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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자료

칠봉인 2010. 3. 11. 21:14

선석사 대웅전

  • 대웅전 전경
    • 禪石寺 大雄殿
    • 구분 : 도지정 문화재자료 제 113호
    • 위치 : 경북 성주군 월항면 인촌리 217
    • 규모 : 1棟
    • 재질 : 목재
    • 시대 : 통일신라(조선시대 중건)
    • 지정일 : 1985년 8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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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지  일반영상  입체사진  지도
  • 상세내용
    이 전각은 월항면 인촌리의 선석산(742.4m)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선석사의 경내에 위치하고 있으며, 국가지정 문화재인 세종대왕자태실이 있는 태봉에서 약 200m 떨어진 곳에 있다.

    선석사는 신라 효소왕(孝昭王) 1년(692)에 의상대사(義湘大師)에 의해 창건되었는데 처음에는 지금의 자리보다 서쪽에 건립되었으며 “신광사(神光寺)”라 하였다. 
    고려 공민왕(恭愍王) 10년(1361)에 나옹대사(懶翁大師) 혜근(惠勤)이 신광사의 주지로 부임한 뒤 절을 현재의 자리로 옮겼는데, 그때 새 절터를 닦던 중 큰 바위가 나왔다 하여 “선(禪)”자를 넣어 사찰의 이름을 선석사라 고쳤다 한다. 
    그 바위는 지금도 대웅전 앞뜰에 묻힌 채 머리 부분이 지상에 나와 있다. 
    임진왜란으로 전소된 후 숙종 10년(1684)에 은현(?玄), 혜묵(惠默), 나헌(懶軒)이 중창하였다. 
    영조 1년(1725)에 옛터로 옮겼다가 순조 4년(1804)에 동파(桐坡) 서윤대사(瑞允大師)가 지금의 자리로 다시 옮겨 현재에 이르고 있다.

    문화재로 지정된 대웅전은 전체적으로 조선 후기적 수법을 잘 보여주고 있는 건축물이라 할 수 있으며, 정면 3칸, 측면 3칸의 규모이다. 
    기단은 장대석을2단 쌓고 그 위에 장대갑석을 돌렸는데, 전체 높이가 약 90㎝ 가량 되며, 자연석의 초석 위에 굵직한 원기둥을 세운형태로 되어 있다. 공포는 다포양식으로 되어 있고 맞배지붕이다.

    선석사는 조선 초기에 근처에 세종대왕자태실이 조성되면서 태실의 수호사찰로서 유지된 듯 하며 영조로부터 어필(御筆)을 하사받기도 하였다. 
    현존건물은 대웅전을 비롯하여 명부전(冥府殿), 칠성각(七星閣), 정법료(正法寮), 산신각(山神閣), 요사(寮舍)가 있다.
  • 관광코스
    성주버스정류소 → 초전~김천간 → 인촌리 (승용차 25분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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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주 백운리 마애여래입상

    • 마애여래입상
      • 星州 白雲里 磨崖如來立像
      • 구분 : 도지정 문화재자료 제 366호
      • 위치 : 경북 성주군 수륜면 백운리 산 56-1
      • 규모 : 1軀
      • 재질 : 화강암
      • 시대 : 통일신라
      • 지정일 : 1999년 8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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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지  지도
  • 상세내용
    이 불상은 가야산 정상에서 동남쪽에 위치한 용기(龍起)골 동편에 있는 마애여래입상(磨崖如來立像)으로 변형된 감실(龕室) 안에 세워진 화강암판석을 배 모양으로 다듬어 광배로 삼고, 그 가운데 마애불을 양각한 것이다.
    판석의 위로 자연석이 지붕돌처럼 덮여 있어 그 모습이 특이한데 일종의 변형된 석굴이나 보개(寶蓋)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어 불상이 비바람을 피할 수 있게 되어 있다.

    판석은 높이 200cm, 최대폭 129cm이며, 양각된 불상의 크기는 가운데 높이가 160㎝, 두고(頭高) 34㎝, 두폭(頭幅) 25㎝, 견폭(肩幅) 48㎝, 최대폭이 63㎝정도의 규모로 되어 있다.

    불상은 두툼한 육계와 풍만한 상호를 가졌으며, 눈을 가늘게 뜨고 엷은 미소를 머금고 있다.
    어깨는 널찍하며 목에는 삼도가 뚜렷하고 수인은 오른손의 경우 비교적 뚜렷하지만 다소 처진 시무외인(施無畏印)을 하고 있고, 왼손은 마멸되어 명확하지 않으나 여원인(與願印)을 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법의(法衣)는 통견의(通肩衣)로 목 부분에‘U’자형으로 깊숙히 조각하였으며, 오른 소매는 걷어 올렸다.
    이에 비해 하반신의 상의(裳衣)는 조각 수법이 거칠다.

    이 불상은 전체적인 균형이 맞지 않는 것으로 불상 형식이 퇴화하기 시작하는 9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 관광코스
    성주버스정류소 → 백운분소 (승용차 30분소요) → 가야산성 (도보로 1시간 30분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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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주 삼봉서당

    • 삼봉서당 전경
      • 星州 三峯書堂
      • 구분 : 도지정 문화재자료 제 463호
      • 위치 : 경북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 914-3
      • 규모 : 5棟
      • 재질 : 목재
      • 시대 : 조선말기
      • 지정일 : 2004년 3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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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지 
  • 상세내용
    이 건물은 조선후기 대표적인 유학자의 한 사람인 이진상(李震相 1818~1886)을 향사(享祀)하는 서당이다.

    이진상은 본관이 성산(星山)이며, 자는 여뢰(汝雷), 호를 한주(寒洲)라 하였고, 한고(寒皐) 이원호(李源祜)의 아들로 공조판서를 지낸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의 조카이다.
    그는 경사(經史)에 밝고 성력(星曆), 산수(算數), 의약(醫藥), 복서(卜筮)에 이르기까지 능통하였고, 성리학에 전력하여 심즉리설(心卽理說)을 주장,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학통을 계승한 대학자였다.
    특히 그의 문하에 아들인 이승희(李承熙), 곽종석(郭鍾錫), 장석영(張錫英) 등의 주문팔현(洲門八賢)을 위시한 학파를 형성할 수 있을 정도의 쟁쟁한 제자들이 배출되었다.

    서당은 삼봉산(三峰山)의 산록을 배경으로 동향하여 전면에 정면 5칸, 측면 2칸반의 강당을 중심으로 좌우로 정면 3칸 규모의 경거재(敬居齋, 동재)와 성존실(誠存室, 서재)을 배치하고 성존실 뒤쪽에 고직사(庫直舍)가, 강당의 오른쪽에 장판각(藏板閣)이 위치하고 있다.
  • 관광코스
    성주버스정류소 → 월항면 → 대산리(승용차 15분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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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주 심원사 석조유물

    • 광배(경상남도문화재자료525-1호)
      • 星州 深源寺 石造遺物
      • 구분 : 도지정 문화재자료 제525호
      • 위치 : 경북 성주군 수륜면 백운리 산65-1
      • 규모 : 6점
      • 재질 : 석재
      • 시대 : 통일신라~고려초기
      • 지정일 : 2007년 7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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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지 
  • 상세내용
    이 유물은 중창공사의 진행 중에 발견 또는 발굴된 신라후기에 창건된 사찰인 심원사의 사지(寺址)에 남아 있던 여러 종류의 불교유물들로서, 석조불상대좌(石造佛像臺座), 배례석(拜禮石), 불상광배(佛像光背), 석조비로자나불좌상(石造毘盧遮那佛坐像), 신방석(信枋石), 석탑기단갑석(石塔基壇甲石) 등이다.

    석조유물은 대부분 화강암으로 되어 있고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이 높이 47㎝, 어깨폭 40.5㎝, 최대폭  43.5㎝, 불상광배가 136.5×110㎝, 석조불상대좌가 73.2×17.4㎝, 석탑기단갑석이 101.8×102.2㎝, 신방석이 지름 74㎝, 높이 16.8㎝의 규모로 되어 있다. 

    심원사는 창건연대가 8세기경으로 추정되는 사찰로 도은(陶隱) 이숭인(李崇仁)이 그의 시에서 ‘고사(古寺)’라 칭한 것으로 보아 오랜 역사 동안 번창한 사찰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조선 중종 때의 승려 지원(智遠)이 중수하였고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후 중창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지만, 정조 23년(1799)에 편찬된 범우고(梵宇攷)에는 폐사(廢寺)로 기록되어 있으므로 18세기에는 폐사가 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문화재로 지정된 석조유물은 통일신라~고려 초에 걸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특히 불상광배는 두광과 신광을 갖춘 주형광배(舟形光背)로 전체적으로 우수하다고 하겠으며, 향로 2좌를 배치한 예는 극히 드문 형식이다. 
  • 관광코스
    성주버스정류소 →수륜면 →백운분소 (승용차 40분소요) →심원사(도보로 20분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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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주 용기사지 석조유물

    • 용기사지_석조유물
      • 星州 龍起寺址 石造遺物
      • 구분 : 도지정 문화재자료 제 508호
      • 위치 : 경북 성주군 수륜면 백운리 산 56-2
      • 규모 : 4점
      • 재질 : 석재
      • 시대 : 조선중기
      • 지정일 : 2006년 6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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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세내용
    이 유물은 지금은 폐사(廢寺)되고 그 터만 남아 있는 용기사(龍起寺)에서 생활했던 승려들이 음식을 만들 때 사용했던 석조(石槽)와 맷돌이다.

    석조는 가로 160㎝, 세로 120㎝, 높이 73㎝, 깊이 52㎝정도의 크기로 길쭉하게 모를 죽인 직사각형 형태를 하고 있으며 완형으로 남아 있다.
    속이 깊고 안쪽 바닥 한켠에 구멍을 뚫어 놓아 배수가 되도록 하였으며, 안쪽 구멍은 매끈하게 다듬었는데 비하여 바깥쪽은 적당히 다듬었다.
    전체적으로 둔중한 편이나 소박한 멋이 있다.

    맷돌은 모두 3점으로 지름이 120㎝, 80㎝, 70㎝정도의 크기이며, 2점은 석조와 연접하여 있으며 윗돌이 없어졌으나 아랫돌은 완전하다.
    1점은 동남쪽으로 10m 가량 떨어진 곳에 있으며, 일부 파손되었으나 원형을 파악하는 데는 무리가 없다.

    용기사의 창건연대에 대해서는 명확한 기록은 없으나 조선시대에 성주목사를 지낸 황준량(黃俊良)의 시를 통해 볼 때 16세기 무렵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선조실록』과『성산지』에는 임진왜란 시 경상우도 총섭승(總攝僧) 신열(信悅) 이승군(僧軍)을 동원하여 화살을 만들었으며 가야산산성(용기산성)을 수축하고 남문을 건립하였다는 기록이 전한다.
    따라서 이 절터는 신열이 본영을 두고 수백 명의 승군들이 주둔 하였던 곳으로 추정되며, 남아 있는 석조와 맷돌은 승군들의 음식을 만들 때 사용하였을 것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 관광코스
    성주버스정류소 → 수륜~고령간 → 백운분소(승용차 40분소요) → 가야산성(도보 1시간 30분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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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주 첨경재

    • 첨경재 내부
      • 星州 瞻敬齋
      • 구분 : 도지정 문화재자료 제 461호
      • 위치 : 경북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 391
      • 규모 : 1基
      • 재질 : 목재
      • 시대 : 조선후기
      • 지정일 : 2004년 3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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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지  입체사진 
  • 상세내용
    이 건물은 성산이씨(星山李氏)의 누대(累代) 선조(先祖)의 묘소에 대한 묘제(墓祭)를 봉향했던 병사(丙舍)로서 한개마을의 뒤쪽 영취산(靈鷲山)의 불매동에 있는 여러 조상의 분묘를 “공경한 마음으로 섬기는(瞻敬)”위치에 건립된 것이다.

    건물은 영취산에서 뻗어 내린 협곡 사이에 토석담장을 둘러 전면에 정면 4칸, 측면 1칸반의 단아한 3량가(樑架) 맞배지붕의 첨경재를 중심으로 좌측에 정면 4칸, 측면 1칸의 고직사를 배치하고, 일각문을 세워 출입토록 하였다.
    평면은 중앙에 대청 2칸을 두고 양측칸에 온돌방 1칸씩을 둔 중당협실형의 구성으로 되어 있다.

    처음 건립된 이후 오랜 시간이 경과하면서 여러 차례에 걸쳐 중수(重修)하여 창건 당시의 원형은 유지하고 있지 않으나 기념건축 다운 단순한 평면형태를 띠고 있으며, 한개마을 성산이씨들의 추원보본(追遠報本)의 종당(宗堂)으로 대대로 지켜 내려오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깊은 곳이다.
  • 관광코스
    성주버스정류소 → 월항면 → 대산리(승용차 15분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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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주 추원당

    • 추원당 전경1
      • 星州 追遠堂
      • 구분 : 도지정 문화재자료 제 431호
      • 위치 : 경북 성주군 초전면 문덕리 671
      • 규모 : 5棟
      • 재질 : 목재
      • 시대 : 조선시대
      • 지정일 : 2002년 8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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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지 
  • 상세내용
    초전면에서 벽진면으로 통하는 국도 30호선을 따라 1.5㎞ 가량 떨어진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성주 추원당은 효종 7년(1656)에 처음 창건된 것으로 야성송씨(冶城宋氏)의 성주 입향조인 송구(宋構, 경기감사)를 위시한 송길창(宋吉昌, 야성군), 송천우(宋千祐, 판결사), 송수겸(宋守謙, 진잠현감) 등 야성송씨의 여러 선조의 묘제(墓祭)를 목적으로 건립된 문중재사(門中齋舍)이다.

    이 건물은 강당과 대문채 및 관리사, 고직사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대문채는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맛배기와집으로 평면은 문간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둔 형태로 되어 있으며, 강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일자형 겹집으로 평면은 중당협실형으로 중간의 2칸을 대청으로 꾸미고, 좌우측에는 온돌방을 두고 있다.

    건물은 고속도로 개설로 인하여 2005년도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으며, 과정에 부재들이 많이 교체되어 창건기의 모습을 찾을 수는 없다. 전체적인 형태는 19세기 후기의 전통적인 건축양식을 지니고 있으며, 공자형(工字形)으로 이루어진 지붕의 형태는 이 건물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 관광코스
    성주버스정류소 → 초전~김천간 → 문덕(승용차 15분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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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원사 3층석탑

    • 심원사 3층석탑 전경
      • 深源寺 三層石塔
      • 구분 : 도지정 문화재자료 제 116호
      • 위치 : 경북 성주군 수륜면 백운리 산 56-3
      • 규모 : 1基
      • 재질 : 화강암
      • 시대 : 통일신라
      • 지정일 : 1985년 8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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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지  일반영상  입체사진  지도
  • 상세내용
    이 석탑은 통일신라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는 사찰인 심원사(深源寺)의 사지에 위치하고 있는 석탑으로 폐탑(廢塔)상태로 있던 것을 1990년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심원사는 창건연대가 가야산에 있었던 대사찰로 전하는 법수사(法水寺)와 같은 8세기경으로 추정되는 사찰로 도은(陶隱) 이숭인(李崇仁)이 그의 시에서 ‘고사(古寺)’라 칭한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사세가 번창하였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중종 때의 승려 지원(智遠)이 중수하였고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후 중창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지만, 정조 23년(1799)에 편찬된『범우고(梵宇攷)』에는 폐사(廢寺)로 기록되어 있으므로 18세기에는 이미 폐사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탑은 외형상으로 통일신라 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이층기단 위에 쌓아 올린 삼층석탑으로 전체 높이가 450㎝, 지대석(地臺石)의 폭이 350㎝이다.
    이층 기단은 장대석(長臺石)과 판석(板石)으로 구성되어 있고, 탑신은 각 층이 단석(單石)으로 면석(面石)에는 우주(隅柱)와 탱주(撑柱)를 두 개씩 모각(模刻)했다.
    옥개석(屋蓋石) 역시 각 층이 단석이고 4단의 받침과 1단의 괴임을 모각했다.
    상륜(相輪)은 완전히 없어지고 각층의 옥신석(屋身石)과 옥개석은 잘 남은 편이다.

    최근 심원사지에 대한 발굴조사와 사지(寺址) 복원이 이루어지면서 사지의 최상단 남서편에 있던 석탑을 대웅전복원 예정부지의 전면으로 이건하였고, 현재 심원사의 옛 모습을 되찾기 위한 복원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 관광코스
    성주버스정류소 →수륜면 →백운분소 (승용차 40분소요) →심원사(도보로 20분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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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계당 및 연계소영일기

    • 연계당 및 연계소영일기 전경
      • 蓮桂堂 및 蓮桂所營日記
      • 구분 : 도지정 문화재자료 제 115호
      • 위치 : 경북 성주군 성주읍 경산리 136
      • 규모 : 1棟, 1冊
      • 재질 : 목재, 종이
      • 시대 : 조선시대
      • 지정일 : 1985년 8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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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지  지도
  • 상세내용
    이 건물은 조선시대 소과에 급제한 생원 및 진사들이 모여 선현(先賢)을 숭모(崇慕)하고 서로 면학을 격려하는 장소인 사마소(司馬所)에서 비롯된 것이다.
    1588년(선조 21)에 성주성(星州城) 서문 밖에 처음 건립되었으나, 그 후 건물이 많이 낡아 후손들이 계를 조직하여 1860년(철종 11)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세우고 이름을 연계당이라 하였다.

    건물은 경사대지 전면에 봉하문(鳳下門)을 내고, 연계당, 관리사가 안마당을 중심으로 배치되어 있다.
    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맞배집이고, 중앙마루 2칸을 중심으로 양측칸에 온돌방 1칸씩을 배치한 중당협실형으로 되어 있다.
    온돌방 뒷벽에는 수장공간인 벽장(壁欌)이 있고, 온돌방 앞면과 마루 뒷면에는 각기 쪽마루를 두어 이용하고 있다.

    기단은 자연석을 쌓았고 자연석 초석에 민흘림기둥을 세웠다.
    특히 마루 전면의 4짝 유리문 설치, 온돌방과 마루사이의 창호 등은 후대에 변형된 것이다.
    1992년에 신축한 관리사는 정면 6칸, 측면 1칸의 맞배집이고, 대문칸은 정면 2칸 측면 1칸의 맞배집이다.

    연계당에 보관되어 있는『연계소영일기』는 1860년 이건 공사를 날짜별로 기록하고, 특히 건축 자재의 매입 및 가격, 목수, 토공(土工) 등의 수와 급료 등을 기록하고 있어 당시 건축공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책자는 가로22㎝, 세로 34㎝이며 1쪽에 9줄씩 모두 30쪽 분량으로 필사본(筆寫本)이며 표지는『연계소영건일록(蓮桂所營建日錄)』으로 적혀있다.
  • 관광코스
    성주버스정류소 → 성주읍 → 경산리 (승용차 5분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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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정고택

    • 완정고택 전경
      • 浣亭古宅
      • 구분 : 도지정 문화재자료 제 163호
      • 위치 : 경북 성주군 초전면 월곡리 809
      • 규모 : 5棟
      • 재질 : 목재
      • 시대 : 조선시대
      • 지정일 : 1985년 12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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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지  지도
  • 상세내용
    이 고택은 벽진이씨의 집성촌인 홈실(椧谷)마을 뒤쪽 야산을 배후하여, 정방형에 가까운 토담 속에 동향으로 배치되어 있는 가옥으로 이존영(李存永)이 건립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존영은 조선 선조 36년(1603) 식년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인조조에 승지를 거쳐 밀양, 청주, 선산부사를 역임한 완석정(浣石亭) 이언영(李彦英)의 7세손으로 효행과 학행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었다.

    가옥은 사랑채, 안채, 대문간채, 사당, 내삼문 등 5동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사랑채는 처음 지을 당시에는 초가 6칸이었던 것을 1947년에 후손인 이영기가 철거하여 지금과 같이 고쳐 짓고 대문간채를 따로 세웠다.
    안채는 정면 5칸, 측면 5칸반 규모로 중앙부에는 정면 3칸 대청마루가 자리 잡고, 좌우에는 직교(直交)한 익사(翼舍)가 한단 낮게 전후로 돌출하여 ‘H’자형에 가까운 배치를 하고 있다. 사당은 1984년에 신축하였고 원래의 사당건물은 현재의 내삼문으로 개조하였다.
  • 관광코스
    성주버스정류소 → 초전면 → 월곡리 (승용차 25분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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