指鹿爲馬(지록위마) | |||
‘지록위마(指鹿爲馬)’, 풀이하면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한다”는 사자성어로, 사실이 아닌 말로 윗사람을 속여 권세를 휘두른다는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 이는 진나라 승상 조고가 황제 호혜에게 사슴을 진상하면서 말이라고 했다는 일에서 유래된 말이다.
조고는 중국 전국시대 때 조왕(趙王)의 먼 친척으로 조나라가 진나라에게 멸망한 뒤 환관이 된 인물이다. 그는 법에 밝아 진시황에게 발탁되어 환관으로 있으면서 야심을 가지고 비밀리에 진시황의 둘째아들 호혜를 가르쳤다.
환관인 조고가 어떻게 승상에 오를 수 있었을까? 기원전 210년 진시황은 둘째아들 호해, 환관 조고, 승상 이사와 함께 전국 순행에 나섰다. 이때 진시황은 병이 났고, 상태가 위독해지자 스스로 죽음이 임박했음을 알고 승상 이사를 불러 맏아들 부소에게 “함양으로 돌아와 유해를 맞이하고 장례를 치르라”는 조서를 내렸다.
당시 부소는 진시황의 정책에 반대하다가 노여움을 사서 장군 몽염과 함께 변경인 상군 지방의 군대를 감독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진시황은 부소에게 조서를 보내기 전에 세상을 떠났고, 그 조서는 옥새와 함께 조고의 손에 들어왔다. 조고는 이때부터 숨겨왔던 야심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조고는 먼저 승상 이사를 찾아갔다. “승상, 만약에 부소가 황제가 되면 틀림없이 몽염을 중용할 것이고, 그가 승상 자리에 오르면 그때는 어떻게 하시렵니까?” 조고는 승상 이사를 회유한 뒤, 승상 이사가 진시황의 유언을 받았다고 꾸며 자신이 가르친 호혜를 태자로 세우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부소 왕자가 살아있는 한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는 영특할 뿐 아니라 언제든 자신들의 권세에 반기를 들 위험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조고는 곧 진시황의 거짓 조서를 작성하여 부소에게 보냈다. “부소는 장군 몽염과 함께 군사 수십만을 거느리고도 한 치의 땅도 얻지 못한 채 많은 병사만 잃었을 뿐 아니라, 불손하게 짐을 비방하고 태자에 오르지 못함을 원망하고 있다. 또한 장군 몽염 역시 부소와 함께 지내면서도 그의 잘못을 바로잡지 못했으니 참으로 불충한 신하라 할 수 있다. 이에 군의 지휘는 부장 왕리에게 맡기고 자결을 명하노라.” 부소는 이 조서가 진실인지 확인한 후에 따라도 늦지 않다는 몽염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눈물을 흘리며 자결했고, 자결을 거부한 몽염은 옥에갇혔다. 이렇게 부소와 몽염을 제거한 조고와 이사는 함양으로 돌아와 진시황의 죽음을 알리고 호해를 즉위시키니 그가 바로 진나라 2대 황제다. 그러나 호해는 왕의 재목의 아니었다. 그는 즉위하자마자 국정은 조고에게 맡기고 주색과 향락에 빠져 지냈다.
권력을 손에 쥔 조고는 먼저 장군 몽염을 비롯하여 열두 왕자를 저잣거리에서 공개 처형하고, 함께 음모를 꾸몄던 승상 이사마저 제거한 뒤 자신이 승상에 올랐다. 환관이 승상에 올라 국사를 총괄하며 전횡을 부리자 오광?진승의 난을 시작으로 전국에서 영웅들이 군사를 일으키면서 진나라는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그러자 조고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전국적으로 일어난 반란 소식이 호해에게 알려지고, 호해가 심기일전하여 친정을 한다면 자신은 권력을 잃게 되기 때문이었다. 또한 나라가 시끄러운 틈을 타 자신에게 도전하는 세력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생겼다. 그리하여 조고는 신하들의 마음을 떠볼 묘책으로 사슴 한 마리를 궁궐로 끌고 와 호해 앞에 머리를 조아렸다.
폐하, 조신이 좋은 말 한필을 구했기에 폐하께 바치려고 가져왔습니다.”
호해는 사슴을 말이라고 하는 조고를 향해 씁쓸히 웃으며 말했다. “허허허, 경은 짐에게 재담을 하려는 것인가?” 호해의 말에 조고는 정색을 하고 말했다.
“소신이 어찌 폐하께 재담을 하겠습니까? 이 말은 천하에 보기 드문 명마이오니 부디 거두어 주십시오.” 호해는 좌우를 돌아보며 신하들에게 말했다. “경들도 이것이 사슴이 아니고 말로 보이는가?”
신하들은 머리를 조아리며 “말이 맞사옵니다, 폐하!” 하고 대답했고, 당황한 호해는 신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돌아가며 물었지만 조고의 위세를 두려워한 신하들의 대답은 한결같이 사슴을 말이라고 대답했다. 조고가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던 그 때였다. “폐하, 이것은 말이 아니라 사슴이옵니다.” “그렇사옵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슴이옵니다.”
겁 없는 두 신하가 사슴이라고 바른 말을 아뢴 것이었다. 조고는 두 눈에 쌍심지를 켜고 그들을 노려보았고, 다음날 조정에서 그들의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조고는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황제에게 바른 말을 고한 신하들을 죽였고, ‘지록위마’라는 말은 이렇게 생겨났다.
그러나 거짓은 영원히 감출 수 없는 법, 전국적으로 일어난 반란 소식은 곧 호해에게 일려졌고, 호해는 나라를 망쳤다고 조고를 책망했다. 그러자 조고는 자신을 책망하는 호해마저 죽이고, 진시황의 손자 자영을 황제를 즉위시켰다. 그러나 온갖 악행을 일삼으며 나라와 황제를 망친 조고 또한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자영은 호해와는 달리 영민했다. 황제가 된 자영은 측근과 함께 조고를 죽일 계획을 세웠다. 그는 병을 핑계로 자리에 누웠고, 병문안을 위해 찾은 조고를 제거했다. 부조리한 방법으로 권력을 얻어 나라를 혼란에 빠뜨린 조고는 그렇게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이어 자영은 조고의 측근뿐 아니라 가문의 삼족을 멸하고 정사에 힘썼지만 이미 진나라는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없을 만큼 기울어 있었다. 결국 자영은 즉위한 지 불과 석달만에 함양에 진격한 유방에게 항복하였고, 중국 최초의 통일국가 진나라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한 지 15년, 그가 죽은 지 불과 3년 후의 일이었다.
황제위에 굴림하였던 환관 조고 친인척중 한명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조나라가 진나라에 의해 기원전 228년 멸망함으로써,그의 어머니는 사형당하고 그와 형제들은 모두 환관이 되는 비운을 겪기도 하였다. 그런데 시황제는 그가 법가사상에 익숙하고 근면성실하다는 말을 듣고 그를 등용하니, 국가패망과 멸문지화의 비극이 오히려 조고에게는 기회가 되었다. 어려서 부터 가르치며 돌보게 되었다. 따라서 호해에게 그의 말은 절대적인 진리나 다름없었다. 특히 그는 시황제의 강력한 신임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옥새를 관리하는 일도 도맡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곧 진나라 멸망을 초래하게 되는 대 사건이 발단이 되었으니, 중국을 통일한 시황제는 진나라 멸망의 씨앗을 뿌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함구한 후 남은 여정을 강행하였다. 또한 그의 손에 옥새가 있는 점을 이용하여 시황제를 대리하여 각종 결재까지 하였다. 그리고 시황제의 시신을 도읍 함양에 안치한 후에는 호해왕자와 승상 이사를 적극설득하여 장남 부소(扶蘇)와 몽염장군을 제거하는 계획에 합류시켰다. 내렸으며,부소왕자가 자결하자 호해의 제2황제 즉위식을 단행하였다. 10명의 공주를 모두 공개처형해 버렸다. 합니다. 그래서 죄를 지은 자는 연좌제를 적용하고 모든 일가 친척을 줙여 없애고 궁중에는 대신들을 없애며 폐하의 가족까지 멀리 하셔야 됩니다." 말을 믿었으며 심지어 모든 법집행을 조고에게 맡겼다. 따라서 조고는 행정권과 사법권을 모두 장악하였으며, 다만 법률안 재정에 있어서는 황제의 도장만 받으면 그뿐이었다. 점차 악법으로 바뀌어 갔으며, 여기에 아방궁 공사재개와 황제 전용 도로 건설등 각종 무거운 세금이 내리지게 되었다. 세금이 정도도 너무나 무거워 졌지만 지금으로 말하자면 쓰레기 불법투기 정도의 범죄에도 귀나 코를 배는 무시무시한 법률을 적용하였다. 2세황제는 그러한 사실을 전혀 몰랐다. 2세황제 재위 때 일어난 반란 중 가장 대규모의 반란은 진승과 오광이 중심이 된 반란이었는데, 그들 역시 만리장성 축조 부역에 동원되었다가, 폭우등으로 인해 도착기일이 연기되는 것이 불가피해져 부역에 동원된 사람들과 함께 반란을 일으키게 된 것이다. 상관없이 모조리 생매장 당하였기 때문이다. 일어나는 반란은 분명 국가패망을 재촉하는 것이었다. 진시황제와 함께 중국을 통일한 주역인 이사는 이대로 진나라가 패망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어 몇차례나 2세황제에게 조언을 하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조고의 견제로 그 기회를 잡기도 힘들었을 뿐더러, 설령 기회를 잡아도 2세 황제는 그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문책을 피하기 위해 황제에게 아첨하는 글을 올려야만 했다. 백성들이 죄를 짓게 되는 근본을 엄히 다스리지 못하는 군주가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근검을 실천하고 어질고 의로운 자가 조정에 있으면 군주는 마음껏 쾌락을 추구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군주는 근검한자와 직언을 하는 자 의로운자를 멀리하고 홀로 법을 시행해야만 그 지위도 존귀해 지는 것입니다." 그 이후 더욱더 혹독하게 법을 적용하고 세금을 징수하였다. 그리하여 길거리에는 굶어 죽거나 벌을 받아 죽은 시신이 널려 있었으며, 걸어다니는 사람중에는 귀를 잘리거나 손목을 잘린 사람이 반이나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참담한 광경을 목격하면서도 2세황제는 "참으로 감독이 잘되고 있구나."라며 오히려 집행관을 칭찬할 정도였다. 그러니 과연 어려서 부터 주입식 교육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이사가 황제에게 아첨하는 글을 올렸다는 소식을 듣자 절묘한 계략을 생각해 냈다.그는 우선 이사의 마음속에는 아직도 진나라에 대한 충성심이 남아있다는 점을 간파하였다. 따라서 이사에게 진나라가 처한 현실에 대해 황제에게 직언을 해야 한다고 부축였다. 그리고는 황제의 곁에서 연일 미인들을 부르고 술잔치를 열었다. 평소에 쾌락과 유흥을 즐기던 2세황제는, 유흥이 깨뜨리는 일을 매우 실어했다. 그런데 조고는 의도적으로 흥이 절정에 이를 무렵 이사에게 연락하여 직언을 아뢰도록 하였다. 즉시 반란군과 내통혐위를 조사하도록 명하였다. 그는 황제와 접견한 자리에서 조고야 말로 반역의 행동을 일삼고 있으며, 본래 비천한 신분으로 도리를 분별하지 못하고 탐욕스러우며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에 혈안이 되어있다며 반격하였다. 그리고 이사의 내통혐위에 대해 조고가 전임하여 조사하도록 하였다. 진시황제의 수족이었던 두 사람의 승부는 사실상 끝난 것이다. 하루아침에 국가모반 공모죄로 사형수가 되고 만 것이다. 이렇게 죽음을 피할 수 없게 되자, 이사는 마침내 가슴속에 담아 두었던 울분을 토해 내었다. 따라서 내가 죽임을 당하는 것은 어쩔 수 없으나 세상이 크게 어지럽게 될 것이니 그것이 걱정이다. 대규모 궁궐을 지으면서 백성들을 핍박하고 있다. 이런 독설로 인해 이사는 물론 그 가족들도 모두 모반죄로 체포되었다. 그리고 옥 중에 갇힌 이사는 혹독한 고문에 못이겨 결국 반역을 도모하였다는 거짓 자백을 하고 말았다. 오형(메를 치고 코, 귀, 혀, 다리를 자르는 5가지 형벌)을 시행한 후 허리를 잘라 죽이는 요참형에 처해졌다. 이제 조고의 전횡을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환관에 불과하였던 조고는 이제 승상까지 겸입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조고의 전횡은 어느 정도였는가? 이와 관련해서 전해지는 유명한 고사가 있다. 몇번을 고쳐보고 자세히 보았지만 분명 사슴이었다. 황제는 결국 자기 자신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이후 황제는 별궁안에 틀어박혀 한발도 세상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조고는 경비병들에게 흰옷을 입혀 별궁안으로 행진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황제에게 반란군이 궁성까지 점령하였다고 거짓으로 아뢰었다. 그러나 이성을 잃은 황제는 아무것도 판단하지 못하고 조고의 말에 무조건 의존하였다. 환관에서 승상으로, 승상에서 황제로....이제 모든 권력이 정점에 오른 것이다. 하지만 단지 옥새만 있다고 해서 황제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자영을 3세황제로 볼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직 의견이 갈리고 있다. 아무튼 즉위식은 거행되었기 때문에 제 3황제로 보기로 한다. 설령 살아있다고 해도 2세황제처럼 허수아비나 다름없이 살다가 갈 것이고, 아니면 반란군 손에 살해당할 것이다. 한편으로는 환관 환담일당과 내응하여 조고를 처단할 계획을 세웠다. 그자리에서 살해하는 데 성공하였다. 자영이 황제에 즉위한지 겨우 1년만이었다. 기원전 221년에 중국을 통일한 진나라는 3대 15년 만인 기원전 206년 제삼황제 자영을 끝으로 막을 내리게 되었다 부작용이 얼마나 큰가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까 뎀! 간신(奸臣) 조고
호해를 구워삶고 있다. 내가 다 알아서 할테니 나오지 말라는 거..ㅎ) |
'기타 > 어쩌구 저쩌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농장의 가을 (0) | 2012.10.07 |
---|---|
나오는대로 떠들어보기 (0) | 2012.10.07 |
어르신들의 유머 (0) | 2012.10.06 |
오바마 가족 이야그 (0) | 2012.10.05 |
닭값 물어 다오 (0) | 2012.10.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