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산에서 봉선(封禪) 의식을 행하다
어느 해 초여름 진시황(秦始皇)이 태산에 올라가서
천지(天地)에 제사 지내는 의식(儀式)을 거행하였다.
그날 따라 부드러운 바람이 부는 화창한 봄날이었으며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진시황(秦始皇)은 금은보화로 장식한 화려한 마차 안에 타고
3 만명의 신하들을 거느리고 위풍 당당하게 태산(泰山)에 올라갔다.
태산 등봉(登封)의 의식(儀式)을 거행하였다.
하늘에 제사 지낼 단을 쌓고 육국(六國)을 통일한 위대한 업적을
상제님께 고하며 대진(大秦)을 천추만대(千秋万代) 까지 보우해 주실 것과
자기(自己)를 장생불로(長生不老)케 해주고 만수무강(万壽无疆)하게
해달라고 기원하였다.
그리고 나서 진시황은 승상(丞相) 이사(李斯)에게 석비(石碑)를 세우고
자기(自己)의 공덕(功德)을 돌비석 위에 새겨 만세 동안 유전하게 하라고 명을 내렸다.
봉선(封禪) 의식을 마치고 득의양양하여 하산(下山)하는 진시황(秦始皇)에게
횡생변고(横生變故)가 발생했다.
원래 구름 한 점 없던 구만리(九万里) 창공에 돌연히 검은 구름이
뒤덮히기 시작하고 광풍(狂風)이 불기 시작하였다.
뇌성벽력(雷聲霹轢)이 무섭게 치고 마치 세상 종말을 고하는 것과 같았다.
진시황(秦始皇)은 자신이 산신(山神)에게 죄를 지은 것이나 아닌가?
고 생각하였다. 문무백관(文武百官)들을 비롯하여
모든 신하들은 분분히 흩어져 도망을 가버렸다.
진시황은 하산을 멈추고 오송정(五松亭) 부근에 멈추었다.
한 바탕 뇌성벽력이 치더니 이윽고 장대비가 폭포수 처럼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억수같은 큰비가 진시황은 물론 신하들의 머리위로 똑바로 퍼부어 내리쳤다.
신하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산위에서 내려오는 물길은 폭포수 처럼 급류를 이루었다.
이때 홀연히 큰 소나무 한 그루를 발견하였다.
소나무는 키가 수 십 미터에 달하고 가지와 잎이 무성하였으며
수관(樹冠)은 천막 처럼 생겨 소나무 밑에 빗방울이 듯지 않았다.
하나님이 비를 피하라고 점지해 준 것과 같았다.
진시황(秦始皇)은 황급히 나무 밑으로 들어가서 비를 피했다.
진시황은 천지신명께 감사를 드리고 나서 피로에 쌓여 소나무 밑에서 잠을 청했다.
진시황은 꿈속에서 학발동안(鶴髮童顔)의 노도사(老道師)를 만났다.
노도사는 손에 쥐고있던 푸른 소나무 가지를 진시황에게 전해주며
"폐하! 소인은 폐하의 신체에 병이 생겼음을 알고 있습니다.
소인은 특별히 폐하에게 영약을 보내어 병을 치료해 드리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진시황(秦始皇)은 꿈에서 깨어나 정신이 상쾌해 지고 피로가
풀어짐을 스스로 느꼈다.
이때 폭풍우는 멈추고 밝은 태양이 온세상을 밝게 비취기 시작하였다.
진시황(秦始皇)은 눈앞에 서있는 큰 소나무를 바라보며
이 소나무가 자기를 보호해 주었다는 것을 알고 매우 기뻐하였다.
그리하여 진시황은 이 소나무에게 “오대부(五大夫)” 작위(爵位)를 하사하였다.
소나무의 한자 표기 '松’의 유래는 진시황이 소나무 아래서
비를 피한 뒤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 ‘짐이 이 나무에게 ‘公’을
주겠노라,’했다고 한다. 그래서 ‘木公’으로 불리다가 훗날
두 글자가 합쳐져 ‘松’字가 만들어졌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 중국의 위계는 공(公), 후(侯), 백(伯)의 순서로 대접받는데
소나무는 그 첫째인 공에 해당하는 것으로 가장 훌륭한 나무를
의미한다는 해석도 있다.
'기타 > 어쩌구 저쩌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理判事判 (이판사판) (0) | 2021.02.27 |
---|---|
♣ 조아(爪牙)란? ♣ (0) | 2021.02.27 |
우리 속담에 "냉수 먹고 속 차려라! 고?.. (0) | 2021.02.27 |
친구여!! (0) | 2021.02.27 |
人間史-(인간사)- (0) | 2021.02.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