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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종(顯宗) 부부의 금실, 현종의 업적

칠봉인 2021. 3. 9. 20:42

현종(顯宗) 부부의 금실, 현종의 업적  

 현종(顯宗) 부부의 금실


신하들이 누차 후궁을 들이자 간했으나 모두 물리치며

조선에서 유일하게 후궁을 두지 않은 현종(顯宗 1641-74)은

평생을 명성왕후(明聖王后)와만 다복하게 살았다.
왕후가 표독해서 그랬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이는

왕후가 후일의 세자 숙종(肅宗)의 머리를 빗겨주다가
아이가 자주 방정떤다고 머리를 때렸다는 이야기 때문에 생긴 것인데

나중 숙종의 변덕스런 성격을 생각하면 보통의 어머니라면

누구라도 그럴 수 있었을 것이다.
숙안공주(淑安公主1636-97) 숙명공주(淑明公主1640-99) 등

누이가 둘 있었는데 당시로는 엄청 귀한 귤을 7알씩 보내면서

많이 보내지 못해 미안하다는 편지까지 써주는 멋진 남동생이기도 했다.

 

- 현종(顯宗)의 업적


15년 재위 내내 남인과 서인의 극단적인 예론 정쟁(禮論政爭)에

시달리면서도 현종(顯宗1641/59/74)은 원만한 성격으로 안정된 정치를 펼친다.
군사적으로는 당시 청(淸)국이 대륙 전역을 장악한 것을 보고

부왕 때 추진되어 오던 북벌계획(北伐計劃)을 중단하고
1660년에는 두만강 일대에 출몰하는 여진족(女眞族)을 북쪽으로 몰아낸다.
경제를 안정시키기 위해 광해군(光海君) 때부터

경기도를 시작으로 실시해오던 대동법(大同法)을 호남지방 전역으로 확대한다.
동성 통혼(同姓通婚)을 금지시켰으며 친족끼리 같은 부서(部署)에 있거나
송사(訟事)나 시험관(試驗官)을 맡는 것을 금지하는 상피법(相避法)을 제정했다.
학질과 과로로 1674년 8월 15일 35세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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