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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문화유적

칠봉인 2010. 3. 10. 12:29

 

세종대왕자태실

세종대왕자태실 전경

  • 지정별 : 사적 444호
  • 위치 : 월항면 인촌리 산8
  • 규모 : 19기(基)
  • 재료 : 화강암
  • 연대 : 조선시대
  • 지정일 : 2003년 3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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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촌리 선석산(禪石山, 742.4m) 아래의 태봉(胎峰) 정상에 소재하는 세종대왕자태실에는 세종대왕의 적서(嫡庶) 18왕자 중 큰 아들인 문종(文宗)을 제외한 17왕자의 태실과 원손(元孫)인 단종(端宗)의 태실 등 모두 19기가 있으며, 이곳은 세종 20년(1438)에서 24년(1442) 사이에 조성되었다.

    전체 19기중 14기는 조성당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나 세조의 왕위찬탈에 반대한 다섯 왕자의 태실의 경우 방형의 연엽대석(蓮葉臺石)을 제외한 석물이 파괴되어 남아 있지 않으며, 세조 태실은 즉위한 이후 특별히 귀부를 마련하여 가봉비(加封碑)를 태실비 앞에 세워두었다. 1977년에 태실을 정비하던 중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분청인화문개(粉靑印花紋蓋) 2점(경북대학교박물관, 국립대구박물관 각 1점 소장), 분청인화문완(粉靑印花紋) 1점(국립대구박물관 소장), 평저호(平底壺) 1점(국립대구박물관 소장), 지석(誌石) 3점(국립경주박물관소장) 등이 있다.

    재질은 화강암이고, 형식·구조는 연엽형의 개첨석(蓋石)(저경(底徑) 102㎝,고(高) 42㎝), 구형(求形)의 중동석(中童石)(고(高) 26㎝, 하경(下徑) 80㎝, 상경(上徑) 75㎝), 방형(方形)의 연엽대석(蓮葉臺石)(변(邊) 125.5㎝. 고(高) 60㎝), 석함(石函)으로 이루어져 있다. 태실비문에 ‘ㅇㅇ(대)군명태장 황명연호연월일입석(ㅇㅇ(大)君名胎藏皇明年號年月日立石)’이라고 음각되어 있으며, 세조 가봉비 비문은 멸실(『실록』에 비문 수록됨)되었다.

    세종대왕자태실은 우리나라에서 왕자태실이 완전하게 군집을 이룬 유일한 형태일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태실의 초기 형태연구에 중요한 자료라는 점, 그리고 고려에서 조선으로의 왕조교체와 함께 왕실의 태실 조성방식의 변화 양상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 세종대왕자태실 전경 사진들

  • 관광코스
    성주버스정류소 → 월항면 → 인촌리 (선석사 30분소요, 1일2회 운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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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주 금봉리 석조비로자나불좌상

    성주 금봉리 석조비로자나불 좌상 

    성주 금봉리 석조비로자나불좌상

      • 지정별 : 보물 제 1121호
      • 위치 : 가천면 금봉리 산 11
      • 규모 : 1구(軀)
      • 연대 : 신라 하대
      • 지정일 : 1992년 1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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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세내용

      가천면 학산마을 뒤편에 안치된 이 불상(佛像)은 대좌(臺座)와 광배(光背)를 모두 갖추고 있는 신라하대(新羅下代)의 석조비로자나불상이다.

      나발(螺髮)의 머리칼, 둥글고 단정한 얼굴, 짧은 귀와 작은 입, 단아(端雅)한 체구 지권인(智拳印)을 한 수인(手印), 무릎을 덮어내린 통견의(通肩衣) 등은 9세기 후반기의 지권인 불상 양식을 따르고 있다. 대좌는 상ㆍ중ㆍ하대로 이루어진 8각원당대좌(八角圓堂臺座)로서 사자와 구름 무늬를 아름답게 새겼고 고복석(鼓腹石)의 중대나 앙ㆍ복련의 상ㆍ하대석은 불상과 함께 동화사석조비로자나불좌상과 친연성이 깊은 것으로 판단된다.

      주형거신광배(舟形擧身光背) 또한 연꽃무늬, 불꽃무늬, 화불 등을 세밀하게 조각하였다. 이 불상은 동화사 비로자나불상 계통을 이어받은 9세기 후반기의 특징을 보여 주고 있는 매우 중요한 불상이다.
    • 관광코스
      성주버스정류소 → 가천면 방향 → 금봉리 (승용차 25분 소요)

     

    성주성산동고분군

      • 성주 성산동 고분군 전경
        • 성주 성산동 고분군
        • 지정별 : 사적 제 86호
        • 위치 : 성주읍 성산리 산 61번지 일원
        • 규모 : 129기(基)
        • 재료 : 석재, 흙
        • 연대 : 가야시대
        • 지정일 : 1963년 1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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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세내용
      성산(해발 389.2m)의 줄기를 따라 크고 작은 무덤들이 밀집되어 분포하고 있는 성산동 고분군은 성산가야(星山伽倻)수장층의 분묘로 추정되며, 현재까지 129기가 확인되어 정비 및 복원을 하고 있다.

      고분군은 일제강점기에 1·2·6호분 및「대분(大墳)」·「팔도분(八桃墳)」이 발굴조사 된 바 있으나 조사의 경위나 결과에 대한 보고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1986년 계명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승왜마을 남쪽 능선에 분포하는 대형봉토분 5기가 발굴 조사되었다.

      지금까지 조사되어 밝혀진 무덤의 내부구조를 보면 매장주체부인 석실(石室)의 구조가 할석으로 축조한 할석식(割石式)과 대형판석을 주로 사용한 판석식(板石式)의 수혈식석실분(竪穴式石室墳)으로 되어 있다.

      고분의 묘장(墓葬)형태는 1봉토 내에 2인 이상을 매장한 순장(殉葬)에 의한 다장묘(多葬墓)로서 별도의 순장곽(殉葬槨)을 설치하거나 부곽(副槨)의 한구석에 순장한 형태이며, 주실(主室)인 석실에는 크기에 비해 유물이 빈약하고 부곽에는 넘칠 정도로 많은 유물을 부장하고 있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일제강점기의 발굴조사에서 환두대도(環頭大刀), 금제이식(金製耳飾), 은제과대(銀製帶), 관식(冠飾)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으며, 1986년 발굴조사에서대호(大壺)를 비롯한 유개장경호(有蓋長頸壺), 단경호(短頸壺), 유개고배(有蓋高杯) 등 토기류와 은제행엽(銀製杏葉), 재갈, 교구( 具) 등의 마구류(馬具類)를 비롯한 2,072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성주 성산리 고분군에서 출토된 금귀걸이와 토기등의 사진성주 성산리 고분군 전경 사진들
    • 인근관광지
      성밖숲, 성주향교, 동방사지 7층석탑
    • 관광코스
      성주버스정류소 → 성산리 방향 (승용차 5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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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주경산리성밖숲

      • 성주 경산리 성밖숲
        • 성주 경산리 성밖숲
        • 지정별 : 천연기념물 제 403호
        • 위치 : 성주읍 경산리 446-1 외 18필
        • 수량 : 59주
        • 종류 : 왕버들, 수령 300~500년
        • 지정일 : 1999년 4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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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세내용
      성주 경산리의 성(城)밖숲은 풍수지리사상에 따라 성주읍성(星州邑城) 밖에 조성한 숲으로 300~500년생의 왕버들 57주(株)가 자라고 있다. 『경산지(京山志)』및『성산지(星山誌)』의 기록에 의하면 성밖마을의 아이들이 이유 없이 죽는 등 여러 흉사(凶事)가 이어지자 이를 방지하기 위하여 숲을 조성하였다고 전한다. 마을의 풍치(風致)와 보호를 위한 선조의 전통적 자연관을 느낄 수 있는 숲이다. 성밖숲은 노거수 왕버들로만 구성된 단순림(單純林)으로 학술적 가치가 있다. 그뿐만 아니라 마을의 풍수지리 및 역사·문화·신앙에 따라 조성되어 마을 사람들의 사회적 활동과 토착적인 정신문화의 재현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전통적인 마을 비보림(裨補林)으로 향토성과 역사성을 가진 숲이다. 현재 성밖숲은 각종 행사를 하는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주민의 산책 공간, 생활체육 활동 공간 등 다양한 주민생활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성주 경산리 성밖숲의 버들나무
    • 인근관광지
      동방사지 7층석탑, 성주향교, 성주 성산동 고분군
    • 관광코스
      성주버스정류소 → 우회도로 (승용차 5분 소요)

    유형문화재

    동강 김우옹 신도비

    • 동강 김우옹 신도비 전경
      • 東岡 金宇옹 神道碑
      • 구분 : 도지정 유형문화재 제 260호
      • 위치 : 경북 성주군 대가면 옥화리 산 32-1
      • 규모 : 1基
      • 재질 : 석재
      • 시대 : 조선시대
      • 지정일 : 1991년 5월 14일

    • 상세내용

  • 이 비는 동강(東岡) 김우옹(金宇옹, 1540~1603)의 학문적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경종 3년(1723)에 건립된 신도비(神道碑)이다.
    귀부(龜趺)·이수( 首)는 화강암으로 모두 완전한 형태이고, 비신(碑身)은 오석(烏石)으로 되어 있다. 
    전체 높이는 404㎝이고 비신의 높이 216㎝, 귀부의 높이 88㎝, 이수의 높이 100㎝, 두께 28㎝이다. 
    비문은 해서체(楷書體)로 되어 있으며 갈암(葛庵) 이현일(李玄逸)이 짓고 미수(眉) 허목(許穆)의 글을 집자(集字)하였다. 
    앞면과 뒷면 각 27행, 측면 7행으로 새겨져 있다.

    김우옹은 성주 칠봉리(七峰里-사도실) 출신으로 자는 숙부(肅夫)이며 호는 동강이다. 
    어려서부터 한강(寒岡) 정구(鄭逑)와 함께 영남학파의 양대 산맥인 남명(南冥) 조식(曺植)과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문하에 출입하며 정통 성리학(性理學)의 맥을 이어받았다. 
    1552년(명종 7)에 진사(進士)가 되고, 1567년(선조 즉위년) 별시문과(別試文科)에 급제하여 지성과 행동을 겸비한 깨어있는 선비들이 주로 임용되던 청요직(淸要職)을 두루 거쳐 직제학(直提學)·대사간(大司諫)·대사헌(大司憲)·참판(參判) 등을 역임했다.

    사후(死後)에는 이조판서(吏曹判書)에 추증되었고 시호(諡號)는 문정(文貞)이며, 청천서원(晴川書院)에 배향되었다. 동강은 한강과 함께 성주권(星州圈)의 양강(兩岡)으로서 정치적·학문적으로 많은 업적을 남겼으며, 『동강집(東岡集)』, 『속자치통감강목(續資治通鑑綱目)』과 함께『일기(日記)』등 많은 시문(詩文)을 저술하였다.
  • 관광코스
    성주버스정류소 → 대가초교 → 옥화리(승용차 15분소요)
  • 동방사지 7층 석탑

    • 동방사지7층석탑 전경
      • 東方寺址 7層 石塔
      • 구분 : 도지정 유형문화재 제 60호
      • 위치 : 경북 성주군 성주읍 예산리 269-10
      • 규모 : 1基
      • 재질 : 석재(화강암)
      • 시대 : 고려시대
      • 지정일 : 1974년 12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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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세내용
  • 이 탑은 성주 읍내에서 왜관으로 가는 33번 국도를 따라 약 1km떨어진 도로변에 위치하고 있으며, 신라 8세기말 애장왕 때에 건립된 동방사 경내에 있었던 석탑으로 탑의 양식으로 보아 고려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동방사는 임진왜란 때에 전소되었으며, 석탑의 옥개석은 훼손되고 2층탑신까지는 양측 우주와 중앙부 탱주가 있으며, 3층 탑신부터는 우주만 남아 있고, 1층, 2층, 3층 옥개석 4귀에는 연꽃무늬가 조각되어 있는 것이 특색이라 하겠다.
    이 동방사는 절의 소유지가 수십 리에 이르고 기거하는 승려가 수백 명으로 대사찰임을 알 수 있으며, 불교 전성기인 통일신라 후기에 행정 도심지에 대가람을 건립하였다고 생각된다.

    성주는 지형이 소가 누워서 별을 바라보는 상이며 동남으로 성산, 서는 풍두산, 북으로는 달암티(달암재) 등으로 둘러싸여 있고, 이천(伊川)은 성주를 돌아 동쪽으로 흐르고 있어, 성주의 지기(地氣)가 냇물과 같이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하여 세워진 탑이라 하여, 이 탑을 지기탑(地氣塔)이라고도 한다. 이는 당시 불교가 대승불교 보다 소승불교가 성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 관광코스
    성주버스정류소 → 성주~왜관간(승용차 3분소요)
  • 법수사지 3층석탑

    • 법수사지3층석탑 전경
      • 法水寺址 3層 石塔
      • 구분 : 도지정 유형문화재 제 86호
      • 위치 : 경북 성주군 수륜면 백운리 1214
      • 규모 : 1基
      • 재질 : 석재
      • 시대 : 신라후기
      • 지정일 : 1975년 12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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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세내용
    이 석탑은 신라 애장왕(哀莊王) 3년(802)에 창건된 사찰인 법수사에 조성된 석탑으로, 사찰은 폐사(廢寺)되고 석탑과 금당(金堂)터의 거대한 석축, 당간지주만 남아있다.

    탑은 6m높이로 2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통일신라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복발(覆鉢) 위의 상륜(相輪)은 분실되었지만 그 외는 거의 완전하게 보존되어 있다.
    아래층 기단의 네 면에는 3구씩의 안상(眼象)을 조각하였고, 위층 기단은 각 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다.
    탑신은 몸돌의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새겼다.
    옥개석(屋蓋石)은 밑면의 받침이 5단이며, 네 귀퉁이가 위로 들려 있다.
    꼭대기에는 작고 네모진 받침 위로 엎은 그릇모양의 장식만이 남아있다.

    사찰이 창건된 시기나 기단이 2층인 점, 2층 기단의 가운데 기둥이 1개인 것으로 보아 통일신라(統一新羅) 후기에 세운 것으로 보인다.
  • 관광코스
    성주버스정류소 → 수륜중교 → 백운리(승용차 35분소요)
  • 법수사지당간지주

    • 법수사지당간지주 전경
      • 法水寺址幢竿支柱
      • 구분 : 도지정 유형문화재 제 87호
      • 위치 : 경북 성주군 수륜면 백운리 1316
      • 규모 : 1基
      • 재질 : 석재
      • 시대 : 신라후기
      • 지정일 : 1975년 12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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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세내용
  • 이 당간지주는 신라 애장왕(哀莊王) 3년(802)에 창건된 사찰인 법수사의 당간지주로 폐사지의 석축 아래쪽으로 100m 가량 떨어진 곳에 있다.
    법수사 입구에 세워져 있던 것이나 사찰 창건 때 같이 세워진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현재까지 양 지주(支柱)는 거의 손상 없이 잘 보존되어 왔는데 지주가 기울어 간격이 다소 벌어져 있다.
    양 지주는 높이 370㎝, 폭 74㎝, 두께 51㎝ 규모의 장방형(長方形) 석주(石柱)이다.

    지주의 안쪽 면은 장식 없이 수직으로 깎아 다듬었고, 상부에는 당구(幢口)를 마련했으며 바깥 면은 올라가면서 3단으로 구분하여 체감하도록 했고 상단은 크게 호형(弧形)을 그리면서 마감했다.
    양 지주 사이에 당대석(幢臺石)이 남아있다.
    지주 밑에는 간(竿)을 받치기 위한 폭 82㎝의 원추형 간대석(竿臺石)이 남아 있으며 간대석 중앙에는 지름 20㎝, 깊이 8㎝의 구멍을 내고 구멍 주위에는 연화문(蓮花紋)을 둘렀다.

    법수사지당간지주는 전체적으로 우아하고 간결·단아한 지주로 당간지주 계보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 관광코스
    성주버스정류소 → 수륜중교 → 백운리(승용차 35분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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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석사 괘불탱
      • 선석사 괘불탱
        • 禪石寺 掛佛幀
        • 구분 : 도지정 유형문화재 제 357호
        • 위치 : 경북 성주군 월항면 인촌리 217
        • 재질 : 견본채색
        • 시대 : 조선시대
        • 지정일 : 2004년 10월 14일
        • 수량 : 1폭
        • 규격 : 464cm×67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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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세내용
      이 괘불(掛佛)은 1702년(숙종 28)에 화원(畵員) 탁휘(卓輝)를 비롯한 법해(法海), 설잠(雪岑), 성징(性澄) 등 4명의 스님에 의해 조성된 것으로 그림의 내용은 화기(畵記)에 적힌 ‘영산회도(靈山會圖)’란 이름대로 석가모니불이 영축산(靈鷲山)에서 설법하는 모습이다. 
      석가모니불은 오른 팔을 어깨까지 들어 올리고 손에는 분홍빛 연꽃이 핀 가지를 잡고 있다. 
      석가모니불이 연꽃을 들어 보임은‘염화미소(拈花微笑)’를 상징한다. 
      선가(禪家)에서 염화미소는 문자로 세울 수 없었던 세존의 가르침이 가섭에게 이어짐을 상징하는 것으로 가섭만이 그 뜻을 알고 미소를 지었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괘불에는 석가모니불 좌우에 있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정면을 바라보고, 아난·수보리존자와 가섭·사리불존자가 배치되어 있는데 다른 경우와 달리제자 2인이 더 첨가되어 있다. 
      전반적으로 상호가 원만하고 체격도 중후하며 선 자세도 아주 편안한 모습으로 되어 있다.

      조선시대 불교회화의 일면을 엿볼 수 있는 우수작에 속한다고 할 수 있으며, 이와 같은 도상(圖像)은 17~18세기에 많이 제작되었던 양식을 따르고 있지만, 비교적 빠른 시기에 속한다. 
      조성과 관계된 화기가 상세할 뿐 아니라 괘불궤(掛佛櫃)에 대한 기록도 있어 조선시대 괘불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고 하겠다.
    • 관광코스
      성주버스정류소 → 초전~김천간 → 인촌리(승용차 25분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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