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란 누구인가
/ 이명랑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시(詩) 한 편이 있다.
'아버지란 누구인가?’라는 제목의 시로,
어느 날 인터넷에 올라온 몇 줄의 글에 많은 사람들이 한 줄 한 줄,
아버지의 이야기를 덧붙여 한 편의 아름다운 시가 되었다.
아버지는 누구인가 ?
아버지란 기분이 좋을 때 헛기침을 하고,
겁이 날 때 너털웃음을 웃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자기가 기대한 만큼 아들, 딸의 학교 성적이 좋지 않을 때
겉으로는 “괜찮아, 괜찮아” 하지만 속으로는 몹시 화가 나는 사람이다.
아버지의 마음은 먹칠을 한 유리로 되어 있다. 그래서 잘 깨지기도 하지만,
속은 잘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란 울 장소가 없기에 슬픈 사람이다.
아버지가 아침 식탁에서 일어나 바삐 달려가는 장소(그 곳을 직장이라고 한다)는,
즐거운 일만 기다리고 있는 곳은 아니다.
아버지는 머리가 셋 달린 용과 싸우러 나간다. 그것은 피로, 끝없는 일,
직장상사에게서 받는 스트레스다
아버지란 “내가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나? 내가 정말 아버지다운가?”
하는 자책을 날마다 하는 사람이다.
아버진, 자식을 결혼시킬 때 한없이 울면서도 얼굴로는 웃고 있는 사람이다.
아들, 딸이 밤늦게 돌아올 때 어머니는 열 번 걱정하는 말을 하지만,
아버지는 열 번 현관문을 쳐다본다.
아버지가 가장 기뻐할 때는 자식들이 남의 칭찬을 받을 때이다.
아버지가 가장 꺼림칙하게 생각하는 속담이 있다
그것은 “가장 좋은 교훈은 손수 모범을 보이는 것이다” 라는 속담이다.
아버지는 늘 자식들에게 그럴 듯한 교훈을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자신이 모범을 보이지 못하기 때문에,
이 점에서는 미안하게 생각도 하고 남 모르는 콤플렉스도 갖고 있다.
아버지는 곧잘 이중적인 태도를 취한다.
그 까닭은 ‘아들, 딸들이 나를 닮아 주었으면’하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론 ‘제발 나를 닮지 말았으면’하는 생각을 동시에 하기 때문이다.
아버지에 대한 판단은 나이에 따라 달라진다.
일반적으로 나이에 따라 변하는 아버지에 대한 판단은,
4세 때 - 아빠는 무엇이나 할 수 있다.
7세 때 - 아빠는 정말 아는 것이 많다.
8세 때 - 아빠와 선생님 중 누가 더 높을까.
12세 때 - 아빠는 모르는 것이 많아.
25세 때 - 아버지를 이해하지만기성세대는 이미 갔습니다.
30세 때 - 아버지의 의견도 일리가 있지요.
40세 때 - 여보! 우리가 이 일을 결정하기 전에 아버지의 의견을 들어봅시다.
50세 때 - 아버지는 훌륭한 분이셨어.
60세 때 - 아버지가 살아 계셨다면 꼭 조언을 들었을 텐테......
아버지란 돌아가신 뒤에도 두고두고 그 말씀이 생각나는 사람이다.
아버진, 돌아가신 후에야 비로소 보고 싶은 사람이다.
아버지는 결코 무관심한 사람이 아니다.
아버지가 무관심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체면과 자존심과 미안함 같은 것이
어우러져서 그 속마음을 쉽게 드러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들, 딸들은 아버지의 수입이 적은 것이나
아버지의 지위가 높지 못한 것에 대해 불만이 있지만,
아버지는 그런 마음에 속으로만 운다.
아버지는 가정에서 어른인 체를 해야 하지만,
친한 친구나 맘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면 소년이 된다.
어머니 앞에서는 기도도 안 하지만, 혼자 차를 운전하면서는
큰소리로 기도도 하고 주문을 외우기도 하는 사람이다.
아버지! 뒷동산의 바위 같은 이름이다. 시골마을의 느티나무 같은 크나큰 이름이다.
아버지. 체면과 자존심과 미안함 같은 것이 어우러져 그 속마음을 쉽게 드러내지
못하는 아버지
어버이가 베푸는 은혜에 대해 석가모니는 이렇게 10가지를 말씀하셨다.
1. 잉태하여 지켜주신 은혜.
2. 해산하실 때 수고하신 은혜
3. 자식을 낳고 모든 근심을 잊으신 은혜
4. 쓴 것을 삼키고 단 음식을 뱉어 먹이신 은혜
5. 항상 자식은 마른 자리에 뉘시고 자신은 젖은 자리에 누우신 은혜
6. 젖을 먹여주신 은혜
7. 깨끗하지 않은 것을 씻어주신 은혜
9. 자식을 위해서는 나쁜 일도 마다하지 않으시는 은혜
10.죽을 때까지 자식을 애처롭게 여기시는 은혜
구태여 부처님의 말씀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부모님의 은혜가
바다와 같다는 것은 어린애들도 다 안다.
세상에는 가르쳐주지 않아도 저절로 알아지는 것이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바로 효(孝)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효라는 것은, 늙고 병들어 가는 사람에 대한 연민이고 배려이고
그리고 우리의 마음 속에서 저절로 생겨나는 본성과도 같은 것이라고.
그런데 그것도 아닌 가 보다. 효도를 할거냐, 안 할 거냐.
효도를 하면 어디에 있는 땅을, 얼마나 많이 줄거냐.
땅문서를 옆구리에 끼고 나가 협상하듯이 실랑이를 벌이고 나서야
명색뿐인 효라도 받아볼수 있게 된 것이다.
예부터 효는 사람의 윤리이고,사람의 윤리(倫理)는 하늘로부터 받은 것이라고 했는데,
공짜라면 쥐약도 마다 않고 낼름 받아먹을 사람들도 하늘이 주는 이,
사람의 윤리만큼은 한사코 받으려들지 않으니,
이제는 나라에서 나서서 모름지기 효라는 것이 무엇인지,
왜 효도를 해야하는지 가르치기라도 해야할 모양이다.
그래도 약발이 안 받으면, 효행이 두드러진 사람에게 조곡 300석을 내리고
집과 전답을 하사하여 사회적으로 크게 표창했다는 신라 경덕왕 때처럼
돈이라도 한 다발씩 안겨줘야 되나,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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