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어쩌구 저쩌구

[스크랩] 20대, 결혼을 망설이는 당신에게 (네이트판)

칠봉인 2014. 9. 12. 06:36





출처 : http://m.pann.nate.com/talk/320534827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문득 어느 날 아침,푸른 새벽이 창너머 오는 소리를 들었을 그때거실에서 외로이 잠든 남편의 얼굴을 보아서이다.
남편의 얼굴을 보니 내가 왜 결혼을 했을까 궁금했다.

4년 7개월전 지인의 소개로 처음 만난 2살 많은 남편은쌍커풀이 없는 눈과 약간 통통한 뱃살이 나온 그런 남자였다.첫 인상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아 대충 식사나 하고 헤어지자.혹시라도 애프터가 들어오면 에둘러 핑계대야지 뭐 하고 말았다.약 3시간의 만남동안 공감대도 꽤 있었고 매너도 좋았다.말도 잘 통했고 착했고 무심한 듯 귀여워보이기도 했다.
두번째 만나니 쌍꺼풀 없는 눈에 참 선해보였다.통통한 뱃살도 귀엽기까지 했다.자우림의 '애인찾기'처럼 그렇게 남편이 좋아보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약 한달간의 밀당(?)을 하다 연애를 시작했다.

내 남편은 전형적인 조선시대 남자라고 보기에도그렇다고 요즘 남자라고 보기에도 애매한 딱 중간 시대를 사는 듯한 남자였다.나름 낭만있는 이벤트도 할 줄 알고 로맨스도 있고 본인은 아직도 모르는나만 아는 나만 자지러지게 좋아하는 귀여움도 있었다.
말도 무심했지만 뉴스기사 댓글보며 킥킥 거리며 웃는 걸 좋아했다.
연애 2년째 되는 날, 둘이 밥집에 앉아서 밥을 먹다 내가 물었다."3년째되는 날 뭐할까?"
김치 조각 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으며 말했다."부부로 살지 뭐.""응?""결혼하자고."
당시 나 스물여섯, 당신 스물 여덟
"오빠, 돈있어?""너 명품백 사줄 돈은 있어.""아니, 그거 말고 결혼자금.""걱정마. 그것도 없으면서 결혼하자고 했겠냐."

그렇게 우리의 연애는 2년만에 종지부를 찍었다.종지부를 찍었다는게 이별이 아니라 새로운 관계를 전환했다는 것이다.연인에서 예비부부가 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연애 2년 - 예비부부 6개월(결혼준비기간)이라고 말하기도 했다.이 글에서도 그렇게 쓰고 싶었다.왜냐면 연애를 하다 예비부부가 되는 그 과정은 참 재미있으니까.색다른 변화가 오고 서로를 쳐다보는 눈빛이 마음이 많이 달라지니까.
엄마, 아빠에게 결혼할 사람이 있다니까 돌아오는 질문은 임신했냐 였다.아니라고 하니까 그럼 만나자고 했다.
역시나 처음처럼 우리 부모님도 신랑의 쌍꺼풀없는 눈과 통통한 뱃살을 마음에 들지 않아하셨다.(쌍꺼풀없는 것이 싫은 것이 아니고 가로로 찢어진 눈이, 정확하게 말하자면.)
하지만 몇 일을 준비했는지 결혼하면 어떻게 살것인지에 대해서유창하게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신랑의 모습에 약간의 신뢰를 얻었다.
다음은 내 차례.눈이 펑펑 내리는 날 만난 지금의 나의 시부모님은 두분이 똑 닮으셨다.웃는 모습이 어찌나 닮으셨는지 이런 말 하면 웃기지만 난 시부모님이 마음에 들었다.그리고 아버님과 신랑이 너무너무 닮아서 엄청난 유전자의 힘에 새삼 놀랐다.
어머님은 추운 날 오느라 고생많았다며 손을 잡아주셨고아버님은 이 놈이 보기보다 여자보는 눈이 있다며 호탕하게 웃으셨다.


암튼 평범하게 산 여자와 무심하게 산 남자가 결혼을 승낙받았다.성격 급한 우리엄마가 다짜고짜 택일을 받아왔다.기독교인 시댁으로 인해 일요일을 피하면 토요일밖에 없었고예전부터 식이 끝나고 하루 머물다 다음날 신행을 가라는 주위의 조언을귀따갑게 들은지라 저녁 5시 예식으로 잡았다.
나의 담당 웨딩 플래너가 뭔 말도 하기 전에 급하게 결혼식장 리스트를보내주어서 본의 아니게 먼저 식장도 잡아버린 후 그곳에서 상견례를 진행했다.아버님께서 해외 출장을 가시는 바람에 늦은 것도 있었다.
평소 말수가 없던 우리 아빠는 무슨 하실 말이 그리 많았는지 3시간가까이 식사는 입에 대지 않고 계속 말씀을 하느라 머리가 아팠다.나중에 알고보니 딸 시집보내기 싫어서 애써 다른 얘기만 하는거라고...
신랑 직장 근처에 아파트로 전세를 계약했고그 아파트에 맞추어 혼수가 들어갔다.그 해, 겨울은 참 바빴다.그리고 엄마랑 참 가까워진 계기도 됐다.

아, 신랑은 결혼식 한달 전 내 생일날 프로포즈를 했다.형식적인듯 이벤트인듯한 무덤덤한 프로포즈였다.담담히 편지를 읽어주니 레스토랑 직원이 꽃다발을 가져다 주었다.그래도 좋았다.결혼하는구나, 이 남자랑. 그때 느꼈나보다.

허례허식이 싫다는 양가 부모님의 의견에 따라 예단, 예물도 생략.손에 끼워진 18k 반지가 너무너무 좋았다.

그리고 따뜻한 봄날, 우리는 결혼을 했다.결혼식을 끝내고 다음날 인천공항으로 가는 길에신랑 품안에서 잠이 드는데 그제야 이 사람이 내 남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도 얘기했지만 우리 신랑은 참 무덤덤하고 무심하다.무언가 크게 표현하지 않고 대게 많은 일들에 대해 무심히 반응한다.크게 놀람이 없고 시끄럽게 웃지 않고 불같이 화를 내지도 않는다.
정말 나랑 달랐다. 나는 놀라도 우왁! 이렇게 놀라고 웃기면 깔깔깔 웃고화가 나면 이야!! 하며 초사이언이 되버리는데 그렇지 않다.
이런 다른 면이 우리 연애하면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내가 웃으면 남편은 넌 참 잘웃는구나 했고내가 놀라면 내 놀라는 소리에 놀라 남편이 놀라곤 했다.불같이 화를 내면 자기 딴에는 화가 났다며 무심히 조곤조곤 얘기하는데그게 화를 더 돋구게 했을 뿐이었다.
어쨌든, 2년이란 연애관계동안 다른 커플만큼 싸우기도 했고헤어져란 소리가 입 밖으로 튀어나오고 싶지만 그래도 꾹꾹 눌러 담겠어 라는정도로 몇번 헤어질 뻔한(?) 순간도 있지만 그럭저럭 잘 넘겼다.

그런데 부부가 되니 달랐다. 정말 밥먹는 습관, 화장실 쓰는 습관까지 다른게 부부였다.나는 왼쪽으로 돌아누우며 자는 편인데 그럼 신랑을 등지게 된다.신랑은 자신을 왜 외면하냐며 싫어해서 투닥거린적도 있다.
난 페리카나가 좋은데 신랑은 비비큐가 좋다며 싸운 적도 있다.
내가 집에서 티비를 보고있는데 신랑이 왔는데 얼굴도 보지 않고 "왔어?"하면힘들게 일하고 온 사람 쳐다도 안봐준다고 서운해 한적도 있다.
아니 오면 온거지 꼭 얼굴보고 인사해야돼? 무슨 이산가족 상봉해?나는 너가 웃는 얼굴로 반겨주면 얼마나 좋은 줄 알아?내가 평소에 웃지도 않디? 맨날 울고있디? 뭐 시시때때로 헤헤 거리며 잘 웃는데 왜그래?
대게 결론없는 말싸움이 대부분이었다.

참고로, 나는 결혼준비와 동시에 직장을 관뒀다.아버님의 부탁이었다.여자가 나가서 돈을 벌면 남자가 바깥일이 해이해진다고혼자서 그 책임을 지어야 하니 이왕이면 집에서 살림하기를 원하셨다.마침 나도 다니던 회사가 이골이 나던참이라 솔직히 좋기는 했다.
신랑에게 물어보니 자신도 내가 집에 있기를 바랬다.친구도 만나고 문화센터도 다니고 그래.
물론 아버님의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고 사람마다 사고방식이 다르니 태클은 사양.
어쨌든 나는 취집(?)을 한 대신 그 일에 최대한 노력을 했다.이틀에 한번씩 청소기를 돌렸고 매끼 다른반찬,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을 했고설겆이를 절대 쌓아두지 않았으며 남편의 셔츠를 빳빳이 다리곤 했다.고생하는 남편의 어깨를 주물러주고 따뜻한 물을 떠와 발을 만져주기도 했다.
생활비(관리비, 가스비, 핸드폰요금, 식비 등) 80만원씩 쓰고20만원은 나를 위해 쓰기도 했다. 야무진건지 잘 산건지 모르지만서울 중심가 32평 아파트에서 나름 절약하려고 노력한것 같다.절대 내가 잘했다는건 아니다. 쓰다보니 온통 자랑질인듯 ;

우리는 부부관계가 되어도 큰 싸움이 없었다.신랑이 술을 마시고 새벽2시 떡이 되어 돌아와도 무탈하게 돌아와서 다행이다 했고친구들이랑 1박2일 놀러가도 잘 다녀오라고 했다.우리는 결혼해서도 어느 정도의 개인 플레이도 열심히 했다.
나도 친구랑 놀다 11시쯤 얼굴이 벌개져서 들어오기도 했고가끔 내 용돈 모아서 큰 맘먹고 50만원짜리 지갑 하나 지르기도 했다.요리프로그램을 보며 레시피를 배우고 살림잘하는 노하우 이런걸어깨너머로 배우기도 했다.
시부모님께서는 살림살이에 큰 관심이 없었고 고부갈등도 딱히 없었다.하루는 어버이날 용돈을 드리니 그것의 배로 다시 가방에 넣어주셔서무조건 선물을 사다드려야겠다 결심했다.
무심한 남자와 살다보니 나도 무심해졌다.무슨 일이 벌어져도 오, 그런가보네 하고 말아버린 일이 대다수.그래도 우리에게 로맨스가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가끔 밤에 촛불켜고 와인도 마셨고 놀이동산에서 부부아닌 연인처럼 놀기도 했다.무작정 일출이 보고싶어 차를 내달렸고 부산 해운대 해수욕장에서 서로의 이름을모래사장에 그려넣는 지금은 손발이 오그라드는 그런 짓도 했다.
행복, 로맨스, 달달한 애교 그리고 가끔의 말다툼, 약간의 거리두기가적당히 섞인 그런 신혼생활이었다 적고싶다

그러던 작년 10월, 내 몸속에서 새로운 생명이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됐다.몸이 원체 예민한터라, 4주에 병원에서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퇴근한 신랑과 밥을 먹고 과일을 깎아먹으며 "나 애기가졌데." 하니까"오, 아빠가 되는건가." 하는 그런 무심한 반응을 보여주었다.
12주쯤되서야 양가 부모님께 말씀드리니 쌍수를 들며 축하해주셨다.우리 신랑은 정말 그정도로 무심한 사람이었다.

16쯤되서 성별을 궁금해했고 딸이라니까 좋아했다.정밀 초음파때 입체로 보여지는 아가의 얼굴을 보고 신기해했다.불러오는 배를 물끄러미 쳐다보긴 했지만 무언가 경외로움에 가득찬 눈빛은 아니었다.남들 다 찍는 만삭사진도 자신은 찍고싶지 않다하여 그래 찍지 말자 했다.그래서 난 첫아이 임신했을때도 불구하고 만삭사진이 없다.
친정과 가까운 병원을 다니라고 시댁에서 배려를 해주어서신랑이 같이 다닌 횟수도 그리 많지 않다.나 혼자 지하철도 타서 가보고 택시도 타서 가보고 했다.다행히 입덧이 없어서 무난한 임신기간이었다.
그리고 딸이 태어났다. 벌써 5개월전이다.엄마, 아빠가 된 것이다.

이 글을 쓰는 이유가 여기서부터다.그냥 이렇게 쓰면 되는데 우리 부부가 어떻게 살았는지 알려줘야결혼에 대해 어떻게 고민할 수 있는지 다각도로 볼 수 있을 것 같아서다.
대게 육아전쟁이라 하는데 나는 남편과의 전쟁이 시작됐다.우리 딸은 정말 순했고 잘 울지도 않았고 그저 사람품을 좋아하는 아기다.지금도 그렇다. 배고파도 보채기만 하고 2~3일에 한번꼴로 운다.물론 첫 아이의 엄마가 대게 그렇듯 난 너무 힘들었지만 그래도 다른 엄마들의이야기를 들어보면 우리 딸은 효녀 그 비슷한 범주였다.
남편은 육아에 일체 간섭이 없었다. 너무 간섭을 해도 피곤하겠지만무심함은 나를 너무 슬프게 만들었다.아이가 울면 우나보다. 보채면 보채나보다.제대로 안고 얼러주지 않았다.퇴근하고 집에 오면 그냥 누워있는 아기를 빤히 쳐다볼 뿐이었다.
뱃속 10개월 - 진통 9시간만에 얻은 우리의 아이인데신랑에겐 그저 아이일뿐인가 서운했다.
밤에 아이가 보채도 몰랐고 시시때때로 젖을 물려야 하는 이유도 몰랐다.그래도 괜찮았다.
하지만 내가 산후조리를 한 산모라는걸 몰랐다.나름 젊은 나이에 엄마가 되어서 회복이 빨라서 그랬는지 몰라도여전히 살림 일체에 손을 대지 않았다.힘들다 하면 징징거리지 말라했다. 다들 그렇게 산다고.우울하다 하면 왜 우울하다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손목이 아프다하면 애를 안지 않으면 되지 않아?어깨가 아프면 그냥 누워서 쉬어- 이 말뿐이었다.
난 처음에 우리 신랑이 완전체인줄 알았다.힘들어서 밥을 못했으니 햇반을 먹던가 시켜먹으라고하면 화를 냈다.집에서 애나 보면서 무슨 밥도 못하냐고 했다.내가 상상할 수 없던 신랑의 모습이었다.
정말 치열하게 싸웠다. 내 남편은 절대 이런 사람이 아닐거란 믿음이와르르 무너져버렸다. 고성이 오가고 물건이 날라가는 육탄전을 하다신랑은 나가곤 했다. 나가서 외박을 하고 들어왔다.그러다 풀어졌다. 아기를 안아주며 얼러주면 자연스레 화해가 되었다.

그러던 와중에 신랑이 회사를 그만두었다.용납할 수 없었지만 그러려니 했다.그래, 자기도 사람인데 회사 일이 힘들 수 있지.하지만 재취업의 의지는 보이지 않았다.난 일체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가끔 요새 일자리는 있어? 물어보곤 했지만언제나 무심한 신랑은 그렇지 뭐. 하는 대답뿐이었다.
결국 시어머님께 이 사실을 고했다.그리고 안 사실, 신랑의 그런 무심함으로 어머님도 엄청난 마음고생을 했다는걸.그런데 나한테는 그러지 않을거라고 생각하셨다고.
싸우다 지치다 욕이 오가고 화를 내고 결국엔 또 풀고그렇게 지속된 5개월. 난 도무지 신랑과의 관계를 개선할 의지가 없었다.결국 엄마에게 말씀드리니 엄마는 냉정하게 이혼을 하라고 했다.엄마도 쉬운 결정은 아니었겠지만 그래도 부족할 이유없는 내가그런 대접받으며 고생할 이유가 없었다.
신랑한테 이혼하자고 했다. 그만하자고.애는 내가 키울테니까 양육비만 적당히 계산해서 달라고.신랑은 웃기지 말라했다. 왜 이혼하냐고 그게 그렇게 쉽냐고.그럼 넌 왜그리 무심하냐고. 애 좀 봐주고 안아주고 살림도와주고 그게 어렵냐고.종내엔 집에서 놀면서 돈도 안버는 주제에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어올랐지만하지 않았다.
다행히 난 울고불고 질질 짜고 이런 편은 아니라 (아기가 태어났을때도 울지 않음)수분부족 현상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심신이 너무 지쳐있었다.
크리스마스 이브날, 여전히 같은 주제로 싸우다 내가 스스로 신랑의 짐을 쌌다.나가라고. 차라리 떨어져 살자고. 시댁에 가거나 좋아하는 목욕탕에 가거나사랑하는 PC방가서 평생 게임이나 하다 죽으라고. 짐을 싸서 내쫓았다.그리고 시어머님께 전화를 드려 이 사실을 낱낱이 고했다.저는 같이 못살겠다고. 이렇게 살다가 애기가 뭘 보고 배울지 모르겠다고.
어머님께서는 통사정을 하며 나를 위로해주셨다.미안하다. 아가야. 내가 부족해서 그 놈을 이렇게 키웠구나.그냥 신경쓰지마라. 나가서 굶어죽든 얼어죽든 신경쓰지마.걔는 정신 좀 차려봐야돼.

하루, 이틀이 지나다 힘들어서 친정에 가있다아기랑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새해를 보냈다.
그리고 신랑이 집에 들어와서 또 다시 아기를 안아주고 얼러주는 것으로우리는 자연스럽게 언제 그렇듯 또 화해를 했다.



구구절절 중간에 있던 일이 많이 생략을 했고 아기를 보면서 글을 쓰는 입장이라쓰지 못한 얘기, 쓸 수 없는 얘기 또 쓰고 싶은 이야기도 많다.하지만, 꼭 하고 싶은 이야기는 하나.
지금 당신의 남자친구 혹은 예비신랑의 모든 모습을 믿지 마라.이 모습이 영원할거라 생각도 하지마라.당신이 절대적으로 좋은 모습이 결혼한 순간 질려버릴 수도 있다.
나도 내 신랑의 무심한 말투 행동이 너무 좋았고 그 모습이 독이 될거란 생각을 못했다.
그리고 시월드. 난 다행히 고부갈등은 없지만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나도 시어머님께 서운한 것이 있지만 어머님도 나에게 그런 것이 있을거라 생각한다.다행히 살림, 육아 간섭하지 않으시고 우리 가족 구성원 그대로 계획하고 사는 것을인정해주시는 분이라 항상 감사한 마음이다.
하지만 무엇이 어떻다 해도 당신의 어머님은 당신의 아들이 최우선으로 먼저다.며느리에게 잔소리하지 않는 이유는 잔소리를 하면 당신의 아들이 피곤해질걸 알아서이다.요즘 세대에서는 이런 어머님을 현명한 어머님이라 통하기도 한단다.

그러니 당신 아들 흉을 보고싶어도 조금은 참는 것이 좋다.나는 이 선을 넘어버려서 아직도 후회중이다.하지만 남편의 오랜 백수생활에 대해서는 고민하고 의논한건 잘했다 생각한다.이 부분은 가족의 문제를 어른에게 조언을 구하고자 하는 각도로 다가서는 것이 더 좋다.

그리고 남편, 정말 남편은 '남의 편'이다.자기 와이프는 엄청난 육아에 고생 고생을 해도 안쓰럽다 생각하지 않지만막상 TV에 불우이웃이 나오면 불쌍하다 눈물을 흘리는게 남편이다.그 행동이 잘못된 건 아니지만 그 마음을 나에게 좀더 써주면 안될까하는 서운함도 있다.
남편을 남편으로만 인정하자. 결혼한 순간 인생은 끝이 아니다.새로운 인생의 시작이다. 난 지금도 결혼할까요? 라고 물어보는 친구, 동생에게는결혼을 하라고 조언한다. 그런데 단 하나의 마음가짐이 있다.평생 이 남자와 둘이서 행복하게 사랑하겠다는 마음이라면 버려라.내가 한 가정의 부인, 아내, 엄마로서 책임질 수 있는 그 많은 것들을 감내할 수 있다면그런 결연한 의지가 있다면 하라고 조언한다.
이 부분은 육아와 직결되기도 하는데 그러면 너무 글이 길어지니 패스.

여자는 대게 결혼을 하면 소꿉장난같은 살림살이를 하며 남편과 햇빛이 쏟아지는창가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커피를 마시는 그런 상상을 하곤 하는데그건 수많은 일상 중의 하나의 조각같은 단편적인 모습이다.그리고 오로지 여자만 상상하는 모습이다.

남자에게 결혼이란 책임이자 어쩌면 혹 같은 것이다.이제 나는 누구를 위해 돈을 벌어야 하고 누구를 위해 살아야 한다.깨알같은 로맨스, 이벤트는 좀 힘들 수 있다.물론 해주는 남편도 많지만 앞서 말했듯 하나의 조각같은 단편적인 모습이다.그런 남자는 그 모습을 연애할때도 그렇듯 와이프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다.자신이 힘들다는 걸 보여주지 않는건 남자의 그럴듯한 심리아닌가.
그러니, 당신이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10년후 미래, 자식계획, 노후대비, 여행횟수 이런걸 생각하지 말고그저 이 사람의 모습이 결혼해서 같이 살아도 감당할 수 있는 모습인지 꼭 다시한번 생각하길.감내할 수 있다면 감내하길.불평하지말고 불만갖지말고.. 당신의 남편도 상상 이상의 많은 감정을 감내하고 살 수 있을테니까.
그렇게 지지고볶고 싸워도 난 아직 남편을 사랑한다.남편도 나를 사랑한다. 그런데 우리 둘다 이제야 수많은 전쟁을 치룬 이제야그 사랑의 유형이 같아졌음을 깨달은 것 같다.절대 연인이 느끼는 달달한 사랑도 아니고 가족에게서만 느끼는 그런 사랑도 아니다.그 중간, 혹은 그것보다 더 거리가 먼 그런 사랑이다.
그러니 여자는 절대 지금의 사랑을 받고싶다면 결혼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길.


결혼 10년차이면 웬지 너무 남의 세상 얘기인 것 같아그래서 결혼 2년차 육아 5개월차 주부, 엄마 그리고 무심한 아내가 쓴 이야기.횡설수설해서 죄송하지만, 결론은 하나.결혼은 해라. 책임질 수 있다면.



베플
음|2014.01.06 20:51
결혼을 환상 으로만 생각했던 아가씨들은 꼭 알아둘만한 살아있는 이야기구요 전 친구들 대부분 결혼해서 정말 별이야기 다들어보고(님보다 더 심한얘기들도..) 34살에 결혼했는데... 결론은 ㅎㅎ 이론은 이론이구요 다알고 결혼했어도 현실에 막상 닥치면 그러니까 내 일이 되면 지혜롭게 헤쳐나가기가 어렵네요 하지만 결혼은 환상이아니고 현실이라는.. 지극히 와닿는 글입니다

베플b|2014.01.08 04:43
다른 판에서 본 글인데.. "결혼하고 싶다" 라는 마음이 드는 사람이 생기면, 이 사람과 나중에 결혼하면 얼마나 행복할까, 이 사람과의 알콩달콩한 결혼생활은 어떠할까를 꿈꾸지 말고.. 과연 이사람과 어렵고 힘든 시절을 함께 보낼 수 있는 지를 먼저 생각하라고. 좋은 시절을 함께 즐겁게 보내는 것은 세상 어떤 사람이라도 함께 할수 있다고. 세상에 늘 좋은 시절만 있는게 아니라고.. 고난과 역경 즉 어려운 시절이 닥쳐도 그 어려움을 함께 이겨 나갈 수 있는 인품, 인격을 지닌 사람을 선택해야 한다고.

베플난하늘서떨...|2014.01.06 20:06
진짜 동감. 연애는 꿈꾸는 거라면, 결혼은 치열한 현실임. 그 치열함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면 결혼, 그게 아니라면 연애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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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삭제된 글이네.. 예전에 인상깊게 봤었던 글인데 문득 다시 보고 올린다..

모바일로 처음 올리는건데 문제있으면 말좀해줘!
출처 : *여성시대* 차분한 20대들의 알흠다운 공간
글쓴이 : 보고싶은사람도없는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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