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理判事判 (이판사판)

칠봉인 2021. 2. 27. 19:22

理判事判 (이판사판) 

 

 

[다스릴 리/가를 판/일 사/가를 판]

 

☞뾰족한 방법이 없어 막다른 상황에 이름 

[내용]

 

조선시대(朝鮮時代) 억불정책(抑佛政策)은 승려들로 하여금

 

두 가지 방향에서 활로를 모색케 했다. 

사찰을 존속기키는 것과 불법(佛法)의 맥을 잇는 것이었다.

 

그래서 일부 승려들은 廢寺(폐사)를 막기 위해 온갖 고난을

 

이겨내고 사원(寺院)의 유지 경영에 헌신했다. 

 

이와는 달리 속세를 피해 운둔하면서 참선(參禪)과 독경(讀經)

 

으로 불법(佛法) 을 이은 승려도 많았다.

 

전자(前者)를 사판승(事判僧 山林僧), 후자(後者)를

 

이판승(理判僧 工夫僧)이라고 했다. 

 

 

자연히 양자간에는 특징이 있게 되었다.

 

일부 사판승(事判僧)에는 교리(敎理) 에 어두운 범승(凡僧)이

 

있었고, 이판승(理判僧)은 공부에만 치중함으로써 불교의 외형적

 

발전에는 그다지 큰 기여를 하지 못했다. 

 

그러나 양자는 상호 보완의 관계에 있었다. 폐사를 막음으로써

 

사찰(寺刹)의 명맥을 이은 것은 사판승(事判僧)의 공로이며,

 

부처님의 慧光(혜광)을 전하고 佛法을 이은 것은 이판승(理判僧)

 

의 공로였다. 

 

 

그럼에도 해방 후 한 때 비구승 대처승의 다툼이 있었을 때

 

각기 이판승 (理判僧), 사판승(事判僧)으로 비유해 상호

 

비판했던 적이 있었다.

한자말 이판(理判)과 사판(事判)이 붙어서 된 말이다.

 

그리고 이 이판과 사판은 불교 용어로서 조선시대에 생성된

 

말이다. 조선은 건국 이념으로 억불숭유(抑佛崇儒)를 표방하였다.

 

이것은 고려 말에 불교의 폐해가 극에 달했기 때문이며,

 

한편으로는 조선의 건국에 신흥 유학자 사대부 세력이 대거 참여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쨌든 불교는 정권의 교체와 함께 하루

 

아침에 탄압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천민 계급으로 전락한

 

승려들 또한 활로를 모색해야 할 시점이 되었는데,

 

그 하나는 사찰(寺刹)을 존속시키는 것이었으며

 

다른 하나는 불법(佛法)의 맥(脈)을 잇는 것이었다.

 

그래서 일부는 폐사(廢寺)를 막기 위해 기름이나 종이, 신발을

 

만드는 제반 잡역(雜役)에 종사하면서 사원을 유지하였다.

한편으로 이와는 달리 은둔(隱遁)하여 참선 등을 통한 수행으로

 

불법을 잇는 승려들이 있었다. 이를 두고 앞의 것을 사판,

 

뒤의 것을 이판이라 하였다. 결국 조선시대를 거쳐 지금의 현대

 

불교가 융성한 것도 이 두 부류의 승려들이 자신들의 소임을

 

다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그런데 이 이판사판의 뜻이 전이되어 부정적 의미로 쓰이게 된

 

데에는 시대적 상황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의 억불정책은 불교에 있어서는 최악의 상태였다.

 

승려는 최하 계층의 신분이었으며, 성의 출입 자체가 금지되어

 

있었다. 자연히 당시에 승려가 된다는 것은 인생의 막다른 마지막

 

선택이었다. 그래서 이판이나 사판은 그 자체로 '끝장'을 의미하는

 

말이 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뿐만 아니라 일제와 8·15광복 후의 건국 초기에도 불교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면서 더욱 부정적 이미지로 몰아갔다.

 

이 두 부류를 정치적으로 이용, 서로 분열 반목케 하여 이판사판의

 

면목을 그대로 대중(大衆)에게 심어주었다.

 

일부 사판승(事判僧)에는 교리(敎理) 에 어두운 범승(凡僧)이

 

있었고, 이판승(理判僧)은 공부에만 치중함으로써 불교의 외형적

 

발전에는 그다지 큰 기여를 하지 못했다. 

 

그러나 양자는 상호 보완의 관계에 있었다.

 

폐사를 막음으로써 사찰(寺刹)의 명맥을 이은 것은 사판승(事判僧)

 

의 공로이며, 부처님의 慧光(혜광)을 전하고 佛法을 이은 것은

 

이판승(理判僧)의 공로였다. 

 

 

그럼에도 해방 후 한 때 비구승 대처승의 다툼으로 각기

 

이판승 (理判僧), 사판승(事判僧)으로 비유해 상호 비판을 하는

 

상황이 벌어졌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아무것도 모르는

 

대중은 뾰족한 대안이 없을 때 무의식으로 이판사판이라

 

말을 쓴다.

[예문]


▷ 이판사판으로 대들다

 
▷ 이젠 나도 이판사판이니 마음대로 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