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어쩌구 저쩌구

역사에서 느끼고 배운다

칠봉인 2012. 10. 7. 20:57

사슴을 말이라고 우긴 간신,

진나라 조고(趙高) 낙서장

   指鹿爲馬(지록위마)

‘지록위마(指鹿爲馬)’, 풀이하면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한다”는

사자성어로, 사실이 아닌 말로 윗사람을 속여 권세를 휘두른다는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 이는 진나라 승상 조고가 황제 호혜에게 사슴을 진상하면서 말이라고 했다는 일에서 유래된 말이다.

조고는 중국 전국시대 때 조왕(趙王)의 먼 친척으로 조나라가 진나라에게 멸망한 뒤 환관이 된 인물이다.

그는 법에 밝아 진시황에게 발탁되어 환관으로 있으면서 야심을 가지고 비밀리에 진시황의 둘째아들 호혜를 가르쳤다.

환관인 조고가 어떻게 승상에 오를 수 있었을까?

기원전 210년 진시황은 둘째아들 호해, 환관 조고, 승상 이사와 함께

전국 순행에 나섰다. 이때 진시황은 병이 났고, 상태가 위독해지자

스스로 죽음이 임박했음을 알고 승상 이사를 불러 맏아들 부소에게

“함양으로 돌아와 유해를 맞이하고 장례를 치르라”는 조서를 내렸다.

 

당시 부소는 진시황의 정책에 반대하다가 노여움을 사서

장군 몽염과 함께 변경인 상군 지방의 군대를 감독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진시황은 부소에게 조서를 보내기 전에 세상을 떠났고,

그 조서는 옥새와 함께 조고의 손에 들어왔다.

조고는 이때부터 숨겨왔던 야심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조고는 먼저 승상 이사를 찾아갔다.

“승상, 만약에 부소가 황제가 되면 틀림없이 몽염을 중용할 것이고,

그가 승상 자리에 오르면 그때는 어떻게 하시렵니까?”

조고는 승상 이사를 회유한 뒤,

승상 이사가 진시황의 유언을 받았다고 꾸며 자신이 가르친 호혜를

태자로 세우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부소 왕자가 살아있는 한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는 영특할 뿐 아니라 언제든 자신들의 권세에 반기를 들 위험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조고는 곧 진시황의 거짓 조서를 작성하여 부소에게 보냈다.

“부소는 장군 몽염과 함께 군사 수십만을 거느리고도 한 치의 땅도 얻지 못한 채 많은 병사만 잃었을 뿐 아니라, 불손하게 짐을 비방하고 태자에 오르지 못함을 원망하고 있다.

또한 장군 몽염 역시 부소와 함께 지내면서도 그의 잘못을 바로잡지 못했으니 참으로 불충한 신하라 할 수 있다. 이에 군의 지휘는 부장 왕리에게 맡기고 자결을 명하노라.”

부소는 이 조서가 진실인지 확인한 후에 따라도 늦지 않다는 몽염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눈물을 흘리며 자결했고, 자결을 거부한 몽염은 옥에갇혔다. 이렇게 부소와 몽염을 제거한 조고와 이사는 함양으로 돌아와

진시황의 죽음을 알리고 호해를 즉위시키니 그가 바로 진나라 2대 황제다. 그러나 호해는 왕의 재목의 아니었다. 그는 즉위하자마자 국정은

조고에게 맡기고 주색과 향락에 빠져 지냈다.

권력을 손에 쥔 조고는 먼저 장군 몽염을 비롯하여

열두 왕자를 저잣거리에서 공개 처형하고,

함께 음모를 꾸몄던 승상 이사마저 제거한 뒤 자신이 승상에 올랐다.

환관이 승상에 올라 국사를 총괄하며 전횡을 부리자

오광?진승의 난을 시작으로 전국에서 영웅들이 군사를 일으키면서

진나라는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그러자 조고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전국적으로 일어난 반란 소식이 호해에게 알려지고,

호해가 심기일전하여 친정을 한다면 자신은 권력을 잃게 되기 때문이었다.  또한 나라가 시끄러운 틈을 타 자신에게 도전하는 세력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생겼다.

그리하여 조고는 신하들의 마음을 떠볼 묘책으로 사슴 한 마리를 궁궐로 끌고 와 호해 앞에 머리를 조아렸다.

폐하, 조신이 좋은 말 한필을 구했기에 폐하께 바치려고

가져왔습니다.”

 

호해는 사슴을 말이라고 하는 조고를 향해 씁쓸히 웃으며 말했다.

“허허허, 경은 짐에게 재담을 하려는 것인가?”

호해의 말에 조고는 정색을 하고 말했다.

“소신이 어찌 폐하께 재담을 하겠습니까?

이 말은 천하에 보기 드문 명마이오니 부디 거두어 주십시오.”

호해는 좌우를 돌아보며 신하들에게 말했다.

“경들도 이것이 사슴이 아니고 말로 보이는가?”

신하들은 머리를 조아리며 “말이 맞사옵니다, 폐하!” 하고 대답했고,

당황한 호해는 신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돌아가며 물었지만

조고의 위세를 두려워한 신하들의 대답은 한결같이 사슴을 말이라고

대답했다.  조고가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던 그 때였다.

“폐하, 이것은 말이 아니라 사슴이옵니다.”

“그렇사옵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슴이옵니다.”

 

겁 없는 두 신하가 사슴이라고 바른 말을 아뢴 것이었다.

조고는 두 눈에 쌍심지를 켜고 그들을 노려보았고,

다음날 조정에서 그들의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조고는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황제에게 바른 말을 고한

신하들을 죽였고, ‘지록위마’라는 말은 이렇게 생겨났다.

 

그러나 거짓은 영원히 감출 수 없는 법,

전국적으로 일어난 반란 소식은 곧 호해에게 일려졌고,

호해는 나라를 망쳤다고 조고를 책망했다.

그러자 조고는 자신을 책망하는 호해마저 죽이고,

진시황의 손자 자영을 황제를 즉위시켰다.

그러나 온갖 악행을 일삼으며 나라와 황제를 망친 조고

또한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자영은 호해와는 달리 영민했다.

황제가 된 자영은 측근과 함께 조고를 죽일 계획을 세웠다.

그는 병을 핑계로 자리에 누웠고, 병문안을 위해 찾은 조고를 제거했다.

부조리한 방법으로 권력을 얻어 나라를 혼란에 빠뜨린 조고는 그렇게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이어 자영은 조고의 측근뿐 아니라 가문의 삼족을 멸하고

정사에 힘썼지만 이미 진나라는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없을 만큼 기울어 있었다. 결국 자영은 즉위한 지 불과 석달만에 함양에 진격한 유방에게 항복하였고, 중국 최초의 통일국가 진나라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한 지 15년, 그가 죽은 지 불과 3년 후의 일이었다.

 

 

황제위에 굴림하였던 환관 조고

환관 조고 (趙高 ?∼BC 207).그는 원래 조趙나라 왕족의 먼

친인척중 한명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조나라가 진나라에 의해 기원전 228년 멸망함으로써,

그의 어머니는 사형당하고 그와 형제들은 모두 환관이 되는

비운을 겪기도 하였다. 그런데 시황제는 그가 법가사상에 익숙하고

근면성실하다는 말을 듣고 그를 등용하니,

국가패망과 멸문지화의 비극이 오히려 조고에게는 기회가 되었다.

중거부령(中車府令)의 직책으로 시황제의 막내아들 호해(胡亥)를

어려서 부터 가르치며 돌보게 되었다.

따라서 호해에게 그의 말은 절대적인 진리나 다름없었다.

특히 그는 시황제의 강력한 신임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옥새를 관리하는 일도 도맡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곧 진나라 멸망을 초래하게 되는 대 사건이 발단이 되었으니,

중국을 통일한 시황제는 진나라 멸망의 씨앗을 뿌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BC 209년 시황제가 순행길에 사망하자, 조고는 시황제의 사망사실을 일체

함구한 후 남은 여정을 강행하였다. 또한 그의 손에 옥새가 있는 점을

이용하여 시황제를 대리하여 각종 결재까지 하였다.

그리고 시황제의 시신을 도읍 함양에 안치한 후에는 호해왕자와

승상 이사를 적극설득하여 장남 부소(扶蘇)와 몽염장군을 제거하는

계획에 합류시켰다.
이어 시황제의 서안을 조작, 부소왕자와 몽염자결에게 자결하라는 명을

내렸으며,부소왕자가 자결하자 호해의 제2황제 즉위식을 단행하였다.
이후 황제의 명령을 빌어 몽염장군및
부소왕자를 지지하던 12명의 왕좌와

10명의 공주를 모두 공개처형해 버렸다.
조고는 이처럼 혹독한 법을 시행함에 앞서
"현명한 군주가 되기 위해서는 법을 엄격하게 하고 처벌을 혹독하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죄를 지은 자는 연좌제를 적용하고 모든 일가 친척을 줙여

없애고 궁중에는 대신들을 없애며 폐하의 가족까지 멀리 하셔야 됩니다."
라며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 시켰다.

어려서부터 오직 조고의 말만 들어왔던 2세황제역시,
전적으로 조고의

말을 믿었으며 심지어 모든 법집행을 조고에게 맡겼다.

따라서 조고는 행정권과 사법권을 모두 장악하였으며,

다만 법률안 재정에 있어서는 황제의 도장만 받으면 그뿐이었다.

조고의 손에 전권을 웅켜쥐게 되자, 처음에 강법이었던 진나라의 법집행은

점차 악법으로 바뀌어 갔으며, 여기에 아방궁 공사재개와 황제 전용 도로

건설등 각종 무거운 세금이 내리지게 되었다.

세금이 정도도 너무나 무거워 졌지만 지금으로 말하자면

쓰레기 불법투기 정도의 범죄에도 귀나 코를 배는 무시무시한 법률을

적용하였다.

따라서 각지에서 대규모 반란이 일어났지만, 온실속의 화초에 불과한

2세황제는 그러한 사실을 전혀 몰랐다.

2세황제 재위 때 일어난 반란 중 가장 대규모의 반란은 진승과 오광이

중심이 된 반란이었는데, 그들 역시 만리장성 축조 부역에 동원되었다가,

폭우등으로 인해 도착기일이 연기되는 것이 불가피해져 부역에 동원된

사람들과 함께 반란을 일으키게 된 것이다.
만약 기일내에 도착하지 못하면,
이유가 무엇이던 인원이 몇만명이던

상관없이 모조리 생매장 당하였기 때문이다.

강법 일변도의 엄벌주의와 전국 어느 곳을 가리지 않고

일어나는 반란은 분명 국가패망을 재촉하는 것이었다.

진시황제와 함께 중국을 통일한 주역인 이사는 이대로 진나라가

패망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어 몇차례나 2세황제에게 조언을 하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조고의 견제로 그 기회를 잡기도 힘들었을 뿐더러,

설령 기회를 잡아도 2세 황제는 그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오히려 이사의 아들 이유가 진승과 오광의 반란 진압에 실패하자,

문책을 피하기 위해 황제에게 아첨하는 글을 올려야만 했다.

"..가벼운 죄를 무겁게 다스리는 것은 명군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

백성들이 죄를 짓게 되는 근본을 엄히 다스리지 못하는 군주가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근검을 실천하고 어질고 의로운 자가 조정에

있으면 군주는 마음껏 쾌락을 추구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군주는 근검한자와 직언을 하는 자 의로운자를 멀리하고

홀로 법을 시행해야만 그 지위도 존귀해 지는 것입니다."

그 글을 읽은 2세황제는 매우 만족하여,

그 이후 더욱더 혹독하게 법을 적용하고 세금을 징수하였다.

그리하여 길거리에는 굶어 죽거나 벌을 받아 죽은 시신이 널려 있었으며,

걸어다니는 사람중에는 귀를 잘리거나 손목을 잘린 사람이 반이나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참담한 광경을 목격하면서도 2세황제는

"참으로 감독이 잘되고 있구나."라며 오히려 집행관을 칭찬할 정도였다.

그러니 과연 어려서 부터 주입식 교육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한편 조고는 자신의 숙적이었던 이사를 제거할 방법을 궁리하던 중,

이사가 황제에게 아첨하는 글을 올렸다는 소식을 듣자 절묘한 계략을

생각해 냈다.그는 우선 이사의 마음속에는 아직도 진나라에 대한 충성심이

남아있다는 점을 간파하였다.

따라서 이사에게 진나라가 처한 현실에 대해 황제에게 직언을 해야 한다고

부축였다. 그리고는 황제의 곁에서 연일 미인들을 부르고 술잔치를 열었다.

평소에 쾌락과 유흥을 즐기던 2세황제는, 유흥이 깨뜨리는 일을 매우 실어했다. 그런데 조고는 의도적으로 흥이 절정에 이를 무렵 이사에게 연락하여

직언을 아뢰도록 하였다.

그리고 조고는 승상의 신분이었던 이사가 반란군과 내통하고 있다는 내용의 비방을 황제에게 아뢰었다.
이사에 대한 감정이 매우 안좋아 있던 황제는

즉시 반란군과 내통혐위를 조사하도록 명하였다.
하지만 이사역시 그대로 당할 수만은 없었다.

그는 황제와 접견한 자리에서 조고야 말로 반역의 행동을 일삼고 있으며,

본래 비천한 신분으로 도리를 분별하지 못하고 탐욕스러우며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에 혈안이 되어있다며 반격하였다.

하지만 황제는 일방적으로 조고의 편을 들어 주었다.

그리고 이사의 내통혐위에 대해 조고가 전임하여 조사하도록 하였다.

진시황제의 수족이었던 두 사람의 승부는 사실상 끝난 것이다.
중국통일의 주역이었던 이사가 환관의 세치혀에 농락당하여,

하루아침에 국가모반 공모죄로 사형수가 되고 만 것이다.

이렇게 죽음을 피할 수 없게 되자, 이사는 마침내 가슴속에 담아 두었던

울분을 토해 내었다.

"내 지혜는 옛 성인에 미치지 못하나, 2세황제는 그 어느왕보다 무도하다.

따라서 내가 죽임을 당하는 것은 어쩔 수 없으나 세상이 크게 어지럽게 될 것이니 그것이 걱정이다.
2세 황제는 형제를 죽이고도 죄를 반성하지 않고 충신을 살해하고도 죄를 뉘우치지 않으며,

대규모 궁궐을 지으면서 백성들을 핍박하고 있다.
이 세가지 일만으로도 천하의 인심은 이반되니 벌써 반역의 무리가 천하의 반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

이어서 그는 자신이 반란군의 반드시 함양을 함락시키고 진나라를 멸망시킬 것을 볼 것이라 장담하였다.

이런 독설로 인해 이사는 물론 그 가족들도 모두 모반죄로 체포되었다.

그리고 옥 중에 갇힌 이사는 혹독한 고문에 못이겨 결국 반역을 도모하였다는 거짓 자백을 하고 말았다.
이렇게 무고에 의해 반역자가 되어버린 이사는

오형(메를 치고 코, 귀, 혀, 다리를 자르는 5가지 형벌)을 시행한 후 허리를 잘라 죽이는 요참형에 처해졌다.

조고를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인 이사마저 죽었으니,

이제 조고의 전횡을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환관에 불과하였던

조고는 이제 승상까지 겸입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조고의 전횡은 어느 정도였는가?

이와 관련해서 전해지는 유명한 고사가 있다.

하루는 조고가 황제에게 사슴을 한 마리 바쳤다. 그리고는 제이황제에게
"폐하, 제가 좋은 말 한마리를 구했습니다."라고 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누가 보아도 사슴이었다. 그러나 대신들은 눈치만 보다가
"
폐하 그것은 말입니다."
라고 거듭아뢰었다. 2세 황제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몇번을 고쳐보고 자세히 보았지만 분명 사슴이었다.

황제는 결국 자기 자신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이후 황제는 별궁안에 틀어박혀 한발도 세상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황제가 완전히 이성을 잃은 것을 확인 하자,

조고는 경비병들에게 흰옷을 입혀 별궁안으로 행진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황제에게 반란군이 궁성까지 점령하였다고 거짓으로 아뢰었다.

그러나 이성을 잃은 황제는 아무것도 판단하지 못하고 조고의 말에 무조건 의존하였다.
그리고 조고는 계속하여 황제의 심리상태를 압박하였으며, 황제는 견디다 못해 자살하고 말았다.

이렇게 황제를 자살에 이르게 한 조고는 옥새를 웅켜잡고 황제행세를 하려 하였다.

환관에서 승상으로, 승상에서 황제로....이제 모든 권력이 정점에 오른 것이다.

하지만 단지 옥새만 있다고 해서 황제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신하들은 어느 누구도 환관의 명령에 따를 려고 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조고는 시황제의 손자인 자영에게 옥새를 넘겨 주었다.

자영을 3세황제로 볼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직 의견이 갈리고 있다.

아무튼 즉위식은 거행되었기 때문에 제 3황제로 보기로 한다.
비록 3세황제가 되었긴 하지만, 자영역시 언제 조고의 손에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달려야 했다.

설령 살아있다고 해도 2세황제처럼 허수아비나 다름없이 살다가 갈 것이고,

아니면 반란군 손에 살해당할 것이다.
3세황제는 병을 빙계삼아 정사를 돌보지 않으면서,

한편으로는 환관 환담일당과 내응하여 조고를 처단할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조고가 병문안을 드리기 위해 홀로 방문하자,

그자리에서 살해하는 데 성공하였다.

자영이 황제에 즉위한지 겨우 1년만이었다.
그후 자영역시 반란군에 의해 살해당하여,

기원전 221년에 중국을 통일한 진나라는 3대 15년 만인

기원전 206년 제삼황제 자영을 끝으로 막을 내리게 되었다

환관조고.그의 전횡보다는, 진실을 가릴때 나타나는

부작용이 얼마나 큰가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까 뎀! 간신(奸臣) 조고

진나라 환관(宦官)조고가 저지른 惡行은 사기(史記)에 나타난 일부만

 

추려 등급을 매겨도 人類사상 간신 개인(個人)부분서 1位인 건 두말할

 

나위도 없다.단체 부분은 아무래도 지난 두 번의 좌파정권 권력 핵심에

 

서 패거리로 국정을 농탕쳐 나라를 이 꼴로 만든 좌파 당에 모여 있는

 

전직奸臣 역도들에게 수여함이 마땅할 것이다.

이들이 패거리로 작당하여 反逆까지 노골적으로 저지르는 한편 부정비

 

리로 챙긴 재산을 합친다면 수백 조 원대로 나라예산과 맞먹을 정도니

 

간신 단체부분을 단연 석권하고도 남는다.

그래도 권력 맛은 잊지 못해 단일화(單一化)를 외치며 지랄병을 떠니

 

이들의 인간面貌를 하나하나 따진다면 奸臣이란 어떤 유형인가? 을

 

아는 데는 제아무리 우둔한 이도 어렵지 않을게다.

이들이 最大이슈로 내세우는 단일화(單一化)란 본래“4대강에 운하를

 

만들면 이는 국민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처사라 결국 정적들을 단합시켜

 

 그들 손에 권력을 쥐어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라는 우국충정(憂國衷

 

情)의 문장을 도용한 것이니 글 쓴 사람의 양해도 없이 이를 무단히

 

사용해 단일화란 명제로 선거에 써먹는, 비양심적인 남의 문장 盜用버릇

 

은 고치도록 이 기회에 만천하에 밝히는 바다.

人類最大 간신 조고의 DNA를 갖은 패거리 수만이 온 나라에 흙탕물을

 

휘져대는 데는 제아무리 여불위 같은 외교수완가가 나온들 오늘 보다

 

더 낳은 정치는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느時代나 고급사기꾼과 큰 도적들이 온 나라에 들끓으면 민초의 삶은

 

고달 퍼 질 수밖에 없으니, 거기에는 반드시 재물을 중시(重視)하여 사리

 

사욕을 채우는 탐욕(貪慾)스론 권력가와 그 주변 간신(奸臣)무리가 있다.

여기서 간신(奸臣)이라 함은 百姓에게 거둔 세금으로 봉록(俸祿)을

 

받는 高位벼슬아치로 올바른 정책은 시행할 줄 몰라, 군주의 잘못을

 

지적(指摘)하여 간하지 않고 오히려 非理를 빨아주는 간교한 말로 아첨

 

만 떠는 者로 국가의 장래보다 자신의 이익(利益)을 위해 백성을 속이는

 

공직자를 말함이다.

고대(古代)중국에는 그 방면에 탁월한 소질을 발휘하여 결국 나라의

 

종말을 가져온 간신조고의 행적을 보면 지록위마(指鹿爲馬)란

 

四字성어를 중국역사에 남길 정도로 전성기 때의 그 위세는 대단했다.

一介 환관인 조고가 어떻게 권력을 잡아 제국을 농락했는지 당시역사를

 

 살피면 史記의 문외한이라도 대강 이해할 것이다.

간신(奸臣逆睹)조고가 당시 최강의 진 제국을 망하게 하는 데는 어떤

 

수순을 거쳤는지/ 그 행적을 쫓아 당시 역사무대의 주. 조연급 인물들

 

캐릭터를 복원하고 최대권력 승상(丞相)여불위 부터 알아보자.

①.여불위:

 

巨商. 큰 부자는 아니고 요즘으로 치자면 수백억 정도의 자본을 움직이

 

는 상인으로 그가 기화가거(奇貨可居)“기이한 것은 투자해 사둬야”

 

된다는 생각을 실행하자 춘추정국時代 天下를 요동치게 했다.

그러나 본시 대의(大義)와는 상관없는 일개 장사꾼으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권력을 탐하고 승상으로 출세하여 단시일에 거부가 되나 간신조고

 

와 신의 없는 후계자 이사에 의해 비참한 종말을 고했다. 차라리 출세의

 

욕망을 접고 조나라서 조희등과 단란한 생애를 보내느니만 못한 최후를

 

맞이한 것이다.

②.조희(한단기생出身).

 

진시황제 어머니. 여불위 첩실이나 기획에 의해 조나라에 볼모로 와있는

 

공자이인의 부인. 나중 이인이(장양 왕)즉위하자 황후가 되나 엄청 뜨거

 

운 여자로 사내를 무지 밝히는 色女다. 거시기가 낙타 것만큼 큰 노 애라

 

는 사내와 쾌락을 누리다 두 아이까지 낳고 반역에 가담했다는 죄목으로

 

여불위까지 처형당하게 함.)

③.이인(자초):

 

안국 공(효문 왕)의 20명 아들 중 하나. 후일 장양 왕으로 즉위하나 제위

 

3년 만에 여불위에 의해 독살 당함. 안국공과 이인 父子를 독살한 장사꾼

 

여불위다. 작은 장사치는 心性이 착할지 모르나 제법 큰 규모로 움직이

 

는 장사꾼은 이익을 위해서는 수단 방법 가리지 않음.

④.

 

ㄱ  부소(진시황제의 장남)강직한 인물이나 환관조고와 승상이사의

 

     음모에 넘어가 시황제의 조작된 유서로 자살하게 됨.

ㄴ  호해(차남).진시황제의 유서를 조작한 조고에 의해 황제로

 

     응립되나 실권을 조고에 뺏겨 나중 살해당함.

ㄷ. 이사(승상). 여불위가 재상시절 발탁하여 키운 법가출신 표리부동한

 

     人才.  한비자와 동문수학했으나 진시황제가 한비자를 흠모하자

 

     이사는 승상자리를 빼앗길 가봐 음모를 꾸며 한비자를 죽임. 후일

 

     정치적으로 손잡았던 조고에게 7번 기만당한 후 죽임 당한 재능 있는

 

      인간(人間)찌 질이다 .

⑤. 조고:

 

BC 2世紀경 진시황제 궁전환관(宦官). 음모와 술수에 능한 사악한 나라

 

망친 인간. 인류사상 간신차트 1위. 자신은 착하다고 생각하나 자기를 지

 

키기 위해 닥치는 대로 주위사람을 희생시키는 간악한 품성 가진 자.

깊은 구중궁궐(九重宮闕)에도 환관의 귀와 눈은 덮을 수 없어 황태후

 

(조희)가 노애와 정사 끝에 두 아들을 두고 있다는 극비정보를 입수한

 

환관조고. 그러나 나불거리지 않고 참고 기회를 노리다 승상 여불위가

 

섭정에서 물러나자 독립하여 권력을 찾은 진시황제에게 이를 반역으로

 

날조하여 고하는 간신조고. 거시기만 큰 석두(石頭 )노애에 반역죄를

 

씌워 9족을 멸하게 하고 여불위까지 낙마시키니 화살 한 개로 새 두

 

마리를 잡는 간신의 묘기. 환관조고의 혀 바닥 하나가 중국천하의

 

권력을 교체한다. 타고난 간사함과 교활함, 찬스에 강한 환관조고의

 

고발과 아첨은 시황제의 신임을 얻자 잠시도 가만 못 있는 시황제를

 

충동시켜 아방궁과 여산 능. 등 大型 토목공사를 일으키고 나중엔

 

만리장성까지 축성(築城)케 했다.

대형 토목공사는 불요불급한 게 아니면 국가재정을 낭비하는 나라패망

 

행위나 간신역도(奸臣逆睹)환관 조고에게는 그런 게 상관없는 남의

 

일이었다. 조고는 시황제가 불로장생을 꿈꾸도록 옆에서 부채질하여

 

수은을 장복케 하고 그 독에 진시 왕이 죽자 승상이사를 끌어들여 공모

 

해 유언을 조작 장남부소를 자살케 한 뒤 시황제의 둘째아들 호해를

 

왕으로 세운 조고는 권력의 頂點에 선다.

이때 지록위마란 간계로 자기 심복 외의 대신들은 제거한 후 승상이사까

 

지 죽인 뒤 자기가 세운 황제(호해)까지 살해했다. 결국 대장군 몽 염이

 

군대를 끌고 와 역적조고와 구족을 멸하나 이때는 진나라 국고는 탕진되

 

고 내외우환(內外憂患)을 격은 진제국은 결국 망하고 만다.

⑥. 몽 염. 진나라 대장군(名將).

 

간신 조고가 가장 겁낸 인물. 당시 진나라는 중국 북서부 지방에 위치

 

주변에 많은 인접국이 있었다. 먼데 있는 나라와는 외교로 친교를 맺어

 

군소국들이 합종연합을 못하게 하고 가까운 나라는 침공 6國을 정복.

 

天下統一을 이루는데 몽 장군의 역할이 컸다.

진시황제의 유언을 조작한 조고와 승상이사가 몽 장군도 자살도록 흉계

 

를 꾸몄으나 이를 간파하여 죽지 않으나 부소는 어리석게 조고에게

 

당했다. 고대 중국사를 大河연출 시각서 보면 그 당시 중요 등장인물

 

모두가 하나같이 강열한 개성의 캐릭터였다.

여불위는 당시 조나라에 불모로 와 있던 진나라의 후일 장양 왕이 된

 

공자이인을 보고 기화가거(奇貨可居)를 착상하여 기생 첩 조희를

 

임신시켜 이를 속이고 공자이인에게 시집보낸다.

기생출신 조희는 사내를 엄청 밝히는 음녀다. 진의 공자이인을 꼬여

 

여불위자식으로 왕조를 잇는다는 음모에 동참하나 야간작업 실력이

 

저조 한 여불위를 배신하고 밤중 떠돌이 무사. 병법가를 숙소로

 

유인하여 임신한 뒤 여불위 자식이라 속인다.

후일 노애 와의 정사로 두 아들을 얻어 반역혐의를 받자 죄를 여불위에

 

게 뒤집어 씌워 여불위는 親父가 아니라고 아들 진시 왕에게 이실직고

 

(以實直告). 미심적어 하든 판에 냉정하게 여불위에게 사약을 내리는데

 

주저하지 않게 만든다. 속이고 속는 중국인 기질이 그대로 나타나는(中

 

國古代 史).조나라 볼 모로 가있던 공자이인을 데리고 진나라에 온

 

여불위는 대대적인 환영을 받고 벼슬길에 오른다. 이인의 아비 안국공이

 

즉위하여 효문 왕이 되자 1년 만에 여불위에 의해 암살된다.

 

公子이인이 장양王이 되자 약속대로 여불위는 승상이 된다.

 

그러나 장양王 마저 3년 만에 독살하고 아들 영정(진시황제)을 13살에

 

즉위시켜 여불위는 승상 겸 섭정으로 진 제국의 최대 권력이 된다.

여불위는 장사꾼 시절 타국을 왕래하던 견문으로 외교에 능해 後日 진시

 

황제가 주변 6國 정벌의 토대를 닦으나 이익을 쫓는 장사치 본연의 자세

 

를 버리지 못했다. 대의(大義)를 쫓는 자질이 없는 여불위는 승상으로

 

출세하나 만사를 이익기준으로 처리했다. 그러나 명재상 흉내로 맹상군

 

을 쫓아 식객 삼천을 두니 나중 승상이 된 이사가 그때 식객 중에 발탁된

 

인재다. 식객들로 하여금 여씨춘추(呂氏春秋)등을 집필케 하나

人才섬별에 있어 인성을 꿰뚫어 보지 못하고 外形으로만 판별, 後日

 

진시황제가 사약을 내릴 때 자청하여 죄과서(罪過書)를 쓰는 이사는

 

파렴치한 자로 이를 미리 알아보지 못하고 출세시킨 여불위의 末路다.

 

간신조고의 凶計에 단칼로 낙마하여 독배를 받으니 자업자득이었다.

조고는 교활하여 거짓을 일삼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을 속이는데

 

뛰어난 재능을 가졌다. 그러나 권력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백성은

 

골병들어 나라가 어지러워지는 것과는 별개로 자신의 잘못을 빨아주고

 

핥아주는 이해성 많은 측근이 충성스럽기 짝이 없는 법이다. 인간이란

 

생각하는 각도에 의해 엄청 차이가 난다.

영웅과 병법가가 만나면 상부상조로 국부를 상승시키나 탐욕스러운

 

패왕 진시황제와 간신조고의 만남은 결국 나라를 혼란시켜 아들 둘을

 

죽이고 자신은 수은 독에 죽어 결국 진 제국을 붕괴시키고 말았다.
까 뎀! 조고

 


(故 고우영 '십팔사략' 중 조고의 모습,

호해를 구워삶고 있다. 내가 다 알아서 할테니 나오지 말라는 거..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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