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객은 뭐해용?/주변에 가볼만한곳

도지정문화재

칠봉인 2010. 3. 11. 20:57
         
 
    성주 백세각
    • 성주백세각 전경
      • 星州 百世閣
      • 구분 : 도지정 유형문화재 제 163호
      • 위치 : 경북 성주군 초전면 고산리 542
      • 규모 : 1棟
      • 재질 : 목재
      • 시대 : 조선시대
      • 지정일 : 1982년 8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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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지  일반영상  지도
  • 상세내용
    이 가옥은 조선전기 문신이었던 야계(倻溪) 송희규(宋希奎, 1494~1558)가 지은 것으로 명종 6년(1551)에 짓기 시작하여 이듬해 완공한 건물이다.
    송희규가 사헌부(司憲府) 집의(執義)로 있을 당시 세도가였던 윤원형(尹元衡)과 영의정 이기(李)의 행패를 탄핵하다가 오히려 역적으로 몰려 전라도 고산(高山, 현재의 완주)에서 5년간 귀양살이를 하고 고향에 돌아와서 백세각을 지었다.
    이곳의 마을 이름이 원래는 고산(孤山)이었는데 귀양살이 하고 고향에 돌아와 마을 이름을 고산(高山)으로 고쳐 불렀다 한다.

    규모는 정면 7칸·측면 7칸이고 평면은 ‘口’자형이며 지붕은 맞배지붕이다.
    쇠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구멍을 뚫어 싸리로 엮은 점과 대패를 쓰지 않고 손도끼(자귀)로만 다듬어 만든 건축이라는 점이 특이하다.

    1919년 3·1운동 당시 공산(恭山) 송준필(宋浚弼)을 위시한 그 문인들이 성주장날이 서는 날에 배포할 태극기를 이 건물에서 제작·보관했다고 한다.
    또한 경북 유림단 파리장서 사건(1919년)의 모의장소로 사용하였으며, 유림의 궐기를 독려하는 통고국내문(通告國內文)을 제작·배포한 곳으로서 독립운동과 관련이 깊은 건물이다.
  • 관광코스
    성주버스정류소 → 초전면 → 고산리(승용차 20분소요)

 

 

유형문화재

  • 성주 보월동 3층석탑

    • 성주보월동3층 석탑 전경
      • 星州 甫月洞 3層石塔
      • 구분 : 도지정 유형문화재 제 119호
      • 위치 : 경북 성주군 수륜면 보월리 852
      • 규모 : 1基
      • 재질 : 석재
      • 시대 : 통일신라
      • 지정일 : 1979년 1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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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지  일반영상  입체사진  지도
  • 상세내용
    이 석탑은 수륜면 보월리 탑안(절골) 마을에 있다.
    원래 사찰이 있었던 것으로 여겨지는데 사찰이름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1979년 12월 복원당시 틈이 벌어지고 모서리가 깨진 석탑의 기단 부분만이 본자리에 있었으며 그 밖의 부분은 주변 농지에 묻혀 있었거나 사방에 흩어져 있었다.
    1979년에 흩어져 있던 부분을 모아 2층의 기단을 마련하고, 그 위로 3층의 탑신(塔身)을 쌓아 복원했다.

    탑의 규모는 높이가 520㎝이며 지대석(地臺石)의 한변의 길이가 440㎝이다.
    이중기단에 3층의 탑신부(塔身部)를 조성하였는데, 상층기단에 비해 하층기단은 다소 낮은 편이다.
    탑의 상하기단의 면석(面石)의 각면에는, 우주(隅柱)와 탱주(撑柱) 2개씩을 모각(模刻)하여 3구(區)로 구분하고, 하기단 갑석(甲石)은 고각형(高閣形)의 2단괴임을 두었다.
    상륜(相輪)은 없어졌으며, 전체적으로 정제된 규격과 꾸밈이 단조로운 등 양식과 조각기법 등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에 세웠던 것으로 보인다.
  • 관광코스
    성주버스정류소 → 수륜중고 → 보월리(승용차 40분소요)

 

 

성주 성산관

  • 성주 성산관 전경
    • 星州 星山館
    • 구분 : 도지정 유형문화재 제 143호
    • 위치 : 경북 성주군 성주읍 경산리 286
    • 규모 : 1棟
    • 재질 : 목재
    • 시대 : 조선시대
    • 지정일 : 1980년 12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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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지  일반영상  지도
  • 상세내용
    이 건물은 조선시대 성주목 관아(官衙)건물의 하나이다.
    처음 건립된 성주목의 관아는 임진왜란 때 전소되었으며, 선조 41년(1608)에 목사 송영구(宋英)가 지금의 성주초등학교 동북쪽에 사시헌(四時軒, 목사의 관사)과 함께 건립하였다.
    효종 8년(1657)에 목사 최계훈(崔繼勳)이 지금의 군청자리로 이건했고 여러 차례에 걸쳐 개수(改修)한 기록이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대부분의 관아건물은 없어지고 현재의 건물만이 남았으며, 1994년 현 군청사 신축공사로 인해 군청사 뒤편 현재의 자리로 이건하였다.

    대청에는 성산관(星山館) 현판을 편액하고, 대청 안쪽으로 절제아문(節制衙門), 사시헌(四時軒) 현판을 편액 하였다.
    정면 5칸·측면 3칸의 팔작기와 건물로 오른쪽에 2칸의 온돌방이 있고, 나머지는 모두 우물마루를 깔았다.
    이 건물의 정면은 주춧돌을 높게 하여 기둥모양으로 나열시켰고 마루바닥이 지면에서높이 올라와 있는 것이 특색이다.
    흔히 고상식(高床式)이라고 불리는 이런 구조는 마루를 주로 이용하는 남방건축에서 지면의 습기를 피하기 위해 짓는 방법으로 상주의 양진당(養眞堂)에도 같은 구조가 남아 있어 서로 비교가 된다.
  • 관광코스
    성주버스정류소 → 경산리(승용차 3분소요)
  • 유형문화재

    • 성주 예산리 만산댁

      • 성주 예산리 만산댁 전경
        • 星州 禮山里 晩山宅
        • 구분 : 도지정 유형문화재 제 389호
        • 위치 : 경북 성주군 성주읍 예산리 483
        • 규모 : 4棟
        • 재질 : 목재
        • 시대 : 근대
        • 지정일 : 2006년 9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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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지 
    • 상세내용
      이 가옥은 1938년에 건립한 가옥으로 예산1리 마을회관 맞은편에 자리 잡고 있다. 
      가옥의 건립자인 도문환은 성주 지역의 선각적인 유림으로 계몽운동에 앞장 선 만산(晩山) 도갑모(都甲模)의 아들로서, 그 자신 1920년대 성주지역의 청년운동과 신간회운동 등 여러 사회운동에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등 지역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인물이다.

      가옥의 배치는 서향(西向)한 대문채를 들어서면 바로 사랑채의 좌측면이 나타는데 사랑채 뒤에는 안마당을 사이에 두고 ㄱ자형의 안채를 배치하여 전체적으로는 튼 ㅁ자형의 배치 형태를 취하고 있다. 
      건물의 바닥이나 창호 등에서 부분적으로 일본식의 요소가 들어 있기는 하나 조선인 건축주가 직접 설계하고 조선인 목수가 시공을 한 절충식 근대 한옥이라는 점이 주목된다. 
      또한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건립 주체가 된 2층 가옥이나 전통 한옥의 일부에 부분적으로2층을 증축한 사례는 간혹 있긴 하나, 이 가옥은 설계 당초부터 2층으로 계획하였다는 점 등이 돋보이며, 한옥 형태의 2층 가옥으로는 경상북도에서 유일한사례로 한국 주거사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다.
    • 관광코스
      성주버스정류소 → 초천~김천간 → 예산리(승용차 5분소요)

     

    유형문화재

    • 성주문묘 명륜당

      • 성주문묘 명륜당 전경
        • 星州文廟 明倫堂
        • 구분 : 도지정 유형문화재 제 165호
        • 위치 : 경북 성주군 성주읍 예산리 131
        • 규모 : 1棟
        • 재질 : 목재
        • 시대 : 조선시대
        • 지정일 : 1982년 12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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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지  일반영상  입체사진  지도
    • 상세내용
      성주향교는 성주읍 예산리 교촌(校村)마을 동쪽산 밑에 있는 조선시대 지방교육기관으로 태조 7년(1398)에 건립되었으며, 좌묘우학(左廟右學)의 보기 드문 배치법을 취하고 있다.
      향교의 건물은 대성전(大成殿), 동·서무(東·西), 명륜당(明倫堂), 입덕문(入德門), 수복사(守僕舍), 고사(庫舍)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동·서재(東·西齋) 등 일부 건물은 소실되고 남아 있지 않다.

      명륜당(明倫堂)은 향교 본래의 기능인 교육을 위한 강학(講學) 공간의 중심 건물로, 좌우에 대칭으로 배치되었던 동·서재와 더불어 유생들의 생활이 이루어졌던 실질적인 공간이다.
      명륜당의 구조는 정면 5칸, 측면 3칸의 몰익공 양식의 5량가구(五樑架構)인 맞배지붕으로, 중앙에 대청마루를 두고 좌우에 온돌방을 배치하였는데 건물을 짜 맞춘 기법이나 창호를 만든 수법들이 오래된 양식을 간직하고 있어 주목받는 건물이다.
      명륜당 좌우에 유생들의 기숙사 구실을 한 동재와 서재는 한국전쟁 때 소실되어 지금은 남아있지 않다. 이곳에는 허종항(許從恒)·김안국(金安國)의 시(詩)와 김종직(金宗直)의『부자묘부(夫子廟賦)』가 걸려 있다.

      전체적으로 타 향교에 비해 큰 규모에 속하는 건물로 조선중기 양식으로 보이는 요소들이 많이 남아 있다.
    • 관광코스
      성주버스정류소 → 예산리(승용차 5분소요)

     

     

    유형문화재

    • 성주향교 대성전

      • 성주향교 대성전 내부
        • 星州鄕校 大成殿
        • 구분 : 도지정 유형문화재 제 114호
        • 위치 : 경북 성주군 성주읍 예산리 131
        • 규모 : 1棟
        • 재질 : 목재
        • 시대 : 조선시대
        • 지정일 : 1985년 8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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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지  일반영상  입체사진  지도
    • 상세내용
      성주향교 대성전은 향교의 정신적지주이며 제향(祭享) 공간의 중심건물로서 공자를 위시한 중국 6현과 동방 18현의 위패(位牌)를 모시고, 매년 봄·가을로 석전제(釋奠祭)를 봉행하고 있다.
      기록에 의하면 성주향교는 원래 소상(塑像)을 모셨었는데, 조선 초기 향교의 노비가 개성 성균관에 다녀와 흙으로 빚어 놓았던 것이 세월이 오래되어 퇴락되자 목주(木主)로 바꿨다고 한다.

      대성전의 구조는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기둥머리에는 다포양식에 맞배지붕을 얹었는데, 내외 2출목의 장엄한 구성을 보여주고 있다.
      향교 대성전 건물 가운데 다포로 되어 있는 것은 경상북도 지역 내에서 성주향교와 대구향교 뿐이며, 다른 지역에서는 서울의 문묘와 전라북도 익산향교 등 극히 일부에서만 볼 수 있어 여타의 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경우이다.
      초석과 기둥등 주요 부재의 치목수법과 공포의 구성양식 등은 조선중기의 건축적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지붕형태는 원래 팔작지붕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내부에 놓인 제기(祭器)는 조선 후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제작수법과문양의 아름다움이 매우 뛰어나다.
    • 관광코스
      성주버스정류소 → 예산리(승용차 5분소요)
    • 유형문화재

      • 속자치통감강목판목

        • 속자치통감강목판목
          • 續自治通鑑綱目板木
          • 구분 : 도지정 유형문화재 제 259호
          • 위치 : 경북 성주군 대가면 칠봉리 525
          • 규모 : 673매
          • 재질 : 배나무
          • 지정일 : 1991년 5월 14일
          • 편찬자 : 동강 김우옹(東岡 金宇? 1540~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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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지  지도
      • 상세내용
        이 판목(板木)은 근래 복원된 청천서원(晴川書院) 장판각에 보관되어있는데, 동강 김우옹(東岡 金宇? 1540~1603)이 기축옥사(己丑獄死,1589)로 인해 함경도 회령(會寧)에 유배(1589~1592)되었을 때 저술한 글을 판각(板刻)한 것이다.

        속자치통감강목판목은 초고(草稿) 상태로 전해지다가 영조 47년(1771) 왕명에 의해 내각활자(內閣活字)로 처음 출간되었으며, 목판본(木板本)은 순조 8년(1808) 왕명을 받은 사림의 주선으로 청천서원에서 판각 출간했다.
        책은 36권 20책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 내용은 중국 송태조 원년(960)부터 명태조 원년(1368)까지 408년간의 중국 역사, 즉 주자(朱子)의『강목(綱目)』에 이어서 그 후기 약사를 편년체(編年體)로 쓴 것이다.
        판목의 재료는 배나무로 제작 되었고 규격은 대략 25×34cm로 모두 673매이다.

        『속자치통감강목』은 조선시대 주자학 연구의 심화와 함께 대의명분과 정통론을 강조하는 사림의 역사의식이 잘 반영된 서적이다.
      • 관광코스
        성주버스정류소 → 대가면 → 칠봉리(승용차 15분소요)

      쌍충사적비

      • 쌍충사적비 입구 전경
        • 雙忠事蹟碑
        • 구분 : 도지정 유형문화재 제 61호
        • 위치 : 경북 성주군 성주읍 경산리 295-1
        • 규모 : 1基
        • 재질 : 석재
        • 시대 : 조선후기
        • 지정일 : 1974년 12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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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지  지도
    • 상세내용
      성주읍 서문고개 성주여고 맞은편에 있는 쌍충사적비는 임진왜란 때 영남지방에서 의병을 모아 왜적과 싸우다가 성주성(星州城) 싸움에서 전사한 제말(諸沫) 장군과 진주성(晋州城) 싸움을 돕기 위해 출전하다가 전사한 조카 제홍록(諸弘錄)의 업적을 새겨 1792년(정조 16)에 세운 비이다.

      제말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아 웅천(熊川)·김해(金海)·의령(宜寧) 등지에서 왜적과 싸워 공을 세웠으며 성주성 싸움에서 전사하였다. 제말의 조카인 제홍록은 숙부와 더불어 큰 전공을 세웠으며, 이순신 장군 휘하에 있다가 정유재란 때 전사했다.

      비는 전체 높이는 325㎝이며 높이가 216㎝, 너비 79㎝, 두께 37㎝의 비신을 받침돌 위에 올리고 이수를 얹은 모습이다. 이수에는 서로 엉킨 두 마리의 용이 머리를 맞대고 여의주(如意珠)를 물고 있는 모습이 생동감 있게 조각되어 있다.
      비문은 이조판서 서유린(徐有隣)이 글을 짓고 제학 이병모(李秉模)가 글씨를 썼으며, 성주목사를 지냈던 조윤형(趙允亨)이 전서했다.

      쌍충사적비는 처음에는 지금의 성주초등학교 앞 길가에 있었는데, 일제강점기 때 일본 관헌들에 의해 비각이 헐리고 비가 방치되었던 것을 1940년경에 도로 확장공사를 하면서 지금의 자리로 옮겨 세웠다.
    • 관광코스
      성주버스정류소 → 경산리(승용차 3분소요)
    • 청천서당

      • 청천서당 전경
        • 晴川書堂
        • 구분 : 도지정 유형문화재 제 261호
        • 위치 : 경북 성주군 대가면 칠봉리 532
        • 규모 : 1棟
        • 재질 : 목재
        • 시대 : 조선시대
        • 지정일 : 1991년 5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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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지  일반영상  지도
    • 상세내용
      이 서당은 영조 5년(1729) 사림에 의해 창건된 동강(東岡) 김우옹(金宇?)을 봉향(奉享)하던 청천서원(晴川書院)이 고종조의 서원 훼철령에 의해 훼철된 후, 김우옹의 후손인 김호림(金頀林)이 종택의 사랑채를 고쳐 청천서당으로 중건한 것이다.

      서원이 창건된 이후에는 회연서원(檜淵書院)과 함께 성주를 대표하는 서원으로서 사림활동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으며, 서당으로 중건된 이후 1910년 봄에 후손인 심산(心山) 김창숙(金昌淑)이 교육구국운동으로서 서당을 수리하여 성명학교(星明學校)라 부르고 후진의 양성을 위한 교사(校舍)로 활용하기도하였다.

      서당은 장방형 토석담을 두르고 서쪽에 정면5칸, 측면 1칸 반의 팔작기와로 된 서당을 배치하였으며, 그 전방에 3칸 대문채와 남쪽에 3칸 일자형(一字形)관리사가 일곽을 이루고 있으며, 서당 담장 밖 북쪽에는 김우옹의 불천위사당(不遷位祠堂)이 방형(方形) 토석담 안에 자리하고 있다.
    • 관광코스
      성주버스정류소 → 대가면 → 칠봉리(승용차 15분소요)
    • 회연서원

      • 회연서원 전경
        • 檜淵書院
        • 구분 : 도지정 유형문화재 제 51호
        • 위치 : 경북 성주군 수륜면 신정리 258
        • 규모 : 11棟3廓
        • 재질 : 목재
        • 시대 : 조선시대
        • 지정일 : 1974년 12월 10일
        •  
      • 이미지  일반영상  입체사진  지도
    • 상세내용
      이 서원은 조선 선조 때의 문신이며 학자인 한강(寒岡) 정구(鄭逑, 1543~1620)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고 지방민의 유학교육을 위하여 그의 제자들이 뜻을 모아 세운 서원이다.
      서원이 위치하고 있는 곳은 한강이 선조 16년(1583년)에 회연초당(檜淵草堂)을 세우고 인재를 양성하던 곳이었다.
      한강 사후에 문도들이 그의 뜻을 기리기 위해 인조 5년(1627년)에 회연초당이 있던 자리에 한강을 주향(主享)으로 모신 서원을 건립하여 향사(享祀)를 지냈으며, 숙종 16년(1690년) 사액받았다.

      초기에는 강당·사당을 위시하여 지경재(持敬齋)·명의재(明義齋)·양현청(養賢廳) 등의 건물이 있었으나 고종 5년(1868년) 서원훼철에 따라 훼철되었다가, 1975년에 사당(祠堂)을 1976년에 동·서재 신축하고 담을 보수하는 등 서원의 위용을 회복하였다.

      한강은 동방 5현의 한 사람인 외증조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의 도학을 전수하고, 그 기반 위에 퇴계학과 남명학을 통합하여 새로운 학통을 세워 실학의 연원을 확립하였으며, 학문의 연구대상을 온 우주의 공간으로 삼고 의학, 역사, 천문, 풍수지리, 예학 등 여러 학문에 통달한 대학자였다.

      서원의 묘우(廟宇)에는 한강을 주향, 석담(石潭) 이윤우(李潤雨)를 배향으로 모시고 있으며, 향현사(鄕賢祠)에는 신연(新淵) 송사이(宋師), 용재(容齋) 이홍기(李弘器), 육일헌(六一軒) 이홍량(李弘量), 모재(茅齋) 이홍우(李弘宇), 동호(東湖) 이서(李)의 위판이 봉안되어 있다.

      서원 앞뜰 백매원(百梅園)에는 신도비(神道碑)가 서 있으며, 유물전시관에는 선생의 저서 및 문집의 각종 판각 등 유물·유품이 보존되어 있다.
    • 관광코스
      성주버스정류소 → 회연서원(승용차 25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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