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어쩌구 저쩌구

참군인 韓信 장군

칠봉인 2015. 6. 19. 21:00

참군인 韓信 장군

 

 1922 함남 영흥~1996. 5. 6 서울./ 군인·관료.

청렴 강직한 성품과 투철한 군인정신으로 한평생 군 발전에 헌신해

후배들의 존경을 받아온 참 군인의 표상이었다.

 

한신은 일본 주오대학[中央大學] 법학과를 졸업하고,

1946년 12월 육군사관학교 2기로 임관했다.

 

1950년 6·25전쟁이 일어나자 7사단 9연대장으로 포천 전투에서 전공을 세웠고,

1950년 8월 수도사단 1연대장으로 낙동강 교두보 확보를 위한

경상북도 안강 전투에서 승리를 이끌어냈다.

 

북진의 발판이 된 이때의 전공으로 군의 최고 영예인 태극무공훈장을 받았다.

그는 전황이 불리하던 낙동강 방어 전투에서 침착한 부대 지휘로 승리를 거두어,

방어에는 한신을 당할 인물이 없다는 평을 듣는 등 6·25전쟁 동안

야전지휘관으로서 용맹을 떨쳤다.

 

5·16군사정변 당시 모의과정에는 참여하지 않았으나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부의장의 권유로 국가재건최고회의 최고의원을 맡았다.

 

이 후 군정 기간에 내무부장관과 감사원장을 지냈고, 1

964년 군에 복귀해 군단장·군사령관 등을 역임했다.

1967년에는 전 전선에 대전차방벽 설치를 지시하기도 했다.

 

그는 수도사단장·훈련소장·6군단장·전투병과 사령관 등으로 재임했을 때

부대별로 간부교육대를 만들고 혹독한 교육훈련을 시켜,

'한신대학'이란 말이 생겨나기도 했다.

 

군부대의 부패가 만연하던 시절 철저한 부대 급식관리로

한신 장군의 부대에서는 배를 곯지 않는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청렴결백했다.

합동참모회의 의장을 끝으로 1975년 대장으로 예편한 뒤

1976년 아세아자동차 회장, 1977~85년 대한중석사장 등을 지냈다.

태극무공훈장, 보국훈장 통일장 등을 받았으며,

저서로는 회고록 〈신념의 삶 속에서〉가 있다.

 

한경환 동지의 글을 보고 한신 장군님께서 1996년 5월 홀연히

리의 곁을 떠나시던 그날이 생각나서 아래에 글을 소개합니다.

 

이것은 재향군인회 홍보실 재직 시, 한신 장군 弔詞(弔辭) 의뢰를 받고

( 동아일보 /황유성 국방부 출입 기자로부터~) 급히 작성

동아일보에 전달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일련의 일에 얽힌 에피소드는 소설 같은 정말 재미있는 얘기도 있습니다만..

뒤로하고....내용만 소개합니다.

다음날(5월9일) 장군을 추모하는 글을 보고 문화일보 시설에도 일부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 아   래 -

 

 

 “겨레가슴에 참 軍人 像 남기시고...”

 

            

                - 故 韓信장군 영전에 - 

 

겨레의 가슴 속에 “불멸의 군인 상”을 남기시고 온 생애를 국가와 군의 발전에

다 바치신 한신장군님의 영전에 삼가 머리 숙여 명복을 비옵니다.

 

이 나라 이 겨레의 큰 기둥이고 참 군인의 표상이셨던 존경하는 장군님.

이제 장군님의 존안을 정녕 뵈올 길이 없습니까.

이제는 장군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는 것입니까.

장군님이 그토록 갈망하시던 조국통일의 그날을 못 보시고 이토록 홀연히 떠나십니까.

 

아직도 나라와 겨레를 위해 하실 일이 태산 같은데

그리고 장군께서 혼신의 정열을 불태우신 군의 발전상과 장한 모습을

더 지켜보시지도 못한 채 이렇게 유명(幽明)을 달리하시니 애통한 마음 가눌 길이 없습니다.

장군께서는 군에 재직 시 책임과 용기, 결단력과 추진력, 확고한 민족의식과 국가관,

민주적인 신념, 통일에 대한 의지, 군인으로서의 덕목 등

그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교훈을 주셨습니다.

 

6.25 자유 수호 전쟁당시에는 백척간두의 조국과 운명을 같이하시면서

그 처절했던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도 불사조처럼 전선을 누비면서

야전지휘관으로서의 용맹을 보여주셨습니다.

특히 한강탈환의 혁혁한 공로 , 그리고 낙동강 방어선 돌파와

반격은 후세에 길이길이 빛날 것입니다.

67년 6월 전체전선에서 대전차 방벽을 설치하도록 하신 것은

오늘날까지도 큰 업적중의 하나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장군께서는 야전군 사령관을 거쳐 합참의장을 지내시기 까지

군 발전에 실로 지대한 업적을 남기셨고 국가기간산업육성에 크게 기여하셨습니다.

상 우국충정의 일념으로 국익추구와 국가안보를 뒷받침해 주셨으며,

늘 크고 넓으신 도량과 포용력을 발휘하시어 향군회원들의 친화단결을

도모하심으로써 향군발전에도 크게 이바지하셨습니다.

청렴과 강직의 상징이셨던 존경하는 장군님. 늘 자랑스럽게 들려주시던 글귀가 생각납니다.

 

“사업과 문장은 몸과 더불어 사라지되 정신은 만고에 새롭도다.

공명과 부귀는 세월을 따라 바뀌건만 기절(氣節)은 천년이 하루 같다.

군자는 진실로 저것으로 이것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어려울 때일수록 정론과 대도를 택하신 장군님의 진정한 용기에 새삼스레 존경을 표합니다.

장군님의 자랑스런 후배인 국군장병과 5백34만 향군회원은 장군님의 높은 뜻을 이어받아

못다 이루신 조국의 통일과 선진화를 기필코 달성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부디 가시는 길 평안하시고 영원히 안식하시길 간절히 빕니다.

 

 1996년 5월8일 < 대한민국 재향군인회장>

국군들 군기 확립은 한신 대장(1군 사령관 재임시) 식으로 해야한다.

 

                                                                                                                                        1996년5월8일

 

 

'기타 > 어쩌구 저쩌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호기심과 건강이야기  (0) 2015.06.20
위대한 대구시  (0) 2015.06.19
조선 선비의 號를 보면 인생이 보인다   (0) 2015.06.18
메리스 질병정보  (0) 2015.06.18
내 인생에서 가장 잘 나온 내 사진  (0) 2015.0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