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어쩌구 저쩌구

대학을 기준하여 본 대선주자 유형

칠봉인 2012. 10. 13. 07:44

十手所指(십수소지):많은 사람들의 손가락질

대학(大學)에서 보면 십목소시(十目所視)

 

십수소지(十手所指)는 참으로 두려운 것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十目所視 十手所指 其嚴乎).

 

즉 많은 사람들의 눈총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하며 많은

 

사람들의 손가락질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여곤()의 신음어(呻吟語)에서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는 사람은 병에 걸리지 안 해도 죽는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남의 눈총이나 받고 남의 손가락질을 받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에 그런 것일까?

 

그것은 몸가짐이 바르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몸가짐을 수신(修身)이라 한다.

 

수신하기 위해서는 그 마음가짐을 바르게 해야 한다고 했다. 대학(大學)애서는

 

마음을 바르게 가질 수 없게 하는 이유를 크게 4가지로 나누어서 설명하고 있다.

첫째는 분통한 마음을 품는다면 마음이 자리해야할 바른 곳을 터득할 수 없다

 

둘째는 두려운 마음을 떨치지 못한다면 마음이 자리해야할 바른 곳을 찾을 수 없다

 

셋째는 놀이 즐기기에 빠져들면 마음이 자리해야할 바른 곳을 알아낼 수 없다

 

넷째는 마음이 불안하고 번민에 싸여있다면 마음이 자리해야할 바른 곳을 자주 잃기 쉽다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마음에 부끄러워 할 바가 없다면 마음은 어제나 넓고 너그럽고 평온하며

몸은 항시 태안하여 덕으로서 몸을 윤택하게 한다했다

그래서 선()이라는 것이 마음속에 차있게 되면 그 여광(餘光)

저절로 밖으로 들어나게 된다는 것을 귀띔해주고 있다

 바꾸어 말해서 재물이 넉넉하면 집안 살림이 윤태해지듯이,

덕성을 함양해서 체득하게 되면 몸이 윤택해진다고 했다  

 

 

대학의 가르침이 그렇다면 신음어(呻吟語)에서는

그 훈의(訓義)를 어떻게 풀이하고 있는지 알아본다.            

사람들의 생각은 일반적으로 4가지 이싱의 유형으로 변해간다고 하였다.

, 정사(正思), 사사(邪思), 월사(越思), 혹사(惑思)등이 그것이다.

 

정사(正思)는 선()을 의식하고 선의 실현을 도모하는 마음의 작용을 말한다

사사(邪思)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고자하는 마음의 움지임을 말한다

월사(越思)는 직분에 넘치는 보다 큰 욕망을 추구하기 위하여 마음을 쓰는 경우를 말한다

혹사(惑思)는 어떤 일에 직면하였을 때 그 일의 사연을 의심해볼 줄도  모르고, 가부간에

                  용단 내려야할 때 단안을 내릴 줄 모르는 경우의 마음 생태를 말한다  

 

그리고 그와 같은 마음과 생각을 바탕으로 하여 표출되는 말(言語)

낯빛(顔色)은 각각 다르다고 지적하고 있다.

말에는 유충지언(由衷之言)과 유구지언(由口之言)의 구별이 있고,

낯빛에는 근심지색(根心之色)과 부면지색(浮面之色)의 구별이 있다고 한다.

유충지언은 충심에서 나오는 말이며. 유구지언은 입에 발린 말이다.

근심지색은 마음에서 울어나는 표정이며,

부면지색은 양심을 가장한 위선적인 낯빛이다.

 

바꾸어서 말하면 유충지언과 근심지색은 진실(眞實)의 표현을 의미하며,

유구지언과 부면지색은 위선(僞善)의 표현임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몇 가지 요목을 기준으로 하여 대선후보자들의

그 유형을 살펴볼 필요를 느낀다.

첫 번째 유형은 자전거를 타고 고속도로에 진입하여 달리려는 모습이요.

두 번째 유형은 불완전정비차량을 몰고 고속주행하려는 모습이요,

세 번째 유형은 산전수전을 겪은 기관사가 대승적 열차를 몰고 나선 모습이다.

 

우리는 이러한 유형 중에서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를 냉엄히 판단해야 할 것이다.

그 선택은 곧 우리의 운명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물론 선택은 각자의 자유다.

 

그러나 다음 두 가지 면에서 깊이 유념해야하다.하나는 대중매체를 관리하고

조정하면서 광보기능(廣報機能)을 수행하는 사람들의 엄정중립한 입장의 견지(堅持).

다른 하나는 감성적인 판단으로 지역적 세대적 사회적 편향성을 들어냄으로서 소아적

자기만족을 추구하려는 생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어야 하다는 점이다.  

물론 인간은 감성적 동물이기 때문에 자신의 순간적 느낌에 따라 대상을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영원한 이성적 존재이기 때문에 소아(小我)보다는 대아(大我),

소의(小義)보다는 대의(大義)를 선택할 줄 아는 높은 수준의 지혜를 지닌다.

그와 같은 경구(警句)를 가장 적절하게 전해주고 있는 것은 세종실록에

실려 있는 다음의 구절이 아닌가 싶다.

 

지공무사자는 천야요(至公無私者 天也).

지우이신자는 민야라(至愚而神者 民也).

지극히 공명정대하여 사감정이 없는 것은 하늘이요,

지극히 어리석은 듯하면서도 신과 같은 존재는 백성이라는 뜻이다.

 

치자이든, 피치자이든, 그리고 대선 입후보자이든, 선거권자이든,

누구를 막론하고 공명하고 정대해야하며 그러한 자세로부터 벗어나서도

안 된다는 도리를 귀띔해주고 있다. 그리고 국민들로 하여금 판단을

그르치게 유도하거나 또는 사실을 호도(糊塗)하기 위하여 위선과 감언이설로써

속임수를 동원하는 것 등은 더욱 자제해야 하며, 아울러 국민들은 소아적 개인의

입장이 아니라 대아적 국민의 입장에서 전지전능한 신() 다워야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선택받아야 사람과, 선택해야할

사람의 그 양면적 책임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된다.

 

일부 대중매체에서 대선후보자 지지도에 관해서 표본조사를 했다는 것을 발표했다.

A. B. C. 후보자에 대한 지지도를 44% 45% 47%(예시)라 하였다.

그런데 동 조사에서 국정운영능력을 묻는 항목에서는 그 신뢰도가 역으로

47% 23% 12%로 정 반대의 결과를 나타내고 있었다.

한 마디로 요약해서 한 나라의 대통령을 뽑는데 있어서 가장 중시해할 것은

국정운영능력이다. 그런데, 지지도는 그와 반대로 나타나고 있다면 국민여론의

진의는 무엇이란 말인가? 이는 여론조사방법에 있어서 논리성의 결핍을

들어낸 것이 아닌가싶다.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느껴진다.

 

거듭 말하거니와 마음이 정직(正心)하고, 생각하는 것이 옳고(正思),

진심에서부터 울어 나오는 말로서(由衷之言) 공약을 제시하며,

진지한 표정(根心之色)으로서 국민들과 더불어 애환(哀歡)을 하께

하려는 자질을 보다 잘 갖추고 있는 이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1219일부로 우리 모두에게 내려진 위대한 선택의

대소명(大召命)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기타 > 어쩌구 저쩌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남 나주 국제농업 박람회  (0) 2012.10.13
우리들의 아버지  (0) 2012.10.13
불산이 얼마나 위험한가  (0) 2012.10.12
혁명을 도와준 정치인  (0) 2012.10.10
땅콩 말라가는 소리  (0) 2012.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