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자존심과 낮은 자존심 그리고 진정한 자존심
낮은 수준의 자존심을 가진 사람들은 많은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하고 살기 때문이다. 남들보다 부족하다는 생각 때문에 괴로워하고 상대방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여 위험한 상황을 자초하면서도 제대로 항변 한 번 하지 못한다. 누구보다도 일을 열심히 하고 화사에 대한 애착도 강한데 승진도 느리고 보수도 덜 받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면 누구나 스트레스를 받게 도니다. 자신이 겪고 있는 경험들이 심리적 압박과 피해의식을 낳고 있다면 의심할 여지없이 자존심수준이 낮은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의 능력을 부정하고 현재의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없다. 현재의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자기인식은 외부세계에 대한 자신감을 떨어뜨려 세상은 무서운 것이라는 잠재의식을 양산한다.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강해지고, 새로운 것이 나타나면 피하려고 한다.
세상이 두려운 존재라면 그것을 대하는 우리의 삶은 경직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세상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게 되고 사람을 만나는 것이 두려워진다. 명확한 의사전달이 힘들어지고 다른 삶에게 과감하게 의견을 드러낼 수 없어 혼자 모든 일을 처리하려 한다. 세상은 더욱 버거워지고 남의 잘못들이 눈에 많이 띄면서 사람에 대한 거부감이 생긴다. 때로는 분노의 감정이 일기도 하지만 그것을 표출해보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알코올과 담배, 약물에 의존하는 경우도 생기게 된다.
이것은 다시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접근방식을 취하게 되어 자신이 더욱 보잘 것 없는 것으로 인식된다. 이렇게 사이클이 반복될수록 그는 더욱 작아지고 부정적으로 되어 외부세계와 단절한다.
그들에게는 ‘저건 나와 어울리지 않아.’, ‘사람들 앞에서는 이야기하기 싫어.’와 같이 자기 자신을 제약하는 명제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한 명제는 몸이 그 틀을 벗어나서 행동하지 않도록 감시하고 통제한다.
‘나 같은 사람에게는 여기가 제일 안전한 곳이야. 여기를 벗어나면 엄청나게 곤란해질 게 뻔해.’ 가끔 자신을 생각해보면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다른 사람의 성공에 일조하는 것에 불과하다 싶어 감정적인 불만이 증폭되기도 한다. 현실과 자신에 대한 괴리로 그렇게 쌓여가는 불만족 속에서도, 그들은 어쩔 수 없다며 스스로의 한계를 만든다.
자존심도 그 높낮이가 중요하다.
낮은 수준의 자존심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감이 부족하고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지나치게 강하다. 어린 시절부터 사회적 질서와 인간관계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그들은 쉽게 다른 사람의 의견을 수용하고, 이견이 있어도 결코 강하게 주장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의 자존심을 세울 근거를 외부에서 찾으려고 한다. 훌륭한 배우자나 공부 잘하는 아이들에게 기대어 자신의 존재근거를 확인하려 하고, 그것이 기대에 못 미치면 쉽게 상처 받는다. 다른 사람의 행복을 부러워하고 못난 자신에 대한 자괴감이 커지면서 혼자서는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세상이 두려워진다.
이들이 스스로 치유되기 위해서는 ‘무시할 수 있는 용기’가 가장 필요하다.
남이 무슨 의도로 어떤 말을 하든 세상이 어떻든 상관없이 내가 할 수 있는 일만 잘하면 된다는 독립의식, 자기를 향한 이기심이 필요하다.
반면에 높은 수준의 자존심을 가진 사람들은 지나치게 자신감이 강하다. 강한 책임의식이 있어서 모든 일을 자기중심에 두고자 한다. 외부의 간섭이나 주장을 수용하기가 어렵고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부족하다. 그는 자부심의 근거를 외부에서 찾기 보다는 자기 스스로에게서 찾는 사람이다. 자기는 충분한 능력과 자격이 있다고 생가하고 그것을 위협하는 어떤 것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지나친 자존심이 수용장벽을 높이고 외부로부터 스스로 고립되게 만든다. 가끔은 타인의 존재근거를 자신이 부여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나 아니면 안 된다’의식에 사로잡혀 지낸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자신의 무지나 한계가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하며, 그런 이유로 다른 사람의 의견을 재빨리 묵살하기도 한다. 독선적인 판단에 의해 변화를 거부하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자존심을 버리는 일이 아니라 균형 잡힌 ‘진정한 자존심’에 대해 정확히 알고 그것을 되찾는 일이다. 진정한 자존심을 찾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것이 없이는 우리의 변화가 큰 힘을 얻기는 어렵다. 목표지점이 어딘지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지금 내가 어디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래야 방향을 잡을 수 있다.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인식방법이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자신에게 지나치게 관대한 반면 어떤 사람들은 매우 엄격해서 스스로를 괴롭히기도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객관적인 모습을 쉽게 발견하고 인정하는 반면 어떤 사람들은 혼자만 아는 자기 영역만을 끝까지 바라보다 다른 사람들이 바라보는 자기를 인정하지 못하고 평생을 살기도 한다.
진정한 자존심은 자기 스스로를 건전하게 인식하는 것을 포함한다.
‘나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건강한 한 인간이다. 내가 어떻게 노력하느냐에 따라 충분한 가치를 가질 수 있는 존재이다.’ 이것은 긍정적인 자기 믿음을 주고 세상을 좀 더 넓은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하며,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마음의 힘을 준다.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세상이라는 것은 나 혼자서 만들어낸 게 아니다. 내가 경험하고 배우고 느낀 것들과 남들에게서 영향을 받은 것들이 시간이라는 차원을 통과하면서 관념덩어리로 형성된 것이다. 토마스 쿤의 용어대로 패러다임(paradigm)이다. 사물을 대하는 관점이다. 이러한 관점으로 솔직히 말하면 우리는 무능하면서도 유능하다. 세상이 강요하고 내가 굴복하면서 만들어진 패러다임을 가졌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무능하고, 그 패러다임을 벗어 던지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유능하다. 유능해질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의 무능함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다른 패러다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만약 우리가 그만큼의 충분한 용기를 가졌다면 변화라는 말에 겁먹지도 회피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도 않게 될 것이다. 변화란 바로 있는 그대로 자기를 받아들일 수 있을 때에만 의미 있는 단어이다.
‘조-해리의 창‘-(JoHarry's Window or JoHari Window)
조해리의 마음의 창 이론은 보이지 않는 인간의 자아를 4가지 영역으로 구체화시키고 개개인의 자아 상태를 스스로 점검함으로 인해, 공동체 안에서의 개방성과 수용성 필요성을 인식시켜준다. 우선 그 이론에 대해 개략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마음의 창' 이론은 자아를 4가지 영역으로 분류해 놓았다.
Ⅰ. 개방영역 - 자기나 타인에게 모두 자연스럽게 알려져 있는 영역. (We Knoww/They Know)
Ⅱ. 장님영역 - 자기는 모르지만 다른 사람은 나를 아는 영역. (We don't Knoww/They Know)
Ⅲ. 은폐영역 - 자기는 알고 있으나 다른 사람에게는 비밀로 하고 있는 영역. (We Know/They don't Know)
Ⅳ. 신비영역 - 자기도 모르고 타인도 모르는 마음으로서 무의식과 미지의 영역. (We don't Know/They don't Know)
(표 왼쪽으로 돌아가며 보시면 됩니다.)
Ⅰ의 영역은 자신이 알고 있는 자기의 모습과 다른 사람이 알고 있는 자기의 모습이 일치하는 영역이다. 이 영역에서는 나와 다른 사람의 의사소통이 자유롭고 서로 인정하므로 인간관계가 좋아지게 된다.
Ⅱ의 영역은 남은 알고 있으나 자기는 모르는 영역에 해당된다. 높은 자존심을 가진 사람들의 경우 Ⅱ 영역의 범위가 상대적으로 높다. 주로 외향적이고 자기 기준이 뚜렷한 경우가 많다. 반면에 자신의 약점을 숨기려 하고 배려심이 부족해서 다른 사람의 감정을 잘 읽어내지 못하고 자기 목소리를 높이는 경향이 있다. 이 영역이 높다면 위험 신호로 봐야한다. 스스로는 직장에서 내가 꼭 필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구조조정 1순위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자신이 모르는 영역이 많아지면 어떻게 변화해야 할지 발견하기도 어렵게 될 것이다.
Ⅲ. 은폐영역은 자기 자신은 알지만 남은 모르는 영역이다.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성격을 잘 드러내지 않는 내성적인 성격으로 지나치게 배려심이 강한 편으로 자신을 외부에 알릴 기회를 얻지 못하게 되는 경우, 다른 사람이 자신에 대해 알 수 있는 영역은 줄어들게 된다. 낮은 수준의 자존심을 가진 삶일 가능성이 높은 데 그는 스스로에 대한 성찰이 많아서 자신의 장. 단점을 잘 알고 있다. 문제는 자신의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크게 느껴지고 그것이 부끄러운 것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나는 무능해”라고 스스로 판단해 버린다. 그래서는 변화의 용기가 생기지 않는다. 자신을 잘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기의 부정적인 모습에 집착해서 변화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되기도 한다.
Ⅳ. 신비영역은 자기도 모르고 남도 모르는, 우리의 무의식 속에 존재하는 영역이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무의식의 영역은 넓다. 주로 사회성이 낮고 업무가 독립적이고 바쁘게 돌아가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영역이 넓다.
삶에 대한 정의가 사람을 바꾼다.
이제 주위를 자세히 살펴보자. 유달리 삶의 여유로움을 즐기고 긍정적으로 생활하고 있는 사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삶에서 만나는 온갖 어려운 일들도 그들은 쉽게 웃으며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아 보인다.
도대체 무엇이 그들의 삶에 자신감과 여유를 주는지 찾아보도록 하자. 높은 학식과 능력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고, 큰 키와 높은 지위를 가졌을 수도 있다. 또 어떤 경우에는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할 수도 있다.
내가 발견한 그들의 공통점은 세상을 만만하게 본다는 것이다. 그들은 아주 어렵고 힘든 일도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지!’ 하는 태도를 보이며 넘어가버리고, 세상을 아주 맘 편하게 산다. 이런 태도가 실제로 삶을 유연하고 자유롭게 만든다. 혹시 당신이 가지 못한 것들(예를 들어 넉넉한 재산, 좋은 학벌, 특별한 능력 같은 것)을 그들이 가졌기 때문에 삶을 대하는 태도가 남다른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지금까지 당신이 한 관찰은 헛수고다. 그들이 특별해 보이는 건 그들이 가진 태도로 인한 것이다. 게다가 자세히 보면 그들도 보통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오직 다른 점은 그들의 태도뿐이다.
실제로 우리의 삶은 자기가 정의한 모습 그대로 닮아가게 된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100% 만족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눈, 코, 입부터 머리카락 하나하나가 다 불만덩어리다. 거울에 비친 ‘나’라는 개체가 너무 보잘 것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것도 자신이 만들어 놓은 허상에 불과하다. 자신이 볼품없어 보이는 이유는 스스로 그렇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거울을 보며 ‘이 정도면 괜찮네!’라고 생각해버리면, 그걸로 끝이다. 그것으로 그냥 괜찮은 사람이 되어버린다. 자신의 독특함을 인정하는 것에서 용기가 생기는 것이다.
삶에 대한 새로운 정의와 태도를 가지는 것만으로도 변화는 이미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 모든 인간은 생각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엄청난 결과가 돌아온다는 사실을 알고 살아가는 사람은 드물다. 그 생각이 바로 우리 삶의 방향을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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