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어쩌구 저쩌구

碑의 기원과 종류

칠봉인 2014. 1. 13. 14:43

碑의 기원과 종류

비의 명칭도 

1. 碑의 起源과 種類

비는 관을 내리는데 사용하였던 풍비(豊碑)에서 유래하였다는 설과

궁실의 뜰에 세운 일종의 해시계에서 유래했다는 일영비(日影碑)설,

제왕이 천지의 신에게 제사지내는 의식에서 유래했다는 봉선의식설,

시실을 묻고 표시를 하는 갈(갈)에서 유래하였다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비의 종류는 재질에 따라 목비(木碑), 석비(石碑), 철비(鐵碑) 등이 있다.
또 내용에 따라 묘비, 탑비, 신도비, 사적비, 유허비, 기공비, 송덕비, 효자열녀비 등이 있다.

비는 일반적으로 대좌(臺座)와 비신(碑身)과 개석(蓋石)〔관석(冠石)〕 세부분으로 되어있다.
대좌는 비의 몸돌을 받치는 것으로 네모나게 만든것과 거북모양으로 조각한 것이 있는데

태종무열왕릉비가 거북모양으로는 가장 유명하다.
비신은 직육면체로 앞면을 비양(碑陽) 뒷면을 비음(碑陰)이라고 하는데

대개 앞면에서 시작하여 뒷면으로 이어지면서 비문을 새긴다.

근래에는 앞면에 제액을 새기고 뒷면에 비문을 새기기도 한다.
비의 상단부나 개석에 비의 명칭을 새겨 제액(題額)이라고 하며

일반적으로 전서로 쓰면 전액(篆額)이라 하고

예서로 쓰면 예액(隸額)이라고 한다.

2. 시대에 따른 변화

(1) 삼국시대

고구려의 광개토왕비와 중원고구려비가 대표적이며

백제의 사택지적비, 신라의 영일 냉수리비와 울진 봉평비,

단양 적성비, 진흥왕 척경·순수비, 남산신성비 등이 있다.

이들은 대체로 비의 개석이 없는 것이 특이하다고 할 것이다.

(2) 통일신라시대

비신은 없어지고 귀부만 남은 경우로는 성덕왕릉이나

흥덕왕릉, 사천왕사터나 고선사터의 귀부가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현존하는 석비는 9세기에 유행한 결과로 무장사아미타불조상탑비를 비롯하여

전국각지에 스님들의 부도와 함께 세워진 부도탑비가 많이 산재해 있다.

이는 고려시대로 연결된다.

(3) 고려시대

초기에는 통일신라시대를 답습하여 계승하다가 중기에는

대좌 위에 개석이 없는 상태로 세우는 것이 유행하며

후기에는 지붕모양의 개석이 유행하게 된다.

(4) 조선시대

스님들의 탑비가 유행하던데 비하여 왕실과 사대부의

묘비나 신도비가 주류를 이루며 모양도 다양화된다.

후기에는 신도부와 사적비와 특히 송덕비가

일대 유행을 하게 되어 폐해도 심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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