이라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사람마다 해석이 다르겠지만,
아랫사람은 윗사람를 공경해야 한다. %% 공자는 '예(禮)'보다 '인(仁)'을 더 강조했는데, 후대의 독재자들은 '인(仁)'을 빼고 '예(禮)'만을 강조했다. 한나라 유방이 천하를 손에 넣었을 때, 내부적으로 골치 아픈 문제가 있었다. 장수들끼리 술먹고 싸우는 일이 예사로 벌어지고, 이에 유방은 유학자들을 부른다. 직급별 갖추어야 할 예(禮)를 보급했다. 유방은 개인적으로 '유학'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상황 파악이 빨랐던 그는
공자가 살았던 춘추시대가 그나마 최소한의 사회기능은 유지되고 있었던 반면, 절망만이 가득했던 시대,,, 공자가 '공동체'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았다면, 공자는 최소한의 '공동체 기능' 은 유지되는 시대에 살았기에, 약해진 '공동체'를 다시 되살리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 그에 비해 장자는 '공동체'가 완전히 부서진 시대에 살았다. 그래서 그는 '공동체'가 아닌,,,'개인'이 난세에 사는 법을 고민했다. 이런 관점의 차이는 그들의 삶에 커다란 차이를 만들었다. 공자가 자신의 이상을 펼치기 위해 천하를 떠돌아다닌 반면, 장자는 재상 자리에 나아가는 것을 제사 때 바쳐지는 재물에 비유했다.
잇따른 죽음으로,깊은 절망에 빠졌었다. 그에 비해 장자는 죽는 순간까지 평상시와 같은 평온을 유지했다. 공자가 기대 수익율을 보며 뛰는 투자자였다면, %% 성공 가능성이 없는 임무가 주어졌을 때 %% 어느 나라 재상이 장자를 찾아와 고민을 토로했다.
이웃나라 왕은 화친을 맺을 생각이 없다. 이웃나라 왕에게 죽임을 당할 것 같다. 그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장자에게 물었다. 장자는 말하길, 말을 더하거나 빼게 되면,화친이 성공하면, 그것은 오로지 왕이 잘해서 그런 것이 되고, 현대의 처세술 책에 나오는 '미친 상사'를 만났을 때의 대처법과 너무나 흡사하지 않은가?
조선시대 유학자 중에 '조광조' 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렇다보니 즉위 초기에는 왕임에도 불구하고 신하들에게 일방적으로 끌려다니게 된다. 신하들의 권력을 견제할 방법을 찾던 그는, '조광조' 라는 원칙주의 유학자를 등용하게 된다. '조광조' 는 초시에 장원급제, 알성시에 2등 급제한 수제였다. 중종이 '조광조' 에게 힘을 실어주자, '조광조'의 개혁 정책은 중종의 이해 관계와도 맞아떨어졌다. 그는 당연히 옳은 주장을 했고, 당연히 실천에 전력을 다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적어도 자신의 상사인 중종의 눈치는 보았어야 했다. 중종이 즉위한지 십수년이 흘러 왕권이 안정되었다. 하지만 '조광조'는 변함없이 중종에게 성리학적 성군의 자세를 요구했다. 물론 '조광조'의 개혁조치가 중종에게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다.
물론 '조광조'의 주장은 옳았다. 결국 '조광조'는 기존 기득권(훈구파)과 다시 손잡은 중종에 의해 사약을 마시게 된다. .조광조' 의 죽음은 그 혼자만의 죽음이 아니였다. 개혁을 위해 그가 조정에 불러들인 많은 인재들의 죽음이였고, 그가 시도했던 개혁의 죽음이였다. '공자'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그 둘은 대립적이지만 동시에 상호보완적이다. 모든 인재가 '장자'처럼 리스크 회피 전략만을 구사하다면, 그렇다고 '공자'처럼 리스크 회피 없이 목표만을 향해 달린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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